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황변된 기억들
초등학교 N학년. 대략 그쯤, 문방구 안에서 눈을 반짝이며 쳐다본 것들이 있었다. 그중엔 장난감도 많았고, 우리들이 사랑한 불량식품도 있었다.
이어서 케케묵은 푸념과 흐릿한 기억을 더듬어가면 여러 기억들이 흩어져있다.
미니카
주제보다 더 어릴 적 나는 미용실이 너무 무서웠고 가기 싫어서 아버지가 미니카를 사주셨다. 자르는 건 어찌어찌했으나, 샴푸를 할 때 눈을 떠버려 비명을 지르면서 가게 안을 뛰어다녔던 기억이 있다.
웃음거리가 된 아들은 머리 하나 정리하는 것에 참 손이 많이도 갔다.
아버지는 그날 문구점에서 완제품 미니카를 나에게 사주셨고,
나는 신나서 문구점 앞에 설치된 360도 서킷에서 성능을 체험해보고 싶었다.
당시 형들이 개조하던 골드, 블랙 모터의 출력을 바랐지만
내것은 기본으로 주어지는 소위"똥모터"에 불과했기에, 360도 서킷을 돌기엔 어림도 없었고,
흰색과 파란색이 어우러진 예쁜 나의 첫 미니카는 그대로 추락하여 곤두박질쳤다.
케이스는 파편들로 나눠지고, 뒤집혀서 처량하게 덜덜 구르던 바퀴들은 곧 정지했다.
그걸 바라보는 나도 스스로가 가여웠다.
그날 이후, 나는 미니카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게임
00년대 초반 내가 가장 애정하는 방방한 모양새의 크림색 학교 체육복을 입고 나와서 틈만 나면, 문방구를 들락거렸다. 명절 때 거진 다 엄마은행에 맡기고, 남은 돈 얼마를 주머니에 꼬깃꼬깃 박아 넣고 말이다.
가진 재화의 제약이 있다면, 남에게는 쓰레기여도 나에겐 보물인 법이다.
나는 마치 운명처럼 무더운 여름 어느 날 내 '보물'을 찾았다.
내가 홀린 듯 구매한 그 '보물'은 박스 패키지로 화려하게 꾸며진 일본식 RPG게임.
나는 원래 드래곤볼 게임을 사려고 들렀었다. 풀 3D가 막 도입돼서 여러 영롱한 기공포를 쏘고 상대를 때려눕히는 건 남자아이라면 참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결심하고 당당히 입장했지만, 청색빛 도는 패키지 뒷면에 게임 광고문구가 적혀있고, 모험과 낭만이 보였던 나는 제대로 이해는 했는지 드래곤볼을 두고 그 게임을 결제하고 나왔다.
당시엔 용량이 커 CD가 여러 장 나눠져 있는 게 일반적이었다.
내가 구매한 게임은 음유시인들의 방랑, 모험과 서사들이 있는 좋은 게임이었다.
지금이야 굉장히 수작이라고 느끼지만
당시 나는 그게 풀 3D인 줄 알고 구매했었기에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아무튼 실망은 실망이고 나는 내가 한 행동에 책임을 져야 했다.
그래서 마음 다잡고 컴퓨터를 켜서 설치를 시작했다.
그땐 시간이 많아 찔끔찔끔 올라가는 1%들이 은행잔고 쌓이는 것만큼 기뻤고,
풀 3D건 뭐 건간에 설치화면의 차오르는 바를 보면 가슴이 그렇게 떨릴 수가 없었다.
다 설치하고 게임을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어려운 난이도라서 중반부쯤에 포기했던 기억이 난다. 훗날 중학생이 되면서 최종장만을 남겨두고, CD를 분실했던 걸로 기억한다.
이처럼 소소하고, 나에게만 의미 있는 하찮은 기억이 수십 년이 지나서야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
.
그때 지불한 그 게임 음악이 정말 좋았지."
"돌이켜보니 이런 메시지를 내게 남겼지."
"당시에 나는 그걸 이해나 했을까?"
위와 같은 의문들이 떠올라서 바랜 사진들을 한참 동안 바라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한다.
그래서 돌이켜보면 위와 같은 트리거들이 지속성을 띄면서 나를 현재까지 감아버리고, 집어삼키는 게 아닐까.
정확히는 내가 감겨지길 바랐고, 집어삼켜주길 바란 것 같다. 아주 쉽게 몸을 내어주듯.
나중에 찾아보니 그 게임사는 음반사라는 별명이 붙은 음악에 진심인 게임회사였다.
그래서 그때 오프닝에 들었던 노래들을 한 번씩 유튜브로 듣고는 한다.
분명 다시 돌아가 본다면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화려하고 행복한 기억만 있는 게 아닐 텐데,
그렇게 그 시절의 목마름이 생긴다는 것은 참 묘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