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도구적 합리성 vs. 의사소통적 합리성
우리는 동일한 말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달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말하는 방식으로,
다른 하나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말하는 방식으로 전달할 수 있는 것이지요.
여기서 우리의 합리성은 두 가지로 나뉩니다.
첫째, 막스 베버(Max Weber)가 제시한 목적-수단 합리성, 즉 Zweckrationalität.
둘째,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가 이를 계승하면서 도구적/전략적 합리성으로 재구성하고 여기에 대비시켜 발전시켰던 의사소통적 합리성, 즉 kommunikative Rationalität.
도구적 혹은 전략적 합리성 속에서 우리는 주로 “어떻게 원하는 결과를 얻을 것인가”에 집중합니다.
여기서 말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효과를 위한 수단이 됩니다.
반대로, 의사소통적 합리성은 “무엇이 더 타당한가”를 묻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유와 근거를 통해 서로를 설득하려 합니다.
이제, 이 두 가지 합리성에 관해 하버마스가 우려했던 것을 간단히 살펴볼까요?
그는 근대 사회가 점점 도구적/전략적 합리성에 의해 지배되면서, 의사소통적 합리성이 점차 침식되고 있다고 봤습니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무엇이 더 타당한가를 묻는 대신, 무엇이 나에게 더 유리한가를 먼저 따지는 공간이 됩니다.
다시 말해, 상호 간의 이해를 통해 형성되던 우리의 일상적인 삶의 영역, 즉 생활세계가 점점 전략과 계산의 논리에 의해 잠식되고 있는것이지요.
제가 보기에, 최근 유시민 작가의 ABC 벤다이어그램 논쟁에서도 이 장면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유 작가의 말에 “그의 분석이 얼마나 타당한가?” “이 분류는 어디까지 적용 가능할까?”라고 반문하며, 각자의 의견을 형성/발전시켜 나갔다면, 우리는 의사소통적으로 반응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누군가 “이건 결국 특정 세력을 비판하거나 되살리려는 프레임이네,” “이런 식으로 갈라친다고?”라고 반응한다면, 이는도구적/전략적 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반응은 그 도식의 타당성을 검토하는 것이 아니라, 검토 자체를 무력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즉, ‘이건 프레임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이 말은 믿을 것이 못된다는 신호를 보내고, ‘갈라치기다’고 말함으로써, 이 말은 부당하다는 집단적 감정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러한 행위는 상호 간 이해를 위한 발화라기보다, 그 해석이 작동하지 못하게 하려는 도구적이고 전략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있습니다.
여기서 말은 현실을 이해하거나 설명하는 도구가 아니라, 특정한 의도를 유리하게 해석하기 위한 수단이 됩니다.
물론 공론장에서 갈등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샹탈 무페나 자크 랑시에르가 말했듯, 정치는 애초에 서로 다른 입장이 충돌하는 갈등의 장이니까요.
그래서 우리 삶에서 갈등 자체를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진짜 문제가 이런 갈등이 서로의 이해를 확장하는 방향이 아니라, 전략적 승패로만 소비되고 있는 우리 공론장의 상태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 공론장에서, 유시민 작가의 ABC 도식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여기에 의사소통적 합리성으로 타당성을 검증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아니면, 이 도식을 특정한 효과를 위한 도구로 활용하고 있을까요?
만일 후자의 경우라면, 앞으로 누가 더 정교한 분석을 내놓더라도 공론장의 큰 흐름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내용을 검토하는 것보다, 여기서 사용할 수 있는 전략을 먼저 찾아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는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저는 유시민 작가가 이 도식을 어떤 의도로 사용했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설령 유 작가가 전략적으로 이 도식을 활용했다 해도, 저는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여전히 우리 사회 속에서 상호 간의 이해를 통해 형성해 나갈 수 있는 규범들을 위한 공간이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 이제 정리해 볼까요? 유시민의 ABC론이 문제일까요?
아니면 모든 해설을 곧바로 전략으로 바꿔버리는 공론장 속 우리의 태도가 더 문제일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