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려진 작가님의 아트워크 ~ 추지원 디자이너
2022년 10월 7일, 이권형 정규 3집 [창작자의 방]이 발매 됩니다. 음반이 만들어진 과정을 돌아보며 작업기를 작성합니다. 다채로운 감상에 도움되길 바랍니다.
이려진 작가님과의 작업 이야기를 더 해야겠습니다. 첫번 째 작업기(https://brunch.co.kr/@2gwonhyeong/63)에서 다뤘듯, 려진작가님과는 부여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그의 그림에 매료되어 홀린 것처럼 협업을 제안했고, 미리 공개한 <석촌호수> 디지털 싱글을 위한 드로잉 작업 한 번, [창작자의 방] 디자인 작업을 위한 드로잉 작업 한 번, 그렇게 총 두번을 만나 작업했습니다.
아트워크 드로잉은 저와 려진 작가님이 만나서 수다를 떠는 동안 일필휘지로 진행됩니다. 특별한 디렉팅은 하지 않으며, 곡 설명은 할 때도 있고 안 할 때도 있습니다(사실 구체적으로 서로 무슨 말을 나눴는지가 기억나지 않습니다). 석촌호수의 경우 모든 컷이 마음에 들었으나 가장 여백이 있고 상징적인 그림을 A컷으로 골랐습니다.
이 영상을 [창작자의 방]의 시작이라 하겠습니다. 마지막 휴가를 나와서 파제와 술을 마신 이튿날 연남동의 한 카페 야외 자리에서 신곡을 연주했고, 파제가 촬영했습니다. 곧 SNS에 영상을 포스팅했는데, 어이없게도 이거 누구 노래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댓글로 언제 발매하냐고 독촉을 했는데, 당장 자대에 복귀해야하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으므로, 자대 복귀 직전에 2절을 스케치해서 공유했습니다.
<커피토크>의 2절은 그때 완성됐습니다.
"하루 다 휴가 um
커피 이름 따라 trip
잠시라도 나를 쉬게 하는 그대와
아 사랑에 빠져있네 난"
- [창작자의 방] Track 7. <커피토크> 2절
그때의 피드백이 개인적으로 큰 힘이 됐습니다. <커피토크>를 가장 먼저 작업해서 발매한 건, 그에 보답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그 피드백이 없었다면 <커피토크>는 완성되지 않았거나, 지금의 꼴을 갖추고 있지는 않았을 겁니다. 이 곡은 [창작자의 방]의 시작이었던만큼 그 의미가 남다르다 하겠습니다.
2021년 5월 21일, 부여 커뮤니티와의 인연으로, 부여 구드래 조각공원에서 공연할 일이 있었습니다. 전역 후 줄곧 음반을 준비 중이었으므로 정말 간만의 공연이었어요.
그날 공연 리허설을 마치고 산책 중이었는데, 앞에서 배낭을 메고 터덜터덜 누가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절 알아보길래 누군가 했더니 그게 추지원 디자이너였어요. 마침 려진 작가님의 아트워크를 소스로 앨범 디자인을 하기로 결정한 뒤로, 디자이너를 따로 섭외하는 걸 염두 중이었고, 제 작업에 대한 이해도가 있는 분이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후 그의 디자인 작업물을 간단히 살펴보고는 협업을 제안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제 작업에 대한 이해도와 애정이 남다르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는, 디지털로 먼저 발매 될 <석촌호수>의 앨범아트를 우선 작업하기로 했던 거죠.
예람과 용성, 그리고 제가 각자의 벌스를 손글씨로 적어 려진 작가님 그림에 멋대로 얹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세 가지 시안이 있었는데, 가장 감각적으로 여백을 둔 위 시안을 골랐습니다. 지금 봐도 멋진 배치예요. 저는 이렇게 겹칠 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거든요.
<석촌호수> 아트 작업 이후에 모든 트랙의 믹스가 완료된 시점에 려진 작가님을 만났습니다. 트랙 별로 드로잉을 부탁드렸고, 이전과 마찬가지로 전부 앉은 자리에서 완성했습니다.
<스와이프>를 일부러 가장 가볍게 그리셨다고 합니다. 헐거워보여도 나름 구조를 생각해서 빌드업했던 셈이죠.
MBTI 극 T 성향인 려진 작가님은 <당신의 것>의 정서를 이해 못하셨습니다. 안 그리려고 계속 회피하셨어요. 저는 그냥 앉은 자리에서 해치우고 싶었는데 자꾸 숙제를 하겠다고 그러셔서 제가 그냥 대충 그리라고 종용했습니다. 다른 그림은 그렇게 슥슥 그리시면서... 지금 려진 작가님은 이 트랙이 가장 애정 가는 트랙이 됐다고 하십니다.
<커피토크>는 려진 작가님 원래 최애 트랙으로, "커피토크 너무 좋지, 마약이지."라며 그리셨습니다.
<경기도민 되기>인데 사람들이 모두 웃고 있는 포인트에 광기가 서려있습니다.
원래 히든 트랙을 하나 수록할까 했었습니다만 최종적으로 누락했습니다. 마지막 그림은 그 트랙에 조응하는 그림입니다. 어떤 곡이었을까요.
추지원 디자이너와의 작업은, 그가 코어한 인디씬의 수요자이면서 동시에 과감한 레이아웃을 시도할 수 있을만큼 인쇄 과정까지에 대한 이해가 높은 디자이너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신뢰할만 했습니다. 이미 정해진 아트워크가 있다는 건 꽤 부담스러운 요소였을텐데, 제목과 가사의 과감한 배열을 통해 흥미로운 레이아웃을 시도해주셨습니다.
처음엔 시디 자체로 가독성이 있는 물건이길 바라는 마음에 조금 보수적으로 피드백했는데, 추지원 디자이너가 소비자 입장에서 설득해준 덕에 결과적으로 재미있는 물건이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프레싱은 마스터링 해주신 '소노리티 마스터링'의 이재수님에게 추천 받은 '카피카피미디어'라는 업체에서 진행했는데, 프레싱이 들어 가기 전 엄청 꼼꼼하게 체크해주셨고, 추지원 디자이너 역시 프레싱에 대한 이해도와 디테일이 남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운 결과물이고, 그러한 결과가 나오는 데까지 그의 역량이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해요.
그리하여 짜잔. 요런 야무진 결과물. 시디 처음 열어보고 완전 반했던 기억이 생생한데요. 현재 시중 유통망에 판매되고 있고, 제가 좋아하는 장소에는, 매번 들를 적마다 출고가로 조금씩 입고하고 있습니다. 가장 처음엔 이후 작업기에서 다룰까 하고 있는 서대문구의 '까페 여름', 그리고 부여 규암면의 '생산소', (작업기를 작성하고 있는 시점에서) 조만간 카페 공연 시리즈를 처음 시작할 '바람커피' 동교점 등에 입고되어 있어요.
되짚어 보면 볼 수록 여러 인연을 거쳐 완성된 음반입니다. 이 물건이 앞으로는 어떻게 평가되고 어떤 작업으로 남게 될지 저도 궁금한데요. 이 장황한 작업기가 읽어주신 분들의 감상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