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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i generis May 19. 2022

The I in We-2

가설 2. 내가 최순실이었다면?

내가 존경에 마지않는, 그래서 현재 연재 중인 자유의 권리 저자 악셀 호네트의 또 다른 저서 The I in We를 이 글의 제목으로 인용했음을 미리 밝힙니다.


앞선 글에서 밝혔던 것처럼,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모든 상호 관계망 속에서 살아가고, 평생을 이 관계망을 벗어날 수 없다. 벗어나는 순간은 아마도 우리에게 일종의 사망 선고나 다름없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나'임이 증명되는 데 있어, 즉 나의 정체성이 형성되는 데 있어 이 관계망은 상당한 비중으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다 (라고 생각한다).





불가피하게 내가 던져진 이 관계망이 점점 늘어날수록 우리 삶에는 수많은 우연이 더해진다.

관계망 속에서 내가 만나게 되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 우연은 내가 인생에서 선택할 수 없는 것들과 더해지면, 더 이상 묘사가 불가능해질만큼 복합적이 되고, 이 복합성은 내 삶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인도하기도 한다.





우선 나는 성별을 선택할 수 없다. 집안 배경도 선택할 수 없으며, 나의 재능도 선택할 수 없다. 성품과는 다른 기질도 (우리가 사람은 안 변한다고들 흔히 이야기하는 그 성질) 선택할 수 없고, 나의 식성 조차도 선택할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것들이 내 삶에 부당하게 영향력을 행사하면 분노와 불의를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성별을 선택할 수 없어서, 이후 자신의 성적 정체성에 대해 주장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생겨났을 것이고 (이 지점에서 나는 성경 해석학적인 주장들과 논쟁하고 싶지 않다),

가난한 혹은 한부모 가정의 집안 배경 때문에 겪어야 하는 부당함을 개정하고자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생겨났을 것이며,

나의 재능과 기질과는 전혀 관계없는 직업을 택하게 돼서 겪게 되는 고통도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우리 삶이 이러하다면, 즉 우리는 우리가 던져지는 상호 관계망, 여기서 파생되는 우연, 그리고 여기에 더해지는 내가 선택할 수 없는 모든 것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 내가 보기에 우리는 반드시 서로에게 건네야 할 질문이 하나 있다:

"당신의 모든 것은 오로지 당신이 독자적으로, 홀로, 그리고 원자적으로 당신의 노력과 성실함으로만 거둔 결과물인가요?"

그리고 이 질문에 우리는 적극적으로 답해야 한다 (라고 생각한다).

이 질문에 적극적으로 답을 구할 때만이 우리는 비로소 서로를 한 인간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모든 엘리트주의(elitism)를 반대한다.

한 정당의 대표가 주야장천 주장하는 "능력 위주," 그리고 이 "능력"에 가차 없는 "사회"를 유도하는 행위에도 반대한다.

특정 직업군이 가지는 특정한 권위와 권력에도 반대하며 (오늘도 법을 해석하고 집행하는 일부 법조계 인사들께서는 세상의 모든 진리 탐구가 끝난 것인 양 직업에 충실하고 계실 것이다), 

사회 주류에 편승해서 비주류를 손가락질하는 행위에도 반대한다.



나는 결코 나만의 능력으로 University of Auckland에서 정치-사회 철학으로 Ph.D 과정을 이수 중이지 않다.

나를 다양한 사회 갈등과 문제에 대한 관심으로 인도한 수많은 사건들 속의 피해자분들이 계실 것이고,

수년간은 밥벌이를 하지 않아도 크게 지장이 없을만한 집안 배경도 있을 것이며,

나를 비교적 다른 과목보다 영어에 친숙하게 만들어준 선생님도 계실 것이다.


내가 존경하고 친애하는, 나의 동료이자 형님이신 그분은 그분의 능력 만으로 대리 기사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당장 밥벌이를 하지 않으면 곤란해지는 상황이 있을 것이고,

그의 전공이 사회-경제적 수명주기가 짧은 탓도 있을 것이며,

또 내가 미처 파악할 수 없는 그만의 궤적도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와 구성원들은 모두 한 걸음씩 진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나는 한국에서 마치 자신의 결과물이 모두 자신만의 성취인 양 구는 분들을 만나게 된다.

그런 분들에게 상호 관계망, 여기서 발생하는 우연, 그리고 각자가 선택할 수 없는 수많은 것들은 아예 고려 대상조차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분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마음속에 못된 질문 하나가 떠오른다.

"모두가 최순실을 비난하지만, 당신이 최순실이었다면, 최순실 위치에 있었다면, 그녀보다 덜했을까?"


# 매번 나의 못된 질문의 주인공이 되어 주시는 최순실, 아니 이제 개명해서 최서원 씨가 된 그분께 죄송한 마음 전한다.

# 오늘도 나의 모든 가설에 대한 검증은 다음으로 미룰 것이다. [칼럼니스트인 척] 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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