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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i generis Jul 11. 2022

청소 노동자분들을 향한 소송?

서로에 대한 의무와 애착, 그리고 연대는 어디에?


얼마 전 연세대 재학생 3명이 임금 440원 인상, 샤워실 설치 등을 요구하며 농성에 나서고 있는 교내 청소 노동자분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자신들의 수업권 침해라는 것이 소송의 골자인 것이다.


이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제한된 정보로 인해 나는 단편적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소송을 제기한 학생분들의 입장도 여러 경로를 통해 더 접해볼 수 있다면 글쓰기에 도움이 되겠지만, 안타깝게도 나에겐 어떤 정보든 한정적이다.

따라서 나는 해당 사건을 기사로 접한 내용을 토대로 이 글을 작성 중임을 미리 밝혀야겠다.

강조하지만, 이 글은 매우 단편적인 서술 정도에 그칠 것이다.


나는 현재 연재 글을 통해, 독일 철학자 악셀 호네트(Axel Honneth)의 저서 "자유의 권리(Freedom's Right)"를 해설 중이다 (그리고 이 해설 편은 끝을 향해 가고 있다).

연재 글에서 소개한 것처럼, 호네트는 역사적으로 발전해 왔던 자유의 모델 중 불완전한 사고들은 무엇이고, 이러한 내용 상 불충분한 자유의 모델이 제도화된 행위 영역들을 구성원들이 잘못 해석했을 때 발생하는 병리적 현상들이 무엇인지를 설명한다.


내가 보기에, 호네트를 따라, 연세대 학생분들이 청소 노동자분들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은 자유를 개인의 권리 정도로만 해석해서 이를 극대화했을 때 발생하는 사회의 병리적 현상이다.

국가가 성문화를 통해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고, 이를 제도화한 법적 영역에서, 소송을 제기한 학생분들은 이 제도가 정당화될 수 있는 범주를 잘못 해석했다.

법적 영역은 우리에게 "외부의 방해를 받지 않고, 각자가 추구하고자 하는 삶의 방식에 관해 우리의 신념을 형성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주는 것으로 이해될 때 만이 그 정당성을 가진다.

그리고 우리는 이 권리가 부당하게 침해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우리는 국가의 강제력에 호소할 수 있다.

이 범주를 넘어서서, 구성원들이 법적 영역을 잘못 해석하게 되면,

서로에 대한 애착이나 의무, 그리고 연대를 망각한 채, 법적 용어 속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한 전략적 인간으로 남게 되고, 타인을 전략적으로 대하게 된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조해 주세요:

https://brunch.co.kr/@2h4jus/30


나는 소송을 제기한 연세대 학생분들이 그전까지 노동자분들과 얼마나 상호주관적으로 소통해 왔고, 그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의무나 애착, 그리고 연대성이 얼마나 논의되어 왔는지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나는 이 사건을 법적 영역에서 발생하는 사회 병리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학생분들이 소송 대상을 잘못 설정하여 한참을 멀리 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소송의 주요 내용이 학습권 침해라면, 소장을 제기한 학생분들은 노동자들이 아닌 학교를 상대로 제기해야 한다.

법으로 보장된 학생들의 수업권에 효력을 발생시키는 관련 법령이 존재하고, 이 법령을 적극 수행해야 하는 주체는 대학이다.

그런 주체는 제쳐두고, 자신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농성 중인 청소 노동자분들에게 자신들의 수업권을 골자로 소송을 제기했다는 사실이 나는 쉽게 납득도, 이해도 가지 않는다.

노동자분들 보다 대학을 상대로 소송을 벌이는 것이 그들에게 더 부담스러워서였을까?

아니면, 대학을 상대로 벌이는 소송에서 발생할지도 모를 불이익이 두려웠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차마 입에 올리기 어려운 그런 심리가 그들에게 작용했을까?



벌써 십여 년 전, 내가 같은 대학 대학원에 재학 중일 때에도 청소 노동자분들의 농성이 있었다.

당시에도 그분들의 주요 주장은 임금 인상과, 쉼터 마련이었다.

내 기억에 나를 포함한 당시 재학생들은 이분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일은 없었다.

이후 여전히 논란 중이지만, 최저 임금은 매년 동결 혹은 조금씩 인상되어왔고, 비정규직 노동자 쉼터는 계속 확장 중이다.

이제 우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분들이 화장실에서 식사나 간식, 휴식을 해결하는 일을 당연시하지 않는다.


# 어쩌다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가 차단된 채, 서로의 의사소통이 중단된 채, 여기서 발생하는 서로 간의 규범적 합의보다 법이 보장하는 권리에 더 의존하게 되었을까?

# 나는 우리 사회가 이전에 공유된 가치들, 규범들 그리고 관습들에 의존함으로써 우리가 좋은 삶을 살아갔던 방식들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 그리고 여기서 인간이, 사람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 그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의무, 애착, 연대는 시대에 뒤처진 고루한 사고방식이 되어가고 있다.

#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나만 잘 먹고 잘살면 되지"라는 사고방식에 단호히 반대한다.

# 그러한 삶에 관한 협소한 해석으로는 인간을, 세상을 전방위적으로 설명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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