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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권형 Oct 22. 2022

김밥처럼 편안한 ‘가요’

‘더 자두’의 <김밥>(2003년)

2022년 9월 30일 [인천In] '음악가 이권형의 인천인가요' 기고


 한국에서 김밥은 보편적인 음식입니다. 올해엔 특히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유행하면서 김밥이 대중적으로 좀 더 주목받는 코드였죠. “재료를 한눈에 볼 수 있어 예상 밖의 식감이나 맛에 놀랄 일이 없”는 김밥은 식감에 민감한 주인공 영우에게도 “믿음직스러”운 한 끼라나요.


 김밥의 믿음직스러움에 대해서라면 적을 게 많습니다. 일단, 김밥은 식사와 스낵 중간 어딘가의 포지션이라는 점이 좋은 것 같아요. 든든하게 한 끼 식사로도 좋고, 간단한 요기로도 제격이죠. 또 같이 먹기도 얼마나 좋습니까. 나들이할 때, 여러 명이 한 상에 나눠 먹을 때, 단체로 부대 행사를 진행하려고 해도 김밥 한 줄씩 나눠 먹으면 효율적이죠. 먹기 간편하고, 채식 옵션으로 주문할 수도 있는 데, 심지어 재료도 다채로우니, 모두의 메뉴로 손색없습니다.


 최초의 ‘김밥천국’은 1995년 주안에서 영업했다고 합니다. 정사로 기록된 자료를 본 건 아니어서 확실하지 않지만, 재료를 직접 가공하여 원가를 낮춰 ‘천원김밥’으로 박리다매하는 전략이 성공했다고 하는데, 주안 살았던 어렸을 때 기억들이 떠오르면서 수긍 가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김밥>이 발매된 2003년, 초등학생이었던 저는 부모님이 맞벌이인 탓에 하교하는 길에 김밥 사 먹으라고 1500원씩 받았던 기억이 있어요. 그 돈으로 오락실 간 날이 더 많긴 했는데, 변명을 좀 하자면 그때는 정말 지금처럼 온전한 식사라는 생각도 안 들 정도로 김밥은 만만한 메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올해 김밥 한 줄 평균 가격이 3000원이라고 합니다. 가끔 보면, 재료의 수급에 따라 김밥 재료도 변하더라고요.


 “예전에 김밥 속에 단무지 하나”였던 적이 정말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요새 별별 김밥이 많아서 한동안 그거 먹어보는 재미로 김밥만 먹었던 적이 있어요. 하나의 메뉴에 이렇게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다는 게 신기했거든요. “세상이 변하니까 김밥도 변”한다는 구절은 유행도 안 타는 셈이네요.


 이렇게 김밥은 보편적이고, 흔한 음식이지만, 한편으론 손이 꽤 가는 음식이기도 하죠. 각자 조리하고 양념한 재료가 하나로 말리기 위해서는 사실 꽤 많은 정성과 숙련된 기술이 필요합니다. 김밥의 편리함과 믿음직스러움 뒤에는 여러 수고와 노력이 있는 것이죠.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맛있는 김밥 하날 입에 넣으면 기분이 꽤 풍성하다니까요. 이렇게 다양한 재료가 한입 크기로 말려있다니.


 김밥이 마치 '몇십 년 동안 서로 달리 살아'왔어도 붙어 있는 우리 인연 같다고 말하는 뻔한 이야기인데, 가요의 미덕은 역시 그 뻔함에 있는 거죠. 맛있는 김밥 하나를 한 입 먹었을 때의 당연함 같은 거요. <김밥>의 천진난만한 비유와 단순하고 경쾌한 진행이 이 음악의 편안함을 만드는 거니까요. 당연해서 편안한 가요처럼, 익숙해서 믿음직스러운 김밥처럼, 우리의 삶도 관계도 사랑도 편안한 건 아무래도 뻔한 쪽인 걸까요.


2003년 발매 된, '더 자두'의 3집 음반 표지


“몇십 년 동안 서로 달리 살아온 우리

달라도 한참 달라 너무 피곤해

영화도 나는 멜로 너는 액션

난 피자 너는 순두부

그래도 우린 하나 통한 게 있어 김밥

김밥을 좋아하잖아

언제나 김과 밥은 붙어산다고

너무나 부러워했지

잘 말아줘 잘 눌러줘

밥알이 김에 달라붙는 것처럼

너에게 붙어 있을래

날 안아줘 날 안아줘

옆구리 터져 버린 저 김밥처럼

내 가슴 터질 때까지

예전에 김밥 속에 단무지 하나

요샌 김치에 치즈 참치가

세상이 변하니까 김밥도 변해

우리의 사랑도 변해

잘 말아줘 잘 눌러줘

밥알이 김에 달라붙는 것처럼

너에게 붙어 있을래

날 안아줘 날 안아줘

옆구리 터져 버린 저 김밥처럼

내 가슴 터지게 해

널 사랑해 널 사랑해

세상이 우릴 갈라놓을 때까지

영원히 사랑 할 꺼야

끝까지 붙어 있을래”

- ‘더 자두’ <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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