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Cas Mudde, 그리고 대한민국 보수(를 자처하는) 정당
I. 들어가며
이론적으로 포퓰리즘(populism)은 '일반 대중'을 강조하면서, 자신, 혹은 자신이 속한 정당이 이러한 민중의 일반 의지를 유일하게 대변한다고 주장하는 정치적 접근 방식을 지칭한다. 따라서 포퓰리즘은 복합적인 사회 문제를 단순화하면서, 제도적 절차나 정당성을 강조하기보다는, 직접적으로 대중 정서에 호소하는 특징을 갖는다. 브리타니카 사전에 정의된 populism은 다음과 같다:
populism, political program or movement that champions, or claims to champion, the common person, usually by favourable contrast with a real or perceived elite or establishment. Populism usually combines elements of the left and the right, opposing large business and financial interests but also frequently being hostile to established liberal, socialist, and labour parties (출처: https://www.britannica.com/topic/populism).
마지막 문장에 주목해 보자. 이 정의에 따르면, "포퓰리즘은, 대기업이나 금융 자본에 반대하면서, 보통 좌파와 우파의 요소들을 결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종종 기존의 자유주의, 사회주의, 그리고 노동당 계열 정당에 적대적이다."
흥미롭게도, 내가 보기에, 한국에서 '포퓰리즘'은 이런 방식으로 통용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한국의 포퓰리즘은 주로 '좌파'라는 단어와 함께 진보·좌파 정책에 대한 비판을 정당화하는 수사적 도구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좌파'와 '포퓰리즘'이 한 묶음의 단어인 것처럼 말이다. 이 글은 카스 뮈더(Cas Mudde)를 (가능한 간단히) 참조하여, 한국 정치에서 (급진) 우파 포퓰리즘이 작동하는 방식을 검토해 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뮈더의 포퓰리즘 개념과 그 정치적 작동을 간략히 살펴보는 것이 필수적이다.
II. 카스 뮈더(Cas Mudde): '얇은' 이념으로써 포퓰리즘
네덜란드의 저명한 정치학자인 카스 뮈더(Cas Mudde)는 유럽과 미국 내 극단주의, 그리고 포퓰리즘에 대한 학문적 관심과 함께 이들을 면밀히 관찰해 왔다. 특히, 저서 Populist radical right parties in Europe (2007)에서 그는 포퓰리즘을 특정 이데올로기의 중심이 아닌 부가적인 요소로 파악한다. 따라서, 뮈더는 급진 좌파나 급진 우파라는 용어가 그 자체로 포퓰리즘을 내포하지 않고, 포퓰리즘적 요소와 결합할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만을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그에 따르면,
"... populism is understood as a thin-centered ideology that considers society to be ultimately separated into two homogeneous and antagonistic groups, 'the pure people' versus 'the corrupt elite', and which argues that politics should be an expression of the volonté générale (general will) of the people" (Mudde, Populist radical right parties in Europe, 2007, 23).
> "... 포퓰리즘은 사회가 궁극적으로는 '순수한 대중'과 '부패한 엘리트'라는 두 개의 동질적이고 적대적인 집단으로 구분된 것으로 간주하고, 정치는 대중의 일반 의지의 표현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얇은 이념'으로 이해된다."
포퓰리즘에 관한 뮈더의 이 정의는 꽤나 많은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먼저 "two homogeneous and antagonistic groups"라는 어구에 주목해 보자. 이 표현은 포퓰리즘의 세계관을 구성하는 핵심 이분법을 설명하는 개념으로서, 이 세계관을 표상하는 정치적 구조를 상징한다.
여기서 '동질적(homogeneous)'이라는 표현은 다양성과 차이를 무시하고 하나의 본질적 정체성이나 도덕적 순수성으로 구성된 집단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된다. 예를 들어, 포퓰리즘 담론에서 '대중(the people)'은 다양한 계급, 성별, 종교, 배경, 성향 등으로 나누어져 있지 않고, '순수한' 혹은 '상식적인' 다수로써 일종의 단일한 도덕적 단위로 묘사된다. ‘엘리트(the elite)’ 역시 다양한 지식인, 언론, 경제 권력 등이 단일한 틀에 포섭된 채, '부패한', '이기적인', '기득권에 안주한' 집단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포퓰리즘적 틀 속에서 현실의 복합적인 사회 구성은 사라지고, 각 집단 내부는 전적으로 단일하고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전제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적대적인(antagnoistic)'이라는 표현은 이 두 집단이 (대중 vs. 엘리트) 공존하거나 협상할 수 없는 관계에 있고, 이 관계성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된다는 점을 지칭한다. 따라서, 포퓰리즘 담론 속에서는 '순수한' 대중과 '부패한' 엘리트 사이에 협상 가능한 이익 충돌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 보다, 이 관계는 정치적 투쟁, 도덕적 전쟁처럼 간주된다. 여기서 중재자나 중간 지대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 지점에서 주목할 점은, 포퓰리즘이 '도덕적 이분법의 정치'라는 것이다. 이 이분법의 정치 속에서, '국민'은 항상 도덕적으로 우월하며, '엘리트'는 부패했고 의심받아야 한다. 이 구조에서는 절차나 제도가 요구되지 않는다. 국민의 감정이 곧 정의이고, 그 의지를 거스르는 자는 모두 적이 된다. 이러한 도덕적 이분법은 포퓰리즘을 ‘대표’라는 제도적 중개 과정보다 직접적이고 도덕적 정당성을 중시하는 정치 형식으로 이끈다. 이러한 점에서, 뮈더는 포퓰리즘이 사회 전체를 도덕적 적대 구조로 형식화하면서, 민주주의의 제도적 기반을 잠식할 수 있는 위험한 토대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a 'thin-centered ideology'로 뮈더가 의도하는 바를 간략히 살펴보자. 그가 보기에, 포퓰리즘은 완결된 정치 이념이 아니다. 즉, 포퓰리즘은 스스로 정책적 방향이나 사회 구조에 대한 전면적 해설을 제공할 수 없고, 따라서 언제나 'host ideology'와 결합하여 작동하는 것이다. Cristóbal Rovira Kaltwasse와의 공저 Populism: A Very Short Introduction (2017)에서 뮈더는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Unlike 'thick-centered' or 'full' ideologies (e.g., fascism, liberalism, socialism), thin-centered ideologies such as populism have a restricted morphology, which necessarily appears
attached to—and sometimes is even assimilated into—other ideologies. In fact, populism almost always appears attached to other ideological elements, which are crucial for the promotion of political projects that are appealing to a broader public. Consequently, by itself populism can offer neither complex nor comprehensive answers to the political questions that modern societies generate" (Cas Mudde and Cristóbal Rovira Kaltwasse, Populism: A Very Short Introduction, 2017, 6).
> "'두터운' 혹은 '완전한' 이데올로기들과 달리 (예를 들어, 파시즘, 자유주의, 사회주의), 파시즘과 같은 얇은 이데올로기들은 제한된 형태적 구조(morphology)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필연적으로 다른 이데올로기에 부속되어 있거나 - 때로는 그 일부로 흡수되기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포퓰리즘은 거의 항상 다른 이데올로기적 요소들과 결합된 형태로 나타나며, 이는 보다 넓은 대중에게 호소력 있는 정치적 기획을 추진하는 데 필수적이다. 결과적으로, 포퓰리즘은 스스로 현대 사회가 제기하는 정치적 질문들에 대해 복합적이거나 포괄적인 해답을 제공할 수 없다.”
이처럼 사회 전체를 구조화할 만큼 두텁지 않은 포퓰리즘은, 뮈더에 따르면, 예를 들어 우파 민족주의와 결합할 때 반이민/반글로벌화 담론을, 좌파 사회주의와 결합할 때 반자본주의/기득권 타파의 서사를 완성할 수 있는 것이다.
"Given that populism is a thin-centered ideology, addressing only a limited set of issues, almost all populist actors combine populism with one or more other ideologies, so-called host ideologies. Broadly speaking, most left-wing populists combine populism with some form of socialism, while right-wing populists tend to combine it with some type of nationalism" (Mudde and Kaltwasse, 2017, 21).
> "포퓰리즘이 단지 사안의 제한된 부분만 다루는 얇은 이데올로기라는 점을 고려해 보면, 거의 모든 포퓰리스트들은 포퓰리즘을 'host ideologies'로 불리는 하나 혹은 그 이상의 다른 이데올로기와 결합시킨다. 폭넓게 말해서, 대부분의 좌파 포퓰리스트들은 포퓰리즘을 사회주의의 몇몇 형태와 결합하고, 우파 포퓰리스트들은 국가주의의 몇몇 형태와 결합시키는 경향이 있다."
III. 포퓰리즘의 정치적 작동: 포퓰리즘과 급진 우파(radical right)의 결합
나는 뮈더의 인상적인 공헌들 중 하나가 포퓰리즘이 급진 우파(radical right)와 어떻게 전략적으로 결합하고 있는지를 소상히 밝히고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우리는 '급진 우파'라는 용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뮈더는 그동안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았던 개념들을 보다 구체화함으로써, '극우(extreme right)'와 '급진 우파(radical right)'를 엄밀히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구분을 간략히 언급해 보면, 그가 보기에, 이 둘 간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태도와 이념적 정위에 있다. 즉, 극우는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반면 (e.g. 전체주의, 파시즘, 민족[사회] 주의 등), 급진 우파는 민주주의 기본 규칙 자체를 수용하지만 그 내용을 구성하는 자유주의적 요소들 (e.g. 소수자 권리, 권력 분립, 표현의 자유 등)을 문제시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급진 우파는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를 지향한다고 볼 수 있는데, 체제 전복적 노선을 택하는 집단을 극우라고 본다면, 급진 우파는 정당한 선거를 통해 집권을 노린다는 점에서 둘은 분명히 구분된다 (이와 관련하여, Mudde, 2007, §1.5를 참조하라).
뮈더는 현재 유럽과 미국에서 포퓰리즘이 특히 급진 우파(radical right)와 결합하며 강한 정치적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극우와 급진 우파 사이의 개념적 경계와 이론적 구조를 확립하기 위해, 뮈더는 먼저 극우 전체를 포괄하는 (i) (배타적) 민족주의(nativism)를 밝혀내고, 이 핵심 이념을 급진 우파가 공유한다고 진단한다. 이후 그는 민주주의 제도를 수용하면서도 자유주의를 부정하는 세력인 급진 우파를 별도로 이론화하고, PRR(Populist Radical Right)이라고 명명한다: 민주주의의 제도를 수용하면서도 그 안의 자유주의적 요소들을 부정하는 세력.
# 여기서 우리는 서구 사회에서 통용되는 '자유주의'와 한국 내 보수(임을 자처하는) 세력들이 사용하는 '자유주의'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라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내가 보기에, 후자는 다양한 경로들을 통해 가장 원시적이고 소극적인 형태의 자유 개념[외적 방해로부터 행위의 자유]을 쫓아왔기 때문이다 #
뮈더는 이 세력들이 민족주의뿐만 아니라, (iI) 권위주의(authoritarianism), 그리고 (iii) 포퓰리즘과 결탁해 있다고 진단하는데, 이 세 가지 축과 함께 그는 서구 사회의 급진 우파의 실천과 담론을 체계적으로 밝혀낸다. 재차, 우리는 여기서 얇은 이념으로써 포퓰리즘이 다른 이념들과 독립적이지만 결합함으로써 정치적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즉 포퓰리즘은 민족주의, 그리고 권위주의와 결합하여 급진 우파 이념의 정당성 구조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Mudde, 2007, Chapter 1. 'Constructing a Conceptual Framework'를 참조하라). 이해를 돕기 위해, 뮈더가 언급한 (i) 민족주의와 (ii) 권위주의에 관해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i) "... nativism is defined here as an ideology, which holds that states should be inhabited exclusively by members of the native group ('the nation') and that nonnative elements (persons and ideas) are fundamentally threatening to the homogenous nation-state" (Ibid., 19).
> "... (배타적) 민족주의는 여기서 이념으로 정의되는데, 이는 국가가 반드시 배타적으로 토착 집단 ('국민')의 구성원들만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 그리고 혁신적 요소들은 (사람이든 사상이든) 근본적으로 동질적인 국민 국가에 위협적이라는 점을 주장한다.
(ii) "... authoritarianism is defined in line with the dominant tradition in social psychology and the Frankfurter Schule. The concept is informed by the operationalization of 'The Authoritarian Personality' of Theodor Adorno and his collaborators, who interpret authoritarianism loosely as 'a general disposition to glorify, to be subservient to and remain uncritical toward authoritative figures of the ingroup and to take an attitude of punishing outgroup in the name of some moral authority'" (Ibid., 22. Adorno et al., The Authoritarian Personality, 1969, 228 재인용).
> "... 권위주의는 사회 심리학, 그리고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지배적인 전통에 따라 정의된다. 이 개념은 '테오도어 아도르노와 그의 동료들이 권위주의적 성격(The Authoritarian Personality)에서 제시한 개념화를 바탕으로 하는데, 이들은 권위주의를 다음과 같이 느슨하게 정의한다: '자기 집단 내 권위적 인물을 찬양하고, 복종하며, 비판 없이 수용하려는 일반적 성향, 그리고 어떤 도덕적 권위의 이름 속에서 외부 집단을 단죄하는 태도를 취하고자 하는 일반적 성향'.
IV. 한국 정치에서 (급진) 우파 포퓰리즘이 작동하는 방식은?
뮈더를 참조하여, 포퓰리즘이 정치적 전략이 아닌 정당성 구조의 문제로 볼 수 있다면, 우리는 한국 정치에서 (급진) 우파 포퓰리즘이 작동하는 방식을 파악해 보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그전에, 뮈더의 구분을 따라 한국 내 보수(임을 자처하는) 정당이 극우인지(extreme right) 혹은 급진 우파인지(radical right)에 관해 논의해 보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그의 개념이 유럽의 제도적 맥락과 이데올로기적 분화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한국 사회의 정당 구조 및 문화적 요소와의 일정 정도의 조율 역시 필수적이다. 하지만, 공간의 제약으로 인해 이 주제를 여기서 다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나는, 큰 틀에서, 적어도 한국의 보수(임을 자처하는) 정당이 민주주의 체제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는 전제와 함께 '급진 우파'와 유사한 입장으로 상정해서 논의를 이어가도록 하겠다.
뮈더가 제시한 급진 우파를 구성하는 세 가지 축을 한국 내 보수(임을 자처하는) 정당에 적용해 본다면, 다음과 같이 진단이 가능할 것이다. 첫째, 기본적으로 배제의 도구로써 (i) 민족주의는 '동일자'대 '타자'라는 대결 구도를 형성한다. '순수한' 혹은 '상식적인' 다수의 이름으로, 이민자, 소수자 등을 향한 배제와 강압적 유지 장치를 정당화하는 기재로써 민족주의는 한국 내 독특한 상황과 결합하여, 다소 기묘한 형태로 작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종북 프레임과 함께 '좌파=북한 옹호자'라는 등식을 반복적으로 활용하면서, 이를 대중 정서로 적극 활용하는 전략을 [(iii) 포퓰리즘] 빈번하게 활용해 왔다. 최근 이 등식은 '친중국'과도 결합하여 더욱 비합리적인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고, 내부적으로는 기독교인대 비기독교인의 대결을 더욱 공고히 하면서, 극단적으로 동질화된 ‘국민’ 개념을 재구성하고 있다. 즉, ‘순수한 혹은 상식적인 국민’을 상정하고 그 경계를 설정한 뒤, 해당 경계를 넘어서는 모든 타자들을 국가 정체성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배제의 정치는 (ii) 권위주의와 맞물려 작동한다. 권위주의는 국민의 ‘불안’과 ‘공포’를 자극하는 정치적 수사와 함께, 국가의 도덕적 중심을 자임하는 지도자(또는 정당)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등장한다. 여기에서 지도자는 '국민의 대표자'이기보다, '국민 그 자체'를 구현하는 존재로 등장하며, ‘순수한 혹은 상식적인 국민’의 감정과 판단을 대리할 뿐 아니라, 자신에 대한 비판을 곧 ‘국민에 대한 공격’으로 전환시킨다. 여기서 동원되는 경찰, 검찰, 법원과 같은 사법 집행 기관들, 그리고 감사원, 금감원 등의 공적 감찰 기구들은 국가의 '도덕적 척도'라는 역할을 자임한다. 이 과정에서, 이러한 기관들의 무리한 수사나 기소, 그리고 직무 감찰 등의 위험성은 극도로 축소되고, 사정권 안에 든 정치인, 경제인, 언론인, 그리고 사회 운동가나 활동가 등은 '국민의 적' 혹은 '상식의 배신자'로 낙인찍힌다. 재차,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iii) 포퓰리즘이다. 다시 말해, 절차적 정당성이나 제도적 정교함보다 '국민의 일반 의지'라는 이름 아래 정당화된 (정치적) 감정이 우선시 되고, 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으로 정치를 수행하는 것이다. 결국, 권위주의와 포퓰리즘이 결합된 이러한 정치적 작동은, 민주주의의 제도적 장치들을 자신들의 도덕적 정치에 예속시키고, 대의 민주주의의 핵심인 '다양성’과 ‘적법한 반론’을 잠식해 간다.
V. 마치며
한국 사회-정치 현실에서, 복지 확장이나 기본 소득 제안은 즉각 '선심성 정책', 혹은 '포퓰리즘'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이는 반대편 진영이 상대적으로 이러한 꼬리표들과 무관해 보이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온다. '동질성', '적대감', 그리고 '도덕성'과 함께 정작 국민 정서에 호소하는 방식, 적을 상정해 내부 결속을 다지는 방식, 그리고 강력한 리더십을 내세우는 언어가 한국의 보수(를 자처하는) 정당에서 더 빈번하게, 그리고 더 강력하게 활용되고 있음에도 말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카스 뮈더를 참조하여 우리는 한국의 급진 우파들의 정치적 전략을 검토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안에서 얇은 이념으로써 포퓰리즘이 작동하는 방식도 추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도덕적 이분법'으로써의 정치, 법적 정당성이나 절차를 강조하기보다는 '통치의 효과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언사, 그리고 철저하게 누군가를 '국가적 경계 외부'로 밀어내는 방식 등은 모두 전형적인 포퓰리즘의 징후들이다. 과연 그렇다면, 실제 포퓰리스트적 전략이 누구에게 더 자주 발견되는가? 진짜 위험한 포퓰리스트는 누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