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Ludwig Feuerbach)
한국 사회에서 서구의 '근대성(Modernity)'을 논의하거나 탐구하는 일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이 일은 주로 대학의 철학, 역사, 혹은 사회학이나 인문 교양 수업, 혹은 인문학 강좌에서나 발생한다.
그 결과, 우리는 서구 근대성이 성취해 낸 수 많은 결과들의 '낱말'에는 익숙해도, 그 '의미와 함의'에 관해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1항,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를 알지 못하는 국민은 없다.
하지만, '민주'의 정확한 의미를, 그리고 '공화국'의 함의를 설명해 달라는 요구에 정확하게 답하는 이들을 찾기는 어렵다.
기껏해야, 민주와 공화국으로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말은 '다수결?' '국가 체계?' 정도가 될 것이다.
데카르트에서 시작된 서구의 근대성은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합리론), 로크, 버클리, 흄 (경험론), 그리고 칸트, 셀링, 헤겔 (관념론) 등을 거쳐 그 화려한 열매를 맺었다.
이성, 합리성, 과학적 방법론, 진보, 개인주의, 자유, 국민 주권과 인권, 그리고 법치주의와 제도화 등은 모두 이 근대성의 핵심적 산물이다.
이들은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를 탄생시켰던 원동력이기도 하다.
이 근대적 유산들은 여전히 서구 사회를 지탱하고 재생산하는 강력한 힘으로 작용하고 있고, 따라서 서구의 근대성은 단순히 역사적으로 특정 시대에 고정된 채 사멸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포스트 모던적 사고들이 이 근대성에 강력한 의구심을 품고 있지만, 서구 사회의 동력은 여전히 근대적 규범성 위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서구 근대성의 또 다른 특징으로 이 기간 내 '신(God)'의 개념이 서서히 해체적 성찰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300여 년의 이 기간 동안, 인간은 '신'의 존재를 통해 세상을 해석하는 것과 점차 멀어졌고, 이 존재를 '인간' 범주의 영역으로 끌어왔다.
이 근대성의 역사를 통해 서구인들은 신의 지위와 영향력을 인간의 것으로 서서히 대체해 왔던 것이다.
수많은 철학자들은 인간을 신의 자리에 위치시키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루드비히 포이어바흐 (Ludwig Feuerbach)는 저서 "기독교의 본질 - The Essence of Christianity"에서 인간의 본질이 외부로 투영된 허상으로서 종교를 말한다.
몇몇 단락을 살펴보자 (개인적으로 철학자들의 작업에서 몇몇 Phrases를 인용하여 자신의 글을 치장하는데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지만, 이 글은 [소] 논문이 아니라며 스스로를 다독여 본다).
Man—this is the mystery of religion—projects his being into objectivity, and then again makes himself an object to this projected image of himself thus converted into a subject;
Ludwig Feuerbach, The Essence of Christianity, Prometheus Books, 1989, 29-30.
: 인간은 -이것은 종교의 신비다- 자신을 객관성으로 투영하고, 이후 스스로를 그 투영된 이미지의 대상으로 만들어 주체로 전환한다 (해석-본인).
Religion is the relation of man to his own nature, —therein lies its truth and its power of moral amelioration; —but to his nature not recognised as his own, but regarded as another nature, separate, nay, contradistinguished from his own:
Ibid., 197.
: 종교는 인간이 자신의 본성에 맺는 관계이다, — 여기에는 종교의 진실성과 도덕적 개선의 힘이 놓여있다— 그러나 그 본성에 관해, 종교는 인간 자신이 아닌 또 다른 본성으로, 별개의 것으로, 오히려 인간의 본성과 대립되는 것으로 간주된다 (해석-본인).
But every particular religion, while it pronounces its predecessors idolatrous, excepts itself—and necessarily so, otherwise it would no longer be religion—from the fate, the common nature of all religions:
Ibid., 13.
: 하지만 모든 특정한 종교는, 그 이전의 종교들을 우상 숭배로 선언하지만, 자신은 예외로 여긴다 - 필연적으로 그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 이상 종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 태생적으로, 모든 종교의 공통된 본성이다 (해석-본인).
서구인들은 포이어바흐와 같은 사상가들과 함께 신, 종교, 그리고 Christianity에 관한 자신들만의 개념들을 정제하고 발전시켜 왔다.
특히 서구의 종교인들은, 이러한 사상가들과 때로 불화 관계 속에 있었지만, 근대의 위대한 발명품인 '합리성(Rationality)'와 함께, 이 개념들을 성경 해석학적 관점에서, 혹은 인식론적 관점에서 재구성해 왔다.
스스로 보수임을 자처하는 광장 속 한국 개신교도들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로써, 나는 한국 사회에서 생략된 (특히 종교에 관한) "서구의 근대성에 관한 탐구"를 말하고 싶다.
내가 보기에, 이들은, 그 시작부터 신, 종교, 그리고 Christianity에 대한 발전적 재구성과 성찰 없이 미국식의 실용주의적 신앙 (번영 신학)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다.
서구 근대화의 과정 속에서 스스로에게 엄격했던 종교와 신에 대한 관념을 생략한 채, 종교의 외피를 입고 이 자칭 보수라는 개신교도들은 기복 신앙에 골몰한다.
"기도하면 죄가 사하여진다, " 혹은 "헌금하면 축복받는다."
그 결과, 이 단순화된 인과론은 신을 믿지 않으면 모두 사탄이 되는, 그래서 현대 사회의 맥락에 전혀 어울릴 수 없는 선과 악의 대립 구도를 대표하고 있다.
내 주장이 설득력 있다면, 이 보수 개신교도들은 샤머니즘과 자신들의 종교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왜곡된 자기실현 (distorted self-realisation)의 전형으로써, (자칭) 보수 개신교도들이 광장에서 정치적 목소리를 내게 될 때 종교와 신에 관한 발전적 개념의 결핍은 더욱 두드러진다.
정치는, 혹은 정치적인 것은 본래 선과 악의 대립 구도로 표상되지 않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됨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광장에서 선과 악을 더욱 강조한다.
광장에서 들려오는 "윤석열 대통령을 지켜야 나라가 산다"라는, 혹은 "계엄령은 계몽령이다"라는 구호를 보라.
이들에게 공적 영역 속 '우리'라는 공공의 정치 체계가 어떻게 민주적 의지 형성 과정에 공헌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요구하는 것은 과한 일이 되었다.
포이어바흐를 따라, 나는 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지고 싶다 (포이어바흐에 관한 비판적 평가는 논외로 하자).
"자칭 보수라는 대한민국 광장의 개신교도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욕망을 하늘에 투영하여 이를 '종교'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렇게 탄생한 종교에 자신들의 정체성을 대입하고 있지는 않은가?"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 기독교 공동체, 그리고 종교적 양심을 가진 이들 모두가 이 광장의 (자칭) 보수 개신교도들을 이대로 방치한다면, 우리는 곧 기이한 종교의 새로운 탄생을 보게 될 것이다.
지금보다 더 기묘한 형태의 그러한 종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