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로시각표지

나는 낙지와 쭈꾸미를 아직도 구분할 줄 모른다.

by twohfiveownn
등대와 쭈꾸미 또는 낙지

이유

“이렇게 보고 있자니, 장 그르니에 밤에 대한 단상(斷想)이 생각나.”

공모전 촬영을 위해 부산 항구를 쏘아 다니며 지칠 대로 지친 내 입에서 나온 말이다.

사실 등대에 대해 골똘히 생각을 해본 적이 없으며, 나에게 등대는 소설 원작 영화“파도가 지나간 자리” 주인공이 서사를 써 내려감에 있어 처절함이 돋보이기 위한 하나의 맥거핀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느낀 점 단 하나, 저 안에 숨죽이고 사는 일은 고독하다는 것. 상상을 펼쳐보자면 저런 고독감 있는 직업을 내가 맡는다면 어떨지 하며 생각해 본 적 있다. 대신 보상이라 할까, 눈속임의 당위라 해야 할까. 외부 갈등 없는 무인도에서 평생을 사랑할 사람과, 적당히 작은 동물들, 괜찮은 색감의 햇살, 여름에도 약간은 쌀쌀한 바람, 부족함 없는 주기적인 보급품 등 표면상으로는 좋은 조건으로(성향이 맞는다면) 살게 될 섬 생활이 낭만적이고 아름다울까? 하며 생각을 이어갔던 것 같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다시 그 영화를 봤을 때 나는‘아닌 것 같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때 내가 있어 보이려 한 말이었는지 난 사실 장 그르니에가 남긴 밤에 대한 단상(斷想)을 모른다. 더듬어 보고 짜내어 보자면, 환한 낮이 있을 때 무수히 많은 시각 정보가 마치 마케팅 광고처럼 내 전신을 찌른다면, 밤은 ‘낮에 가려져 있던 본질이 드러나는 순간’ 정도로 이해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 밤 그렇게 나지막이 뱉은 이유는 일반인 출입 금지여서 멀리서 볼 수밖에 없는 푸른 등대 불빛과 마치 만나면 안 될 색이 만나 탄생한 물감으로 덧칠한 보랏빛 하늘이 나란히 어우러진 탓인 것 같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프레임 사이에 마치 렌즈에 생긴 멍처럼 낭만 없는 내가 있었다.


노랑과 주황 사이

확실히 항구는 황혼 무렵이 가장 돋보이기 마련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소싯적부터 황혼, 혹은 해넘이, 땅거미 다양하게 부르는 그 무렵을 참 좋아했다. 적확히 말하자면 지금도 유효하다. 어중간보다 살짝 낮은 위치의 그 시간대는 마무리하기에도 아쉽고, 시작하자니 늦은 것 같고, 기다리자니 짧은 묘한 느낌이라 좋아한다.

나는 그때 부둣가에 정차되어 있는 배를 찍고, 낚시하는 아저씨와 구조물을 찍었다. 그러다 아직 해가 완전히 지기 전 찍은 게 있는데, 그날 가장 마음에 드는 촬영 결과물이었다. 그것은 아무렇지 않게 바닥에 퍼져있는 낙지인지 주꾸미인지 모를 생명체였다. 이미 죽은 것 같았다. 아마 죽었을 거다. 나는 건들지 않았고 약 50cm의 간격 두고 셔터만 눌렀을 뿐이니까 아무런 물리적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알 수 없는 것 같다.

어중간한 시간대에 어중간한 생명체 두 구가 서로를 마주하고 있다. 이런 점이 재밌었다고 스스로 느끼지 않았나 싶다. 거기에도 등대는 있었지만, 너무 작아 볼품없다 느꼈는지 찍지 않고 돌아갔다. 아니면 내 기준에 멋이 없었거나.


청색

나는 나의 첫 소설에 관한 주제를 ‘물’로 정해서 쓴 적이 있다. 지금 보면 습작이라 칭하기도 부끄러운 편린이다. 그러나, 그 치기 어린 문장들이 애착이 간다.

물론 책을 낸 것도 아니고, 한글파일로 만든 방구석에 있는 나의 감정의 결함과격함과 구역질을 글로써‘배설’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수 있겠다.

그 당시에 나는 그래야만 했다. 나는 잠겨져 있는 걸 즐기며, 누군가의 동정과 관심을 격노로 표현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반기는 나는 이중적인 사람이다. 누구나 양면성을 띄우지만, 내 경우엔 그 불편함이 유독 도드라져 보였다. 단지 내 오행에 수(水) 다섯이라 의미 부여했는지도 모른다. ‘그 시절 나’는 그 시절에 내가 가장 잘 알기에‘현재에 당도한 나’는 알 길이 없다. 하나 주어진 힌트는 케케묵은 파일을 뒤져봄으로써 알 수 있었다.

그 시절 나는 고통의 기포가 온몸에 습진처럼 뒤덮여 있었다. 면밀히 보자면 그것은 ‘기억’이며, 그것들이 팽배할수록 나의 삶을 좀 먹는 기분이었다. 자책과 후회, 그리고 외면뿐이다. 그렇기에 그 결과물은 배설이 적합한 표현일 것이다. 보통은 소중히 여기기 마련인데, 나는 그러지 못했으니 감히 습작이라고도 칭할 수 없다. 나는 나의 것을 소중히 여기는 감각조차 무딘 사람이니까.


항로, 시각표지

바다는 망망대해 그리고 수저(水底)는 어디든 도망치기 좋다는 광경으로 나에게 다가오고는 했다. 그 대해에서 나는 물먹어 썩은 부표라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했다. 길고 지독하고 애달팠던 짝사랑이 끝난 것 같아 조바심도 나질 않는다. 어쩌면 자신에 대한 관용은 깔끔한 인정에서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늙어간다는 것은 활발한 나를 죽였고 귀찮음 많고 낙천적인 나를 다시 생성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사반세기가 지나서야 알게 됐다. 나는 등대에 관한 글을 쓰기 위해 위키를 살펴보는 제멋대로에 어리석은 사람이다. 결국 눈에 들어온 것은 항로 표지 중 시각 표지에 해당한다는 상식만 얻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파생된 생각은 “이 마른 갈대 같은 사람에겐 세부적이고 논리적인 항로가 필요하겠구나.” 마른 주제에 발은 달려서 도망은 잘 치는데, 이번엔 피하기 위함이 아닌 진취적인 일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수저 끝에 닿았다면, 이제 올라가는 일만 남았다.”라고 안심시켜준 사람들이 있다. 낭만이 없으면 죽어버릴 것 같은 시절에 그래도 된다는 당위를 찾아주거나, 나를 사랑 가득한 눈으로 봐주는 것이 그렇다. 스스로 장담컨대 내 인생에 사람이라는 등대는 둘이면 족하다. 종양 같은 기억은 항생제가 되는 기억으로 덧씌우면 그만이다. 그래서 고민은 지난 나의 청춘에게 맡긴 채 생각이란 걸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