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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i generis Dec 11. 2024

계엄령과 탄핵

정치 영역 속 공화국의 시민으로서 우리의 역할

지난 2024년 12월 3일 22시 30분,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 계엄령을 발동했다.

국회의 비상 계엄령 해제 요구 의결로 관련한 최악의 사태는 잠시 모면할 수 있게 되었다.

같은 주말, 야당 주도로 대통령 탄핵안이 발의되었고, 여당의 불참은 이 안건을 부결시켰다.



곧 졸업을 앞둔 정치-사회 철학 전공자로서, 나는 이 일련의 사건들에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고 지나칠 수가 없다 (사실 지난달 마지막 날, 10여 년 간의 유학 생활을 정리하는 Ph.D 논문을 제출했던 터라 당분간 글쓰기와 멀어지고 싶었다. 하지만, 이 사태는 그러한 게으름을 단번에 벗겨내주었다).

여전히 어떤 결말로도 향하지 못한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분석이나 예측은 미뤄두고, 나는 이 사건들을 향한 간단한 소회만 기록해 두고자 한다. 


민주주의는 국가마다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배경과 함께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되고 실행되어 오고 있다. 

이 상이한 차이를 해설하는 것이 나의 주요한 목적은 아니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통상적인 분류법에 따라 간략히 언급만 해 본다면, Liberal Democracy, Representative Democracy, Social Democracy, Direct Democracy, and Parliamentary Democracy 등으로 대표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정치 체계는 대의 민주주의(Representative Democracy)로 분류될 수 있지만, 스위스처럼 국민투표(Referendum)를 통해 특정 법안을 처리하지 않는다. 

또한 대통령제와 결합된 의회적인 요소를 포함한 정치 체계는, 대통령 중심의 권력 구조와 함께, 전형적인 의회 민주주의 (Parliamentary Democracy)로 분류되지도 않는다.



우리 정치 구조의 외형에 관한 묘사는 이 정도로 해 두고, 이번에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재생산해 온 요소들에 초점을 맞춰 본격적인 논의를 이어가 보자.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이 요소들에 대해 다양한 시각들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사회 철학 전공자로서, 나는 우리의 민주주의 역사 속에 새겨진 "다수결로 표명된 국민 주권 의지"에 관한 확고한 신념을 이 발전과 재생산에 공헌한 것으로써 강조하고 싶다.



언뜻 보기에,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다수결로 표명된 국민 주권 의지'라는 말은 사실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우리는 이 민주적 의지 형성 (Democratic will-formation)을 그저 헌법 전문의 적법성 (Legitimacy) 관점에서 이해하지 않는다. 

동학 농민 운동에서 시작된 민중 투쟁은 80년 5월, 87년 6월, 그리고 최초의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진 2016년 촛불 항쟁 같은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 스스로를 더욱 구체화해 왔다.

이 구체화를 통해 우리는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 주요한 원리를 학습해 왔고, 이 학습은 우리가 민주주의 체제의 재생산에 필수적인 요소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이해하게 해 주었다.

우리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이 주요한, 그리고 필수적인 '다수결로 표명된 국민 주권 의지'라는 원리는, 일종의 규범성 (Normativity)으로써, 우리 일상에 배태된 것이다.



이 관점에서, 나는 앞으로 이번 계엄령과 같은 어떤 유사한 사태가 반복되더라도, 대한민국의 주권자들이 바라는 민주주의의 체계의 이상적 외관은 결코 손상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 적법성을 너머, 민주주의를 일상 속에 배태된 '다수결로 표명된 국민 주권 의지'로써 규범적으로 이해하는 대한민국의 시민들에게 계엄령과 같은 시도는 이들이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의 거부감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역사적 학습과 일상 속에 새겨진 규범적 원리를 통해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방식은 어쩌면 헌정 사상 두 번째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질 수 있을 이 사건 이후 공화국의 시민들에게 새로운 시사점을 줄 수 있다.

이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보기에, '다수결로 표명된 국민 주권 의지'처럼 규범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또 다른 민주적 원리들을 우리의 일상에 새롭게 새겨 넣은 일이 될 것이다. 

이 규범적 원리들은, 그 적법성에 대한 의존성을 너머, 우리 삶에 가장 분명한 현시 (Manifestation)가 될 수 있기 때문이고, 이 현시와 함께, 우리는 다소 간 당황스러운 역사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민주주의에 관한 어떤 새로운 규범적 원리들을 우리의 (좋은) 삶 속에 스며들게 할 수 있을까? (좀 더 강하게는, 각인시킬 수 있을까?)

우리는 이미 민주주의와 관련하여 그 정당성 (Justification)과 적법성이 충분히 식별된 여러 원리들을 알고 있다. 

예를 들어, 정치 영역의 참여에 있어 어떤 차별이나 배제도 지양되어야 한다는 원리, 정치 행위는 대화와 타협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원리, 그리고 민주 공화국 속에서 개인의 특수성과 다양성은 반드시 공존해야 한다는 원리 등등.



우리는 시대를 너머 서로에게 빚진 채 살아왔고, 이 부채를 통해 서로를 대한민국의 구성원으로서 승인하고 확언할 수 있었다.

애써 부정하려 해도 결코 우리 삶과 분리되지 않을 이 역사적 사실은 우리가 민주주의라는 체제를 단지 제도적 형식으로서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 재생산되고 실천되는 살아있는 규범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을 강하게 시사한다.

서로에게 빚진 존재로서, 우리는 과거의 역사적 학습과 동시대의 갈등적 상황들을 통해 민주주의를 단순히 이상적 정치 체제로 여기는 것 이상으로, 그것을 구체적인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 삶의 방식은 단순히 선거라는 절차를 통한 다수의 결정을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시민 개개인이 민주주의의 원리들을 각자의 윤리적 삶의 방식으로 내면화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윤리와 도덕을 보다 정밀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



결국, 나는 우리가 민주주의를 지속하고 재생산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 토대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에 적극적으로 답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민주적 원리들의 적법성을 너머, 우리는 일상적 선택과 행동의 지침으로써, 이 원리들을 어떻게 구체화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을 유보한 채 지금과 같은 정치 문화를 지속한다면, 우리는 어떤 쪽이 집권당이 되든, 당분간 '탄핵'이라는 단어와 끊김 없이 생활해야 하는 매우 불행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반대로, 나는, 이번 사태를 통한 교훈과 함께,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이 이 질문에 적절한 답을 일상 속에 구체화 하는 정도까지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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