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의... 너는 나의...
나는 지난번 발행한 글에서, 계엄령과 탄핵을 말할 때,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적법성과 규범성의 차이를 강조하고자 했다 (참고: https://brunch.co.kr/@2h4jus/40).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히 회고해 보면,
적법성은 법으로 제정된 후 제도화 된 사회 질서를 의미하는데, 법적 정당성을 배경으로 공적으로 작동하는 규범 체계를 지칭한다. 예를 들어, 도로 위 차선 위반은 법적으로 제재된다.
규범성은 법으로 명문화되지 않았지만, 사회 구성원들이 일상 속에서 공유하고 실천하는 규범적 질서나 원리를 의미한다. 따라서, 각자의 행위 양식은 다양한 방식으로 일상 속에 반영된다. 카페를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는 구성원들을 떠올려 보라.
규범성의 다른 예를 살펴보자.
내 경험상 서구 문화권에 있는 거의 모든 국가에서는 누군가 문을 열고난 후 뒤따라 오는 이가 있으면, 문을 연채 그가 나가도록 끝까지 기다려준다.
그리고 이 순간 서로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는다.
"Thank you/Thanks, buddy" - "You're welcome/Have a good one."
이러한 서로를 향한 행동은 인종을 가리지 않는다. 해당 국가의 사람들에서 이민자들까지 모두 서로에게 이 규범적 태도를 견지하고, 이는 규범적 원리로 우리 일상에 새겨져 있다.
지난 유학 생활동안, 나는 한국에 방문할 때마다, 이 규범적 행위를 시도해 보았고, 가장 최근, 지난 두어 달간 한국에 있는 동안에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이 행동을 모방했던 10년 전에는 나의 이러한 호의에 대부분 어색한 반응을 보였다.
뒤따르는 분들을 위해 문을 잡아드리거나, 반대로 내가 먼저 문을 열고 지나가시길 기다릴 때, 대부분 말없이 고개를 끄덕하고 지나가거나, 그냥 지나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지난번 방문에서 그 양상은 조금 달랐다.
무표정하게 지나가는 분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감사를 표하는 분들이 이전보다 더 많아졌다.
이 행위는 이제 한국에서 완전히 규범적으로 제도화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규범적 원리와 완전히 분리된 것도 아닌 '우리 사이'의 행동 양식으로써 진행 중인 것이다.
나는 이러한 방식으로 서로에게 존중을 표하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그리고 같은 역사를 공유하는 시민으로서, 서로를 확언하는 일상에 겹겹이 새겨진 규범성이 우리의 좋은 삶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이 규범적 태도는 누군가의 선도적 주창만으로 확산되지 않는다.
강요된 규범은 또 다른 의미의 정언 명령이 될 것이다.
이 정언 명령은 누군가에겐 억압이 될 것이고, 또 누군가의 거부감에 맞서야 할 것이다.
결국 나는 '우리'만이 바람직한 규범적 원리들을 우리 일상 속에 확산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확립된 규범적 원리들은 서로를 더 이상 경쟁자로, 비교 대상으로 여기지 않게 해 줄 것이고, 이에 반하는 행위들에 맞서게 해 줄 것이다.
나는 또한 확립된, 그렇지만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야 할 규범성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우리의 좋은 삶을 위한 필수 조건으로 여길 수 있다고 확신한다.
개인의 상대적 박탈감 - 경제적이든 신분적이든 간에 - 그리고 뒤따르는 소외감이나 고립감의 해소는 단순히 정책적 지원 만으로 완전히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실천하는 바람직한 규범적 태도는, 법과 제도의 한계를 너머, 사회적 변화를 위한 또 다른 동력이기 때문이다.
# 출산율 증가를 위해 정부와 각 지자체는 수년 전부터 상당량의 예산을 할당하고 있다. 그 효과가 미미하다고 할 수 없지만, 그것 만으로 불충분하다. 지위와 신분과 관계없이, 대한민국 구성원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그리고 우리가 일상 속에서 서로에게 그러한 확신을 줄 수 있다면, 출산과 양육은 사회 전체가 함께 하는 과정으로 더욱 잘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 정치 영역에서 우리는 서로를 향해 어떤 규범적 태도를 보여줘야 할까? 나는 현재 대한민국 내 일련의 사태에 대한 특정 정당의 입장과 지향점에 단호히 반대한다. 하지만, 그들을 멸칭하는 모든 시도에도 단호히 반대한다. 그리고 이 시도를 지양하고자 하는 지지자들로 구성된 정당이 한국 정치 영역 속 주류로 자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