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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과 윤리는 동의어인가?

이 둘의 혼용을 방지하기 위한 Introduction

by Sui generis


# 서양 정치 철학에서 도덕과 윤리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는 시도 역시 존재한다. 이 글은 도덕과 윤리를 구분하는 전통을 따라 전개되었음을 미리 밝혀두는 바이다.




서양 정치 철학의 전통에서 옳음(The Right)과 좋음(The Good) 사이의 논쟁은 긴 역사를 가지며, 지금도 이 영역에서 활발히 논의 중이다.


이 전통을 따라,

'옳음'은 일종의 보편적인 원칙을 기준으로 '도덕(Morals)' 개념에 상응한다.

'좋음'은 일종의 맥락적 규범이나 사회적 합의의 선상에서 '윤리(Ethics)' 개념에 상응한다.


대표적으로, 칸트적 전통을 기반으로 도덕은 "이것이 원칙적으로 옳은가?"에 초점을 맞춘다.

칸트의 정언명령 개념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보편적으로 옳은 행위는 특정한 맥락에 관계없이 개인의 의무로 간주된다.

다른 한편으로, 각각 차이에도 불구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덕 윤리, 공리주의자들 (제레미 벤담-Jeremy Bentham-이나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등등), 그리고 공동체 주의자들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 앨러스데어 매킨타이어-Alsdair MacIntyre-,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등등)은 "이것이 사회적으로, 혹은 공동체적으로 바람직한가?"에 주로 초점을 맞추면서, 윤리를 맥락적이고 상황적인 틀을 통해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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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도덕과 윤리를 구분하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한 일인가? 의사소통에 문제없으면 그만이지" 하고 주장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반문하고 싶다: "지금 한국 사회가 처한 다양한 갈등들이 이 둘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은 아닌가?"


한국 사회에서 도덕적 원칙과 사회적 윤리를 혼동하는 사례는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빈번하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흔히 "불륜은 도덕적으로 문제 있는 행동"이라고 말한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불륜이 보편적인 도덕 원칙을 어겼다"는 말이 된다.

(서양의) 정치 철학 전통에서 이 진술은 타당성을 갖지 못한다.

"살인을 해선 안된다, " 혹은 "거짓말을 해선 안된다"와 같은 원칙들은 특정한 관계를 너머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된다.

반면, "부부간의 신뢰를 지켜야 한다"는 결혼이라는 특정한 사회 제도 안에서 그 의미를 갖고, 따라서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절대적 원칙이 아니다 (보편적인 도덕 원칙은 인간의 존엄성과 보다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부부 사이에서도 '신뢰'의 정도를 다르게 설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 '스와핑'을 허용하는 부부 관계를 떠올려보라 (물론 한국인들은 도덕적 기준을 잣대로 '정상이 아니군' 정도로 여기겠지만).

여기서, 제도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몇몇 이슬람 국가에서 '일부다처제'가 허용되는 사례도 참고해 두자.


이처럼 특정 맥락에서만 그 의미를 갖는 '부부간 신뢰'라는 원칙은 모두가 따라야 하는 보편적 원리와 거리가 있다.

따라서, '부부간 신뢰'는 특정한 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판단되어야 하는, 개인이 좋음을 지향하는 윤리적 가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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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서구 국가들의 법적 전통을 따라, 한국의 헌법 재판소는 간통죄를 폐지했다.

'성적 자기 결정권과 사생활 자유의 침해'를 근거로 간통죄는 더 이상 형사 처벌의 대상이 아니다.

'부부간 신뢰'는 우리가 보편적으로 따라야 할 도덕적 원칙이 아니므로, 더 이상 형법 상 범죄가 아닌 것이다.

이는 국가가 '좋음'보다 '옳음'에 우선순위를 두었다고 볼 수 있다. 법은 개인의 사생활에 (좋음) 개입하기보다, 최소한의 법적 질서를 유지한다는 원칙을 (옳음) 따른 것이다.



그렇다면, 도덕과 윤리를 혼용할 때 발생하는 문제는 무엇일까?


한국 사회에서 불륜을 저지른 정치인은 도덕적으로 자격이 없는 것으로 통용되고, 실제 그의 정치 인생은 끝이 난다.

이 비판은 윤리적 문제를 도덕적 문제로 확대, 적용, 그리고 해석하면서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 사이를 구분하지 못한 결과이다.

이 두 영역에서 동일한 잣대가 적용됨으로써, 한국 사회는 도덕적 판단이 법적 경계를 넘어서면서 사회적 윤리로 작동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왜 도덕과 윤리가 구분되지 않았을까?"라는 물음에 명확한 답을 위해서는 역사학자들과 사회학자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내가 이 질문에 답을 시도해 본다면,

"전통적인 유교적 영향력 아래, 우리는 도덕을 (예를 들어, '효(孝)', '충(忠)' 등등) 단순한 개인적 규범이 아닌, 사회 전체 질서를 유지하는 핵심적 원칙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나는, 단순히 판단 기준을 너머, 우리가 도덕과 윤리를 혼용함으로써 논쟁의 핵심 사안을 적확하게 파악하지 못한다는 점을 더욱 뼈아픈 지점으로 지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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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과 젠더 갈등을 예로 들어보자 (한국 사회에서 다소 간 misdeveloped된 페미니즘은 예외로 남겨두자).

페미니즘 지지자들의 핵심 논지는 '도덕' 개념 주변에서 형성된다: "성평등은 보편적인 가치이며, 반드시 실현되어야 한다 (옳음)."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입장의 핵심 논지는 '윤리' 개념 주변에서 형성된다: "과도한 페미니즘이 남성과 여성의 갈등을 초래하고, 특정 집단에 특혜를 줄 수 있다" (좋음).


이 두 입장은 서로 다른 프레임 (도덕과 윤리) 속에 서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보기에, 이들은 자신들이 서 있는 틀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각자가 기반해 있는 틀을 간과한 채, 상대를 자신의 논리 구조 속에 가두고 논쟁을 이어간다.

이 논쟁은 어떤 의견 조율도 없이 감정적 충돌로 변질된다.


다소 간 감정적으로 격앙된 두 진영은 때로, 특정 논점에서는 자신들의 유불리에 따라 '좋음'과 '옳음'의 틀을 반대로 가져와 적용하기도 한다.

여성 징병제 논쟁을 예로 들어보자.

이 논쟁과 관련해서,

몇몇 페미니즘 지지자들은 "여성의 사회적 역할과 현실을 생각해 보라.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좋음'에 기반해 있다.

몇몇 반 페미니즘 지지자들은 "법적 평등이라는 원칙에 따라 여성도 국방의 의무를 가져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옳음'에 기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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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서구의 정치 철학 영역에서 좋음이 우선해야 하는지, 혹은 옳음이 우선해야 하는지에 대해 각 진영에서는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주장들을 발전시켜 왔다.

나는, 최근 경향성을 따라, 이 둘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것에 더 큰 관심을 가져왔고, 최근 제출한 논문에서 한 가지 가능성을 제시해 보았다.

다시 페미니즘 사례로 돌아가보면, 성평등은 기본적으로 '옳음'의 문제지만, 이를 구현하는 방식은 결국 '좋음'의 문제로 귀결된다.

다시 말해서, '옳음'을 주장하는 이들은 은연중에 '좋음'의 개념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대립 속에서 우리가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곳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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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시도는 아직 요원해 보인다.

여러 논쟁에서 우리는 여전히 '도덕'과 '윤리'를 구분하지 않은 채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둘을 뒤섞지 않은 채, 보다 정교하게 사용할 필요가 있다.

그럴 때 만이, 서로 대립하는 지점이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고, 불필요한 감정적 대립을 줄일 수 있을 것이며, 둘 사이의 접합점이 좀 더 가시적으로 묘사될 수 있을 것이다.

'도덕'과 '윤리'를 구별하는 것은 단순히 (철학적) 개념 정리가 아니다.

나는 이 명확한 구분과 사용이 한국 사회의 논쟁, 그리고 토론 문화를 정돈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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