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보노보노’ 한국판 오프닝곡 <지름길로 가고파>
2022년 4월 28일 [인천In] '음악가 이권형의 인천인가요' 기고
수도권 교통은 꽤 편리한 것 같아요. 직장이나 교육, 의료 시스템도 쾌적하게 모여 있어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출퇴근도 문제없고 강의를 듣거나 진료를 위해 병원에 가는 것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가능한 도시에 살고 있어 참 안심이고요. 물론 휠체어를 타거나,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 교통약자들은 불편을 좀 감수해야 할 수도 있죠. 상식적으로 도시 인프라가 모두에게 맞출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런데 어느 날 출근길에,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교통편을 막고 서서 장애인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네요. 불편한 건 이해하는데, 시민들 출퇴근 시간이라도 좀 피해서 하면 안 되는 걸까요?
출근 시간대 교통편을 연착시키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 전장연)’의 ‘지하철 타기’ 시위 방식은 비판받아 마땅해 보입니다. 그것은 이 사회의 ‘상식’에서 벗어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노동자들이 노동함으로써 사회의 질서가 유지되고 고로 신성한 출근길이 방해받지 않는 것, ‘일반 시민’들이 쾌적한 교통권 보장받는 것, 그것이 이 사회의 당연한 상식이니까요.
오늘 하루 출근하고, 강의실로 이동하고, 아파서 병원에 들르는 동안 불편함 없이 쾌적하셨는지요. 아무렇지 않게 누리는 도시의 구조가 어느 날 내 몸을 거부한다면,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하는데, 오는 선거 날 투표를 하고 싶은데, 그 당연한 권리를 누리고자 하는데 온 힘을 다해도 스스로 계단 하나 오르기 힘든 상황이라면 어떨까요. 수년간 이어진 ‘전장연’의 시위는, 대중교통 연착의 불편함을 감수하게 함으로써, 당연하다 여겨지던 원활한 교통권이 사실 누군가는 배제된 특권이었음을 상기시킵니다.
이 사회는 특권 남용, 특히나 정치인들의 그것에 유독 민감한 듯합니다. 교육권은 누구에게나 공정해야 한다는 사회의 ‘상식’이 작용한 결과는 대통령의 탄핵으로까지 이어졌으니까요. 그리고 이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어떤 특권의 대상일 수 있다는 사실 앞에 서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질문은 (“왜 ‘일반 시민’의 신성한 교통권을 방해하면서까지 장애인이동권 보장을 주장해야 하는지”가 아니라) 이렇게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이 사회의 ‘신성한 상식’은 무엇을 어떻게 배제하고 있는가.”
'전장연’의 ‘지하철 타기’ 실천이 비판받는 건, 그것이 온몸으로 우리의 당연한 상식에 균열을 내고, 바깥에 배제된 존재를 각인시키려 하기 때문일 겁니다. ‘전장연’ 활동가들에 대한 잇따른 고소, 고발, 입건 등의 강도 높은 제도적 억압은 이 사회의 ‘상식’이 얼마나 견고하게 신성화되어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질문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도대체 그 상식이라는 걸 누가 정한 걸까.”
우리의 의식과 생활 세계 곳곳에 자리 잡고 영향을 미치는 그 ‘상식’이라는 것을 정한 주체는 누구일까요. 제도 변화에 직접 개입하는 의회의 정치인들이나, 그것을 집행하는 행정가들일까요. 정말 그뿐이라면, 정치란 제도를 통하는 효율적 통치 수단에 불과하겠죠. 그렇지 않고, 그렇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상식’의 견고함에 대해 논하고, 실천하고, 변화시켜가야 할 주체는 우리 자신이 되어야 할 테고요.
진정 살아있는 정치란 ‘상식’에 균열을 내는 실천의 자리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우리의 ‘상식’ 속에 그 바깥의 배제되고 지워진 이름들에 대해 끊임없이 말해야 하는 이유이자, ‘전장연’의 ‘지하철 타기’ 실천을 지지해야 하는 이유가 될 것입니다. 공연히 길을 돌아가는 고생을 감수하고 싶은 이는 아무도 없을 테니까요.
https://www.youtube.com/watch?v=vaTZnfpBDEI
“그날그날이 너무나 따분해서
언제나 재미없는 일 뿐이야
사랑을 해보아도 놀이를 해봐도
어쩐지 앞날이 안 보이지 뭐야
아 기적이 일어나서 금방 마법처럼
행복이 찾아오면 얼마나 좋을까
이따금은 지름길로 가고파 그럼 안될까
고생은 싫어 그치만 어쩔 수 없지 뭐
어디론가 지름길로 가고파 그럼 안될까
상식이라는 걸 누가 정한 거야 정말로 진짜”
- 애니메이션 ‘보노보노 한국판 오프닝곡(노래 : 임지숙)’ <지름길로 가고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