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을 공유할 수 있을까? (Feat. Bonnie Honig)
I. 들어가며
사회 통합을 위한 좌파 헤겔적 접근 속에서, 나는 민주주의를 일종의 '살아있는 감정 체계', 혹은 '정서적으로 촉진되고 유지되는 삶의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흥미로운 시도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이해는 민주주의를 단순히 제도적 절차나 규범적 원칙의 집합으로 환원하지 않고, 구성원들 사이에서 형성되는 공감, 신뢰, 상호 인정과 같은 감정적 유대를 핵심 요소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감정은 단지 개인의 주관적인 요소가 아닌, 정치적 주체를 구성하고 공통의 ‘우리’를 형성하는 본질적 자원으로 작동한다.
마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 샹탈 무페(Chantal Mouffe), 에르네스토 라클라우(Ernesto Laclau), 그리고 보니 호닉(Bonnie Honig) 등은, 각각 분명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지속 가능성을 기술적, 규범적 설계가 아닌 감정적 동인에서 발견하고자 했던 정치 철학자들로 분류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라클라우와 무페는 공저 Hegemony and Social Strategy: Towards a Radical Democratic Politics (1985)에서 민주주의를 단일하고 보편적인 합리적 질서가 아닌, 항상 잠정적이고 분쟁적인 헤게모니적 결집의 결과물로 제시한다; 이후 라클라우는 On Populist Reason (2005)에서 대중이라는 공통의 이름이 어떻게 이질적인 요구들을 정서적으로 조직화하고 결집시켜 헤게모니를 형성하는지 설명한다. 여기서 민주주의는 고정된 제도나 규범이 아닌, 공통의 기표를 둘러싼 감정적 조직화의 전장으로 묘사된다. 유사한 맥락에서, 문화 이론가이자 문학 비평가인 로렌 버렌트(Lauren Berlant)는 민주주의를 정서적 실망과 애착이 반복되는 지속적 관계의 드라마로 이해하기도 한다. 그녀에 따르면, 이 드라마 속에서 시민들은 하나의 애착 구조로써 민주주의 속에서 정서적으로 계약과 실망을 반복하는 존재들이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은, Lauren Berlant, Cruel Optimism, 2011을 참조하라).
민주주의를 향한 이러한 이론가들의 정서적, 감정적 접근을 단일한 틀 속에서 해석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나는 한 가지 질문이 이들을 직간접적으로 대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 통합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공유할 수 있을까?" 이 글에서 나는 보니 호닉의 저서 Public Things: Democracy in Disrepair (2017)를 간략히 소개하면서, 공적 사물이 (좌파 헤겔적 접근 속에서) 사회 통합을 위해 특정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언급하고자 한다.
II. 공적 사물, 그리고 정서적 민주주의
보니 호닉은 저서 Public Things: Democracy in Disrepair (2017)에서 민주주의를 공적 사물(public things)에 대한 공유된 애착, 돌봄, 갈등, 그리고 재구성의 과정을 통해 유지되는 정치적 삶의 양식으로 파악한다. 그녀에게 공적 사물은 단순히 물리적 인프라나 국가 기반 시설이 아니다; 그보다, 공적 사물은 시민들이 함께 사용하고, 애착을 갖는, 때로는 그 결핍과 함께 투쟁하는 정동적(情動的-비가시적이지만 감응적인)이고 정치적인 매개체들이다. 호닉은 도서관, 수도관, 공원, 도로와 같은 사물들이 그 자체로 기능적 의미를 너머, 시민들 간의 공통된 경험과 돌봄의 관계를 조직하는 접속 지점으로 기능한다고 생각한다 (이에 관해, Honic, 2017, 26, 42-43을 참조하라). 인간 존재와 사물에 관한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작업, 그리고 위니컷(D.W. Winnicott)의 대상-관계 이론을 참조하여 호닉은 공적 사물을 민주적 시민 형성의 전이 대상으로 이해한다. 다소간 기묘해 보이는 공적 사물과 시민 간 이 관계 속에서 호닉은 반복적으로 우리의 공동체적 구성 요소로써 이 공적 사물들과의 정서적, 감정적 관계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논의할 지점이 많지만, 나는 민주주의를 향한 호닉의 정서적 접근 속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점으로써, 우리의 '(국가적 혹은 공동체적) 정체성 형성'을 공적 사물과의 관계 속에서 서술하고, 민주주의라는 공동의 감정 구조 속에서 해명한다는 점을 꼽고 싶다. 그녀의 주장처럼, 공적 사물이 개인의 정서적, 감정적 반응이 정치로 이행되는 통로라면, 이 사물과 우리의 관계는 민주주의에서 "함께하는 행위(Action in concert, Ibid., xiii)"를 가능케 하는 기반이 된다. 따라서, 사회 통합이 단지 제도적 설계나 법적 절차의 문제가 아니라면, 우리는 무엇보다도 공통의 사물에 대한 감정적 관계를 어떻게 구성할 수 있는지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는 결국 내가 Section I 말미에서 언급했던 "사회 통합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공유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으로 수렴된다.
III. 공적 사물의 부재와 사회적 붕괴
호닉적인 맥락에서, 공적 사물은 단지 공유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정치적 주체로서 서로를 인식하고 함께 세계를 구성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 이러한 사물들이 붕괴, 해체, 혹은 파괴되거나 사유화될 때 발생하는 것은 단지 시민들의 행정적 불편이나 정책 실패에 그치지 않는다; 그보다, 이는 시민적 삶의 조건 자체의 붕괴를 의미한다.
이 지점에서, 빈번하게 반복되는 우리 사회 속 공적 사물의 민영화 사례나 시도, 혹은 사유화를 떠올려보자: 공공 의료원이나 공항 시설, 그리고 도로에서 공영 방송까지. 이러한 공적 사물들이 더 이상 '공공의 것'이 아니게 되는 순간, 우리는 이 시설에 대한 공적 자격을 잃게 된다. 예를 들어, 의료원이 더 이상 공적이 아니라면, 호닉의 표현 속에서, 이는 단지 치료를 위한 공적 장소의 '상실'이 아닌, 민주적인 시민적 자기 형성을 가능케 하는 공간의 '소실'이다. 그녀에 따르면,
"Public things are part of the 'holding environment' of democratic citizenship; they furnish the world of demo cratic life. They do not take care of our needs only. They also constitute us, complement us, limit us, thwart us, and interpellate us into democratic citizenship." Ibid., 5.
> "공적 사물은 민주적 시민성의 '보존 환경'의 일부이다; 이들은 민주적 삶의 세계를 제공한다. 공적 사물은 단지 우리의 필요를 충족시키는데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또한 우리를 구성하고, 보완하며, 제한하고, 때로는 좌절시키기도 하며, 나아가 우리에게 민주적 시민권의 의미를 되묻는다."
상기 인용문에서 마지막 문장에 주목해 보자. 이 문장으로 (저작 전반에 걸쳐) 호닉의 의도하는 것은 공적 사물이 단순히 주어진 제도나 물질적 자원이 아닌, 우리가 스스로를 이러한 사물들 속에서 '정치적 주체'로서 '성찰'하고 이 성찰에 '응답'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는 공적 사물이 우리로 하여금 관심, 애착, 때로는 분노와 반대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 그녀는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I argue that democracy is rooted in common love for, antipathy to, and contestation of public things." Ibid., 4.
> "나는 민주주의가 공적 사물에 대한 공동의 사랑, 혐오, 그리고 갈등에 뿌리내리고 있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이러한 점에서, 호닉이 보기에, 공적 사물은 단지 동의를 이루는 장이 아닌, 우리의 차이와 갈등이 정치적으로 드러나고 표현될 수 있는 장이다. 따라서, 어떤 특정한 공적 사물이 (어떤 이유로든) 사라지거나, 민영화되거나, 혹은 사유화되는 경우, 우리 사회는 단지 제도적 장치 하나를 잃게 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 보다, 우리는 서로 다른 삶의 형식이 서로를 인정하고 충돌하며 공존할 수 있는 '공적 세계' 자체를 잃게 된다. 호닉에게, 민주주의는 공적 사물을 중심으로 한 '행동의 연합 (Action in concert)'이며, 이 연합을 가능케 하는 감정적이고 물질적인 세계의 구성과 분열 모두를 포함하는 살아있는 실천인 셈이다. 이러한 점에서, 그녀의 틀 속에서, 공적 사물을 둘러싼 투쟁이나 갈등은 민주주의의 위협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징후이자 가능성이 된다.
# 공간의 제약으로 자세히 다루지는 않겠지만, 호닉이 설정한 민주주의와 공적 사물 간 관계의 정당화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i) 첫째, 아렌트를 참조하여 호닉은 공적 사물이 행동의 장을 제공한다는 점을 해명하고; (ii) 둘째, 좀 더 급진적으로는, 위니컷을 참조하여 그녀는 우리가 정치적 존재로서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공적 사물의 역할을 강조하며; (iii) 마지막으로, 호닉은 공적 사물을 둘러싼 우리의 합의, 애착, 이견, 갈등 등이, '우리는 누구인지', '누구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지'와 같은 질문들과 함께, 민주주의의 징후이자 구성 요소임을 분명히 한다. 결국, 호닉에게 공적 사물이 없다면, (아렌트적으로는) 우리는 함께 행동할 수 없고, (위니컷적으로는) 시민으로 성장할 수 없으며, (민주적 실천적으로는) 갈등과 통합을 반복할 세계를 잃게 되는 것이다.
IV. 우리는 무엇을 공유할 수 있을까?
호닉이 옳다면, 우리는 사회 속 공적 사물의 민영화 사례나 시도, 혹은 사유화를 단지 시장주의적 관점에서만 해석해서는 안될 것이다. 공적 사물의 소멸은 단순히 접근 가능한 자원의 결핍이 아니라, 시민들이 서로를 동일한 세계에 속한 존재로 경험하고 애착을 형성할 기회를 빼앗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이 과정에서 민주주의는 점차 ‘절차적 합리성’으로만 축소되면서, 기능적 역할만 강조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점에서, 지금 우리가 겪는 상실감은 우리 사회에서 서로 간 공통의 감정을 형성할 수 있는 '접촉면의 소실'일 수 있다. 다양한 이유로 점차 축소되어 가는 '공적 사물의 평범한 공유성' - 행정과 소비의 디지털화, 1인 가구 증가로 인한 '함께하는 행위(Action in Concert)'의 구조적 감소, 고유한 폐쇄성을 가진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 등 - 은 '불편한 낯선 사람들'과의 조우 없이도 생활이 가능하다는 사고를 강화하면서, 민주주의에 필수적인 '함께 존재'하는 실천을 가로막는다.
마지막으로, 호닉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작업과 유사한 선상에서, 나는 우리의 공공의 기억, 그리고 공공질서 역시 우리가 공통된 정서적 장을 유지하고, 감정적 유대를 지속하게 하는 일종의 플랫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누구'이며 '어디에 속하고' '어떤 공통의 이야기들을 함께 구성할 수 있는지'를 구체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다면, 예를 들어, 지속적으로 광주 민주화 운동을 '광주 사태'로 폄하하는 이들은 우리가 공유하는 세계를 구성하는 공적 기억이나 이야기를 왜곡하면서, 민주 공화국 시민들의 정서적 애착을 손상시키고 해로운 갈등을 유발하는 자들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호닉적으로 말하면, 공동체 안에서 서로에게 빚지고 있는 '우리'라는 감각을 침식시키는 자들인 것이다. 유사한 맥락에서, 공공장소를 사적으로 점유하는 행위, 도로에 무단으로 쓰레기를 투기하거나 침을 뱉는 행위 등은 단지 에티켓의 문제로 축소될 수 없다. 이러한 행위들은, 우리가 서로를 같은 세계에 존재하는 시민으로 인식하고 배려할 수 있는 감정의 플랫폼을 손상시키면서, 공적 사물이 수행해야 할 '민주적 주체 형성의 기능'을 점차 무력하게 만들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V. 마치며
보니 호닉을 포함한 여러 이론가들이 시도했던 것처럼, 우리가 민주주의를 체제나 제도 개혁, 그리고 규범성 너머에서 상상해 볼 수 있다면, '살아있는 감정 체계', 혹은 '정서적으로 촉진되고 유지되는 삶의 방식'이라는 관점은 유망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호닉이 강조한 것처럼, 민주주의가 거대한 제도 이전에, 우리의 몸짓, 말투, 공간을 사용하는 방식, 그리고 타인과 접촉할 때 발생하는 사소한 긴장을 감당할 수 있는 감정적 구조에 의존하고 있다면 말이다. 공적 사물은 바로 이 구조를 실현하는 장치이며, 그것이 훼손될 때 민주주의는 제도 이전에 감정적으로 무너질 수 있다. 나는 우리가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정서적 공통 감각을 회복하고자 한다면, 공적 사물과 공간, 그리고 기억과 질서를 어떻게 함께 공유할 것인지에 대한 정치적 상상력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공적 사물과 공적 기억, 그리고 공공질서에 대한 공격은 곧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