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밀아'의 <내 방은 궁전>(2014년)
2022년 12월 28일 [인천In] '음악가 이권형의 인천인가요' 기고
올여름, 폭우로 물난리가 나서 사람들이 떠내려가는 걸 두 눈으로 목격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반지하 세대의 피해가 특히 심각하다는 결론에 대하여 서울시에선 반지하 주택 금지 정책을 얘기했죠. 지금의 일상이 언제까지고 계속될 수 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덕분에, 반지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한동안 부동산 정보를 전전하는 시기가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이사는 실패했습니다만, 이사를 고민하는 일이 집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처음 이 집을 구했을 때를 떠올려보니, 그땐 반지하에 조그만 원룸이지만 그저 몸 누일 곳 있다는 안정감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오늘의 곡 <내 방은 궁전>의 가사처럼요.
가사를 보면 제가 사는 원룸 집보다는 넓은 집인 것 같아요. 노래는 반지하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저는 처음 이 집 구하고 반지하면 뭐 어떠냐는 심정이었는데, 궁전까진 아니라도 어쨌든 내 여건에 구할 수 있는 방으로 적당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집과 비교하면 어떠세요. 여러분은 지금 주거 환경에 만족하시나요. 올여름 폭우 피해 때 무탈하셨는지요. 주변 공사 소음에 시달리지는 않으시는지, 올해 갑자기 올라버린 공공요금 때문에 추위에 떨며 지내고 계시진 않으신지 궁금합니다.
2022년 한 해가 어떤 기억으로 남으십니까. 저는 올해가 지나면서 부쩍 사랑하는 이들의 건강을 염려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저에게 2022년은 도시 한복판에서 벌어진 커다란 재난들로 기억될 한 해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결국, 이 도시가 안전하지 않다는 불안이, 그럼에도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감각이 제 일상 전반에 많은 변화를 가져온 한 해로 갈무리 되어갑니다.
물론 즐거운 기억들도 많았습니다. 좋은 동료들과 앨범을 냈고, 덕분에 즐거운 시간도 자주 가질 수 있었죠. 하지만 이 도시에 재난의 가능성이 도처에 잠재되어있다는 감각은 즐거운 기억의 저변에까지 불안과 걱정의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내 방은 궁전>은 분명 기분 좋은 곡입니다. 상기된 목소리와 리듬이 몸을 들썩이게 만들어요. 하지만 그 상기된 목소리가 마치 적어도 나는 이 방을 궁전처럼 여겨야만 하는 것처럼 조금은 처절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요. 누구나 제집을 궁전처럼 포근하게 여길 수 있는 날이 올까, 생각하면 왠지 이 경쾌한 노래가 슬프게 들리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상도 “머지않아 허물어져 흔적도 없어”이 사라질 것만 같은 느낌일까요.
왜 우린 이렇게 좁고 낮은 방에 만족해야만 할까요. 모두가 안전할 수는 없는 걸까요. 이 추운 겨울을 어떻게든 무탈하게 넘기고, 내년은 다 같이 안전한 새해가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분명히,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계단 몇 개는 내려가지만
여긴 1층이라고
반지하 절대 아니야
이 정도면 가격대비 최고
짐을 풀고 밥도 가끔 해 먹으면서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직사광선 드는 아담한 거실에선
빨래도 뽀송뽀송
기타에 부딪힌 햇살에 무지개가 뜨고
포근한 담요 양말 공기가 나를 감싸고
수 없는 방황이 적힌 내 파란 일기장
내 마음 위로하는 마음 넓은 책들
낡았지만 편한 외투가 걸려있고
꼬깃꼬깃 작은 추억 스며든 이곳
머지않아 허물어져 흔적도 없어도
이곳은 내 마음속 궁전이에요
둘도 없는 내 방은 궁전
내 방은 궁전”
- ‘정밀아’ <내 방은 궁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