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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권형 Jan 18. 2023

<섬>을 다시 만들기까지

 오는 2023년 2월 3일 발매하는 디지털 싱글 <섬>을 준비하면서, 이 곡을 다시 만들어 발매하기까지의 이야기를 한 번은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연대기적인 서술로 시작했으나 넋두리에 가깝게 끝났습니다. 가능하면 자료를 바탕으로, 그렇지 못할 경우 기억에 의존하여 서술하기로 합니다.

 이 일은 개인적으로도 중요해서, 다소 산만하고 구구절절한 서술이 될 수 있다는 점 미리 양해 구합니다.


 <섬>은 2016년 1월 4일 작곡됐습니다.

 당시 아래 주소로 작곡 스케치를 게시했습니다.


https://on.soundcloud.com/K2qKZ


 <섬>의 라이브는 2016년 1월 21일, '테이크아웃드로잉 한남점'에서 처음 진행됐습니다.

 이후 아티스트 레지던시 명목으로 강제집행이 예정된 테이크아웃드로잉에 기거하며 매주 월수금 오후 4시, 총 30회의 '강제음악회'를 진행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m-2Vqlq2cs


 <섬>은 제가 처음 정식 유통한 곡으로, 2016년 3월 9일, [테이크아웃드로잉 컴필레이션]에 처음 수록했습니다.

 본 음반의 제작자와 관련한 사유로, 이후 본 음반의 제작자가 제작한 모든 음반을 보이콧 중이며, 이에 관련 자료 첨부를 생략합니다.


 테이크아웃드로잉 이후 2016년 4월 25일을 시작으로 '강제음악회'의 무대를 무악동 옥바라지 골목 '구본장 여관' 옥상으로 옮겨 10회, 2016년 5월 14일, 구본장 여관 강제집행 이후엔 거리 천막 농성장에서 10회 진행했습니다.


디지털 싱글 <섬> 아트웍


 디지털 싱글 <섬> 아트웍에 쓰인 사진은 구본장 여관 옥상에서 진행 중인 '강제음악회' 당시 현장 기록입니다.

 사진은 예전에 쓰던 스마트폰을 복구해 발견했습니다.


 아래 (페이스북) 링크 주소엔 당시 함께 연대했던 영상 활동가 '우에타 지로'가 기록하고 편집한 2016년 5월 14일 구본장 여관 강제집행 현장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섬>의 현장 라이브 사운드가 BGM으로 깔려있습니다.


https://fb.watch/i6EzCA1Vpr/


 얼마 전, 다큐멘터리 사진가 박김형준 작가님의 사진집 <옥바라지>를 (드디어)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구본장 여관 강제철거 현장을 기록하셨고, 그때의 분위기가 치열하게 담겨있었습니다. 저도 그때가 아직 생생해요. 도저히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거리에 나앉아 농성하던 현장에서 시작된 '옥바라지 선교센터'의 이후 기도회 모습도 사진집에 기록되어 있었는데, 기도회 현장에 간간이 제 예전 모습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옥바라지 골목 강제 철거 이후 1년여 간은 젠트리티피케이션 철거 현장에서 노래했습니다.

 옥바라지 선교센터의 '아현포자' 기도회 현장의 장비가 여의치 않아 생목으로 노래 불렀던 기억, 집회가 계속 되자 어느 날 마포구가 현장을 화단으로 바꿔버리던 장면,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의 상인들이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을 요구하며 연대하던 현장들, 특히 압구정 가로수길의 곱창집 '우장창창'에서 느꼈던 대중의 냉소와 또 한 번의 강제집행.


 아직도 불현듯 떠오르는 장면들이고, 한 편으론 그리운 기억입니다. <섬>은 왠지 현장에서 힘이 쎈 곡이었고, 지금도 이 노래를 부르면 그때 생각이 납니다. 사실, 그 무렵의 기억은 혼란스럽게 뒤엉켜있어서 <섬>을 부를 때마다 혼재된 장면들이 정신없이 스쳐가곤 하는데(가령, 심지어는, <섬>이 만들어지기 전인 2013년, 방화동 '카페 그'에서 강제집행을 대비해 모인 사람들이 다 함께 밤을 새우던 날의 기억까지도), 그게 이 글을 시작한 가장 큰 동기였어요. 정신 없더라도 최대한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갖가지 핑계로 사실상 그 시기에 대한 대부분의 기록을 삭제하고 관계를 절연한 시기가 있었어요.

 지금 남아있는 자료들은 그 틈에 살아있는 것들이죠. 이유야 늘어놓으면 많겠습니다만, 그저 사랑하는 자리마다 폐허가 되는 광경을 더 이상은 쳐다보기 싫었던 걸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슬프고 분한 감정이 상기되요. 그동안 별 일을 많이도 겪고, 직장 생활에 적응하고, 2018년에 발매 된 [인천의 포크]를 기점으로는 음반 제작에 몰두하고 새로운 동료들을 찾아가며 마주한 시간들이, 지나고 보면 그때의 뒤엉킨 기억을 승화하는 과정이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2020년 11월 입대 직전, 제가 진행하던 신안 '섬문화다양성네트워크 프로젝트'를 동료 뮤지션 '파제'에게 인수인계하면서 현재 사용된 소스를 녹음했습니다.

 이번에 발매하는 음원은 그때의 소스를 제가 다시 받아 편곡한 음원이며, 2021년 프로젝트 당시 파제가 편곡한 버전의 링크 주소는 아래와 같습니다.


https://soundcloud.com/user-309986213/j6f757nwqgyc?si=c15b9b80923c4fc38c95a4749c86f990&utm_source=clipboard&utm_medium=text&utm_campaign=social_sharing


 얼마 전, '을지OB베어'가 을지로 노가리 골목을 떠나던 날, 그 골목에서의 마지막 옥바라지 선교센터 기도회 현장을 찾았습니다.

 오랜만에 옛 동지들을 마주하니 마음이 창피하고 뒤숭숭하더군요. 어이없게도 그 사이 결혼한 친구도 있었고, 미처 인사 못 한 분들도 많았어요. 그동안의 시간을 한번에 마주치는 일이 그리 간단하진 않더라고요. 다 많이들 변했는데, 아마 나도 많이 변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때 함께 꿈꾸던 이상이 좀 더 가까워졌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은, 다들 잘 지내시는지, 건강은 괜찮은지, 그간 별 일 없으셨는지 많이 궁금할 때가 있었는데, 다만 어느샌가부턴 돌아보기 창피했어요.

 너무 오래 지나버렸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함께 했던 때를 아직 잊지 않고 기억한다고, 지금보다도 훨씬 미숙하던 그때의 저를 환대하고 받아줘서 고마웠다고, 덕분에 여전히 더 나은 세상을 꿈꾼다고 인사 전하고 싶었습니다.


 이제야 이 노랠 다시 만들어 발매합니다. 그때 그 '섬'들 위에 쌓여있는 기억들과, 이젠 폐허가 된 풍경들을 함께 기억해주는 친구들, 내 사랑하는 이들에게 건내는 인사로 받아주신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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