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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권형 Jun 22. 2022

무표정한 태도의 미덕

'이호석'의 <유체역학>(2016년)

2022년 5월 27일 [인천In] '음악가 이권형의 인천인가요' 기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언젠가부터 아무 일정이 없는 날에도 머릿속에서는 언젠가 완성될 음반 작업을 멈춘 적이 없어요. 하나를 끝내고 쉼 없이 다음을 상상하는 것만이 음악가로 존재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어떤 게 제대로 쉬는 건지 모르겠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몰라요. 언제나 새로운 형식을 구상하고, 어제보다 나아가지 못하는 날은 슬럼프로 기록됐습니다. 어쩜 음악가로 존재한다는 게 하루하루 반복되는 굴레의 저주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이호석’의 곡 <유체역학>의 뼈대를 이루는 기타 연주와 멜로디는 왠지 그 굴레의 모양새와 닮아있는 것 같습니다. 기타 선율은 단순히 좌우로 오르내리고, 큰 변화 없이 반복되는 멜로디 간엔 후렴이라고 할 만한 구성도 없죠. 심지어 아무 표정도 느껴지지 않는 이호석의 목소리까지도, 너무 단출해서 간신히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곡은, 그래서 음악을 성립하는 최소한의 조건이 무엇일지 생각하게 합니다.


 이 음악이 존재하는 방식, 그러니까 단순/반복하며, 무표정하고, 가만한 태도는 야심 차게 매혹하며 항상 새롭게 자신을 보여주려는 드라마의 거추장스러움과는 거리가 먼 것 같습니다. 미세한 파동까지 담아내는 고요한 수면의 모습처럼, 이 곡의 무표정함은 매번 똑같이 흘러가는 듯한 패턴 속에서 미세한 차이를 보게 합니다. 목소리의 표정을 걷어낸 자리엔 멈추고 또 나아가는 단순한 운동의 역학만이 남습니다.


 모든 것은 다만 멈추고, 움직인다는 단순한 진리 앞에서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 또한 무의미해집니다. 다만 다르게 멈추고 움직이며 어느새 다시 규정되지 않은 새로운 무언가가 되어가는 과정이 있을 뿐이죠.


 무언가로 존재하기 위해, 무언가의 이름으로 살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증명하는 과정과 슬럼프에 지친 이들에게 <유체역학> 잠시라도 위안이 되길 바랍니다. 어떤 날엔 화려하고 극적인 드라마보단 무표정하고 단순한 반복과 그 간의 미세한 차이를 들여다보는 일이 우리 삶의 리듬을 더 풍성하게 해주기도 하니까요. 어쩌면 ‘쉼’이라는 건 생각보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그래서 평범한 ‘일상적 경험’과 가까운지도 몰라요.


“강 위에 누운 몸은 부유하고

작은 목소리의 장 수면을 진동하는

때로는 차가운 너의 피부처럼

마치 너의 피부처럼

대기의 가운데에 요동하는 동체

앞으로 가는 것으로 지면을 벗어버린

때로는 부드러운 너의 몸처럼

마치 너의 몸처럼

흐르는 것에 몸을 던져버린

존재란 이름의 또 다른 구속으로

때로는 미끄러운 너의 피부처럼

마치 너의 피부처럼”

- ‘이호석’ <유체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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