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 - '괴물'
"나는 봤던 영화를 다시 보는 걸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어제 휴가를 다녀온 마지막날에 와이프와 영화 '괴물'(2023)을 봤다.
작년에 처음, 그리고 1년 정도의 텀을 두고 두 번째 시청이었는데,
다시 보고 나니 '내 눈이 옹이구멍 인가?' 싶을 정도로 놓친 게 많았다.
괴물은 친구가 추천해 준 영화였다.
한 번씩 그는 나에게 물 흐르듯 영화를 삽입한 적이 있었다.
여러 변천사가 있었지만 가장 기억나는 스타트는
어느 날 할 일 없이 놀러 갔을 때, PTA의 '데어 윌 비 블러드'를 시청했을 때부터 흥미를 느껴
감독/배우의 필모를 열심히 들여다봤고, 어느새 행사처럼 영화를 보는 일은 즐겁고 재밌는 일이 되었다.
그러다 나중엔 추천만 받고 혼자 시청하거나 와이프와 같이 보는 일이 많아졌는데,
자연스럽게 영화선정에 있어 '내' 기준에 '좋은'것만 시청하고 싶은 욕망이 커졌다.
아마 세월이 시간이 되고 시간이 기간이 될 만큼 나이 드는 속도가 빨라져,
내 시간을 씀에 있어 인색해졌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사실 부질없는 일이다. 부끄러운 일이고, 이기적인 관념이다.
그래서 다시 요점을 짚어 나에게 다시 보고 싶은 영화는 총 5편 안쪽인데,
선정 기준은 메시지가 '나에게 얼마큼 많은 영향을 끼치는지' 였던 것 같다.
그중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은 관객으로서 뿐 아니라 나의 삶에 물리적인 영향을 끼친 작품이면서
5편의 재 시청해야 할 리스트의 첫 번째로 아주 좋은 영화라고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극장에서 못 봤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꽤 흥행한 작품이라 사진을 넣고 싶지는 않다.
(저작권을 잘 모르기도 하고, 잘 모르면 안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 이후로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를 해주셨으면 좋겠다.
※ 스포일러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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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리뷰같이 깔끔한 정리와 내용은 이동진 평론가님
유튜브를 보면 정말 잘 나와있기에 본글에는 제외하고,
오롯이 내 개인적인 견해만 담고 싶다.
작년에 봤을 때 내가 이 영화를 통해 얻었던 건,
누구나 대충 봐도 느낄 수 있는 아주 '표면적인'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괴물이 될 수 있다."
내가 내 아버지를, 새어머니를 괴물로 만들고,
그들이 날 볼 때도 나도 한 명이 아닌 한 마리의 괴물이지 않았을까.
결혼식 전날, 당일날 10여 년간을 쌓아 올린 궤가 달라진 행방들은 억지로 맞닿은 교차점에서 토해내듯 풀어버렸다. 그 뒤로 사과를 받았고.
부끄럽고 지질한 나는 속으로만 넌지시 사과를 했다.
내가 가둔 나의 창살은 그날, 혹은 전 날에 따라 인테리어가 바뀐다.
구조도 바뀌는 미스터리 상자처럼 매번 겹치지도 질리지도 않고 수시로 바뀌어간다. 이 창살을 현재는 완전히 나왔는가? 묻는다면 글쎄,
적확히 답변하기 어려운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메시지는 결국 '메시지'라서 단순 가다듬고, 받아들일 수 있으나,
어디까지나 '경고'에 그치지, 막아줄 수는 없었다.
여전히 이중적이고 편협함에 휘둘려 단정 짓고 욕을 하고 밟혀본 적 있으면서 짓밟으려는 못된 짓과 상상을 번갈아 한다.
누굴 여전히 미워하고 합리화도 하면서 나는 적당히 청렴하길 바란다.
두 번째 시청은 영화를 더 면밀하게 보면서, 1년 전의 내 모습을 펼치고 자연히 잊고 있던 메시지를 상기시킴과 동시에 반성을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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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의 다짐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난 가끔 '괴물'이었다.
3가지의 챕터로 진실 같은 오해를 경유하여 "진짜"진실로 가는 구조는 친절하게 마음을 비집고 들어온다.
영화 시청 후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누면서 중간중간 생각을 골똘히 했다.
작년부터 오늘까지 돼지 뇌와 내 뇌를 번갈아 끼워가면서 사람인척 한 나는
"언제쯤 그런 통념에 밟힌 피해자 행세, 혹은 누군가의 시점에서의
끔찍한 가해자의 형상을 피해 갈 수 있을까." 하며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살아보니 역시 피해지는 건 아니라고 여겨진다.
악의가 없더라도, 다시 말해 저의가 없더라도,
서로가 상처를 받고 주기를 반복하는 건 익숙해지지 않을 뿐 불규칙한 리듬으로 찾아온다.
다시 봤던 '괴물'은 그런 이야기를 해주는 것 같았다.
주연을 두 아이로 설정한 것이
"점차 순수함을 잃어갈수록 의사소통은 어려워지고, 상처는 지속해서 쌓일 수밖에 없다"
는 의식을 심어준다고 느꼈다. '덜'은 있지만 '아예'는 없다.
그게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파훼라 보긴 어렵지만, 상대가 나 자신. 혹은 나만큼 사랑하는 상대라면
누구나 그 '괴물'로 보이길 원하지 않을 거라 생각이 든다.
교묘히 진실 같은 오해를 겪은 이들은 지능이 모자라서 상처를 주는 게 아님을 알고,
문제와 사람을 분리하여 이해하고 상대를 제대로 보려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