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릿광대와 관객

만일✳✳+

by twohfiveownn

밤은 깊어지고, '만일'에는 어둠이 내려앉았다. 도시의 소음조차 스며들지 않는 이 고요한 공간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했다. 나는 홀로 남아 테이블을 닦고, 찻잔을 정리했다. 피아니스트 여자 이야기는 뼈아픈 진실을 내게 직면하게 했지만, 역설적으로 나의 시야를 넓혀주었다. 내가 굳게 믿었던 나의 고통이 순수한 피해자로서의 경험이 아니었음을 직면하게 했다. 그 충격 속에서 나는 다음 날 아침을 맞이했다.

희미한 여명과 함께, 가게 안으로 부드러운 빛이 스며들었다. 창문 너머로 도심이 서서히 기지개를 켜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지만, '만일'의 내부는 여전히 아늑하고 고요했다. 나는 잠에서 깨어나 익숙하게 몸을 움직였다. 어제의 혼란스러웠던 감정들은 밤사이 응고되어 내 안의 단단한 지층을 형성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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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터 너머로 향했다. 어제 점장이 남기고 간 연노랑색 쪽지를 다시 한번 펼쳐보았다. 로스팅 방법과 LP판 트는 방법이 상세히 적힌 글씨들은 이제 제법 익숙하게 느껴졌다. LP판을 턴테이블에 올렸다. 이번에는 어떤 음악이 이 공간을 채울까. 나는 앨범 커버들을 천천히 훑었다. 묵직한 무게감과 독특한 질감이 손끝에서 느껴졌다. 점장이 남긴 "잠시 출장을 다녀오겠다"는 짧은 메시지는 여전히 의문투성이였지만, 이제는 그 부재가 주는 막연한 불안감 대신, 홀로 이 공간을 책임져야 한다는 작은 책임감이 싹트고 있었다.

따뜻한 물을 끓여 차를 한 잔 내렸다. 잔에서 피어나는 은은한 차 향이 가게 안을 감쌌다. 어설프지만 정성껏 끓인 커피 향도 은은하게 퍼져 나갔다. 모든 것이 정지된 듯한 고요 속에서, 나는 불현듯 혼자 남겨졌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그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언제 다시 나타날지는 알 수 없었다. 내게 주어진 것은 오직 이 낯선 공간과 '접객원'이라는 막연한 임무뿐이었다.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다음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그들의 이야기가 내게 어떤 새로운 깨달음을 줄지, 그리고 내가 그들에게 어떤 '답'을 찾아줄 수 있을지, 막연한 기대와 함께.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짤랑', 작고 맑은 종소리가 울렸지만, 그의 등장과 함께 가게 안의 공기는 미묘하게 뒤틀리는 듯했다. 그는 어릿광대라고 자신을 불러달라 요청했는데, 그 이름만큼이나 그의 모습은 파격적이고 기묘했다. 말끔하게 재단된 짙은 남색 쓰리버튼 수트는 몸에 꼭 맞았지만, 그 위로 마치 따로 노는 듯 요란한 색색의 스트라이프 모자가 삐딱하게 얹혀 있었다. 모자 끝에는 작은 방울이 달려 있었는지, 그의 미세한 움직임에도 '딸랑' 하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울려 퍼졌다.

그의 얼굴은 흰색으로 칠해져 있었고, 입꼬리는 억지로 끌어올린 듯 부자연스러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러나 그 강렬한 분장 위로, 그의 왼쪽 눈 밑에는 실제 눈물 방울처럼 커다란 검은 점이 박혀 있었다. 마치 슬픔을 감추기 위해 억지로 웃는 광대의 비극적인 운명을 드러내는 듯했다. 키는 168cm 정도로 아담했으며, 통통한 체격과 평균에 못 미치는 외모는 전반적으로 그를 놀림받기 쉬운 대상으로 보이게 했다.

가게 안으로 들어선 그는 어딘가 불편한 듯 연신 몸을 움츠렸다. 그의 시선은 바닥을 헤매거나 테이블 끝에 간신히 걸려 있었고, 굳게 맞잡은 손은 불안하게 떨리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이 공간에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민폐인 양, 존재감을 지우려는 듯한 몸짓이었다. 이내 그는 쭈뼛거리며 내게 시선을 옮겼고, 극도로 긴장한 탓인지 목소리는 쉬어 있었다.

"ㅈ,,저..기 안녕..하세요..?"

그는 겨우 한 단어 한 단어를 쥐어짜내듯 어렵게 말을 꺼냈다. 그의 입술은 희미하게 떨렸고, 눈물 점이 박힌 눈은 마치 용기를 내어 세상에 간신히 손을 내미는 어린아이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그 모습에서 나는 알 수 없는 익숙함과 함께, 그가 짊어진 고통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정갈한 쓰리피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짧게 그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의 시선은 불안하게 떨리는 눈꺼풀 아래서 방황하다, 이내 테이블 한 귀퉁이에 놓인 낡은 턴테이블에 닿았다. 마치 그 작은 기계가 자신에게 어떤 해답이라도 줄 수 있을 듯, 그는 뚫어져라 그것을 응시했다. 가게 안에 흐르는 고요는 그에게는 견딜 수 없는 침묵인 듯했고, 그의 어깨는 미세하게 들썩였다. 나는 그의 불편함을 읽었지만,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그에게 필요한 건 어떤 위로의 말이나 행동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아주 작은 계기임을 직감했다.

이윽고, 그의 눈동자가 천천히 나를 향했다. 그 눈빛에는 간절함과 함께, 다시 조롱받을지도 모른다는 깊은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다. 그는 자신의 손에 들린 무언가를 내밀었다. 그것은 마치 오래된 빛바랜 사진 같기도 했고, 아니면 뭉쳐진 종잇조각 같기도 했다. 묘한 형체를 띤 그것은 그의 손아귀에 너무나도 단단하게 쥐어져 있어, 마치 자신의 마지막 자존심이라도 되는 양 놓치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의지가 느껴졌다.

그는 심호흡을 했다. 들숨과 날숨 사이, 팽창했다가 수축하는 그의 가슴팍에서 거친 숨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마침내 그는 입을 열었다. 이전의 떨림은 여전했지만, 이번에는 한결 단호한 울림이 그 안에 담겨 있었다.

"저… 저… 그게… 어… 어릿… 어릿광대입니다."

그 말은 단순한 자기소개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이 짊어진 모든 낙인과 고통을 스스로 인정하는 선언이자, 동시에 이 모든 것을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처절한 외침처럼 들렸다. 그의 눈물 점 아래로, 진짜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일단 앉으실래요?" 나는 불안한 그의 모습에 생채기라도 날까, 조심스럽게 권했다.

"ㅇ..앗!..네,넵! 그러겠습니다."

그는 더듬거리는 말 뿐 아니라 행동도 더듬거리며 착석하려고했다.

하지만, 긴장한 그는 그런일 조차 어려웠을까. 의자와 같이 몸이 뒤로 젖혀졌다.

"콰당! 쿵." 잠시 적막이 흘렀다.

육중한 소리가 가게 안에 울려 퍼졌다. 잠시 적막이 흘렀다. 어릿광대는 바닥에 넘어진 채 그대로 굳어버렸고, 그의 요란한 모자는 머리에서 벗겨져 테이블 아래로 굴러갔다. 작은 방울 소리가 '딸랑… 딸랑…' 하고 여운처럼 희미하게 울렸다. 그의 흰색 분장 위로, 당혹감과 수치심이 붉게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는 자신의 몸을 일으킬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마치 모든 시선이 자신에게 꽂힌 양 그대로 얼어붙어 있었다. 나는 재빨리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나는 괘념치 말라는 제스처와, 그를 일으키고 자리에 착석을 도왔다.

앉고나서 그는 다시금 떨리는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ㅈ,.,.죄성 합니다!" 정확히 이런 발음이었다.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목소리로.

"많이 안 다치셨어요? 혹시 음료는 어떤 걸로 하시겠어요?" 나는 그의 사과를 가볍게 넘기며, 그의 긴장을 풀어주고자 부드럽게 물었다. 그의 불안감을 덜어주는 것이 우선이었다.그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모자를 찾으려는 듯 손을 더듬거렸지만, 차마 고개를 숙인 채 움직이는 것을 어려워하는 듯했다. 나는 조용히 테이블 밑으로 굴러간 모자를 주워 그의 손에 쥐여주었다. 모자의 작은 방울이 '딸랑' 하고 다시 한번 울렸다. 그는 모자를 받아 들고도 한참 동안 말없이 그것을 매만졌다.

"ㅇㅏ… 아뇨… 그… ㄱ..괜찮습… 괜찮습니다…"

겨우 음료에 대한 대답을 내놓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불안정했다. 그는 여전히 주춤거렸고, 질문을 받은 아이처럼 눈치를 보았다. 그의 눈 밑에 찍힌 눈물 모양의 검은 점은 그의 불안한 심리와 겹쳐져 더욱 처연하게 보였다. 나는 그가 자신을 감춘 분장 뒤에서 얼마나 힘겹게 버티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섣부른 위로보다는 그가 온전히 스스로를 드러낼 시간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혹시 긴장을 좀 완화시켜 줄 수 있는 차로 제가 알아서 내어 드려도 괜찮을까요?"

나는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그의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조금이라도 열 수 있다면, 이 차 한 잔이 작은 실마리가 될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는 고개를 살짝 들었다. 망설임이 비쳤지만, 이내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침묵은 긍정의 의미였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나는 대답을 확인하고 몸을 돌려 바(bar)로 향했다.

오픈 준비때, 음악을 틀어놓는 것을 깜빡한 나는 돌아가는 길에 잠시 들러, 턴테이블로 향했다. 인근에 꽂힌 앨범들을 훑다가 문득 눈에 들어온 쳇 베이커의 'My Funny Valentine' LP판을 집어 들었다. 바늘을 조심스럽게 올리자, 낡은 스피커에서 재즈 특유의 잔잔한 잡음과 함께 쳇 베이커의 허스키한 트럼펫 선율이 서서히 흘러나왔다. 그의 고독한 음색은 어릿광대의 떨리는 어깨 위로 내려앉는 위로처럼 공간을 채웠다. 불안하게 흔들리던 그의 심장 박동을 닮은 듯 불규칙하게 시작했지만, 이내 고요하고 아련한 흐름으로 이어졌다.

찰랑이는 물소리가 주전자에 담기는 소리를 냈다. 정성껏 고른 허브차 티백을 꺼내 따뜻한 물이 든 찻잔에 담갔다. 옅은 연기가 피어오르며 은은한 허브 향이 바 공간을 채웠다. 나는 차를 준비하는 동안에도 테이블에 앉아 있는 어릿광대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힐끔힐끔 그의 뒷모습을 살폈다.

그는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인 채, 손에 든 모자를 멍하니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어깨는 축 처져 있었고, 요란한 광대 분장은 오히려 그의 깊은 좌절감을 더욱 두드러지게 만들었다. 그의 등 뒤로 보이는 금이 간 스마트폰 액정 속 '노력은 가상한데 얼굴이 재능 없는 마술사'라는 제목이 문득 섬뜩하게 다가왔다. 저 작은 글씨가 한 사람의 존재를 얼마나 나락으로 떨어뜨렸을까. 따뜻한 찻잔을 들고 다시 그의 테이블로 다가갔다.

"차 나왔습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의 앞에 찻잔을 내려놓았다.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은은한 허브 향이 그의 코끝을 간질였다. 그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했지만, 찻잔을 향해 희미하게 손을 뻗었다. 그의 손가락 끝이 찻잔의 따뜻한 온기에 닿자, 미세하게 떨리던 그의 몸이 조금은 진정되는 듯했다.


"저… 정말… 죄송합…니다… 흐읍…"

다시 한번 쥐어짜듯 나온 목소리였다. 그는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여전히 바닥을 응시하며 흐느끼듯 중얼거렸다. 그의 눈 밑에 박힌 커다란 검은 점이 진짜 눈물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의 사과를 끊지 않고 조용히 기다렸다. 그에게 필요한 건 변명이나 위로가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온전히 쏟아낼 수 있는 시간과 공간임을 알았기에.

그는 천천히 찻잔을 들어 올렸다. 찻잔이 덜덜 떨리는 입술에 닿자, 그는 길게 숨을 들이쉬며 차 향을 맡았다. 그리고는 차가운 몸 안에 따뜻한 기운이 퍼지는 듯, 조금씩 아주 조금씩 긴장이 풀리는 모습이었다. 이내 그는 찻잔을 내려놓고, 마침내 나를 향해 시선을 들었다. 그의 눈에는 여전히 두려움과 간절함이 뒤섞여 있었지만, 이제는 무언가를 무언가를 결심한 듯한 미세한 단호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는 손에 쥐고 있던 낡은 스마트폰을 덜컥 하고 테이블 위로 조심스럽게 밀어놓았다. 화면 속에는 여전히 아까 확인했던 영상이 정지된 채 떠 있었다.

나는 가느다란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제가 재생해봐도 될까요?"

"ㅇ..ㅖ..예, 괜ㄴ찮,,습니다." 그의 떨리는 승낙에 나는 조심스럽게 스마트폰을 넘겨받았다. 금이 간 액정 위로, 멈춰 있던 영상의 재생 버튼이 눈에 들어왔다. 손가락으로 가볍게 터치하자, 화면 속에서 '그'의 모습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영상은 허름한 길거리의 작은 자선 바자회를 배경으로 시작했다. 삼삼오오 모여든 사람들은 아이들의 웃음소리, 물건을 흥정하는 소리로 북적였다. 화면의 초점은 흔들렸고, 누군가 급하게 촬영을 시작한 듯 어설펐다. 화면 중앙에는 어릿광대 분장을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지금 내 앞에 앉은 남자보다 훨씬 어설프고, 분장도 다소 조잡했다. 그는 손에 낡은 트럼펫을 들고 있었는데, 불안한 손짓으로 악보를 넘기려는 듯 주춤거렸다. 그의 눈에는 긴장감과 함께, 아이들을 향한 순수한 열망이 반짝이는 듯했다.

그는 어릴 적부터 남들 앞에서 나서거나 주목받는 것을 두려워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항상 무대 위에서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작은 무대였지만, 그에게 트럼펫을 불고 마술을 선보이는 것은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서는 '용기 있는 시도'였을 터였다.

이내 그는 입에 트럼펫을 가져다 댔지만, 곧바로 '삑사리' 나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화면 밖에서 "푸하하하!" 하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광대는 당황한 듯 눈을 질끈 감았다. 다시 한번 트럼펫을 불었지만, 또다시 귀를 찢는 듯한 불쾌한 소음이 터져 나왔다.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더욱 커졌고,한 남자의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그 순간, 광대의 입꼬리에 억지로 그린 미소가 파르르 떨렸다. 그는 울음을 참는 듯 눈을 깜빡였고, 그의 눈 밑에 찍힌 검은 눈물 점이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영상은 그의 어설픈 마술 시도로 이어졌다. 그는 손수건이 비둘기로 변하는 마술을 시도했지만, 비둘기 대신 손수건이 뭉쳐진 채 바닥으로 떨어졌다. 관객들은 이제 대놓고 "저게 뭐야!?", "야, 너 집에 가서 잠이나 자라!" 라며 야유를 퍼부었다. 그들의 야유는 영상의 낮은 해상도에도 불구하고 끔찍하게 선명하게 전달되었다. 마지막으로 광대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 어깨를 들썩이는 장면으로 영상은 끝이 났다. 그리고 그 위에 섬뜩하게 박힌 **'노력은 가상한데 얼굴이 재능 없는 마술사'**라는 제목이 클로즈업되었다.


나는 영상 아래 달린 댓글들을 천천히 훑었다.


'솔직히 저 면상으로 마술한답시고 나대는 거 역겹지 않냐? 찐따들은 자기 분수 좀 알았으면'

'아니 ㅋㅋㅋ 진짜 이게 방송 탄다고? 편집자는 뭔 생각이지? 조회수 빨려고 별 지랄을 다 하네'

'저 얼굴 보면 하루 종일 재수 없음. 눈갱 당하고 간다. 비추 박고 차단함.'

'관상은 과학이다. 딱 봐도 관종 아니냐? 저런 애들 보면 괜히 내가 더 민망해 죽겠음.'

'아직도 이딴 영상에 좋아요 박는 새끼들이 있다고? 수준 진짜… 내 세금으로 저딴 병신들까지 먹여 살려야 하나?'


하나하나가 칼날처럼 날카로운 문장들이었다. 익명의 댓글 속에는 증오와 조롱, 경멸이 여과 없이 담겨 있었다. 그들의 언어는 어릿광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있었다. 나는 손에 든 스마트폰이 마치 뜨겁게 달아오른 숯덩이처럼 느껴졌다. 내 얼굴이 화끈해질 정도였다.

아무리 익명이라지만, 이건 너무심하다고 느꼈다. 감정적 배설, 일시적인 유희는 자체로도 용서가 안된다 생각했는데, 이건 명백히 '살인'이었다. 비판이 아닌 비난만 계속되는 어느 익명인 한사람의 토악질에 많은 인간들이 애워싸서 표면의 노출된 한사람을 짓이기고 있다. 아마 자각도 못한채,

"그냥 돌 한번 던진 것 뿐이에요~"

그들은 그렇게 발을 뻴것이다. 미성숙 하다는 말조차 아까운 버러지들이었다.

나는 생각 중 상대방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도 잊을만큼 속이탔다.

음악도 들리지 않았다. 우선, 나는 맞은편 어릿광대에게 차분하고 조심스럽게 입을땠다.


"그들이 무서운 이유는, 그들이 당신의 고통을 즐기면서도 그것이 죄가 된다는 자각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말이 실제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하지 못해요. 아니, 이해하려 하지 않죠. 그저 잠시의 유희를 위해 타인의 삶을 짓밟는 거죠."


내 목소리는 가라앉았지만, 말은 점점 날카로워졌다.


"온라인은 그들에게 자신들의 불안감이나 열등감을 손쉽게 해소할 수 있는 배설구에 불과합니다. 당신을 조롱하며 얻는 일시적인 우월감, 타인의 불행을 보며 느끼는 안도감, 그것이 그들의 동기입니다. 당신의 어설픈 마술은 그들에게 자신들의 초라함을 덮을 수 있는 가장 쉬운 먹잇감이었을 뿐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감히 시도조차 못 할 용기를 가진 당신을 끌어내리면서, 자신은 안전하다고 착각했을 겁니다."


나는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차 향이 코끝을 스쳤지만, 내 안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더 무서운 건, 그들이 떼를 지어 돌을 던진다는 겁니다. 한두 명이 던질 때는 주저하던 사람들도, 다수가 동조하는 순간 아무런 죄의식 없이 동참하죠. '모두가 하니까 나도 괜찮겠지', '나는 그저 작은 목소리일 뿐이야' 라며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그 안에서 집단적인 면죄부를 얻습니다. 그들의 비난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 그들 자신들의 비겁함과 무책임함을 증명하는 행위일 뿐입니다. 당신의 가치는 그들의 한심한 말 한마디로 훼손될 수 없습니다."

어릿광대의 얼굴은 여전히 굳어 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이 모든 말을 놓치지 않고 흡수하려는 듯 집중하고 있었다. 그 안에 일렁이는 혼란과 함께, 아주 미세하게 그의 낯빛엔 이해의 결이 스치는 듯했다. 그러나, 수를 잘못 둔 오델로(Othello)처럼 곧바로 표정이 우울함으로 반전됐다.


나는 어릿광대의 우울함이 짙어진 얼굴을 마주했다. 말이 떨리는 건 어느정도 멎었지만 그의 눈빛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로웠다.

"하지만... 하지만 결국 그들이 옳았어요. 저는 그저... 노력해도 안 되는 한심한 광대였을 뿐입니다. 그들의 말이 다 맞아요. 어설프고, 볼품없고, 역겨운... 제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달라지는 건 없었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깊은 체념이 배어 있었다. 나는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닙니다. 그들은 틀렸고, 당신은 옳았습니다."


내 목소리는 떨렸지만, 한마디 한마디에 진심을 담으려 애썼다.

"당신이 봉사 활동을 시작한 이유, 그 작은 바자회에 섰던 이유, 그건 당신이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고, 그저 세상에 따뜻한 웃음을 선물하고 싶었던 순수한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외로웠기에 타인의 웃음 속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으려 했다는 당신의 고백, 그것은 결코 '관종'의 행동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외로운 자가 세상에 내밀 수 있는 가장 용기 있는 손길이었습니다. 스스로를 고립시키지 않고, 타인에게 다가가기 위해 당신이 택한 유일한 방법이었을 테죠."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 어릿광대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혹시, 제가 틀렸다면 말씀해주세요. 당신은 왜 그곳에 섰습니까? 무엇 때문에 그 모든 조롱을 감수하면서까지 마술을 하고 트럼펫을 불었나요?"


그는 고개를 푹 숙였다. 어깨가 들썩이는 것이 보였다. 낮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저는... 저는 늘 혼자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남들과는 좀 달랐고, 그래서인지 친구를 사귀기도, 사람들 틈에 섞이기도 어려웠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히 조용히 지내는 게 익숙해졌죠. 말수도 줄고, 늘 제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외로움이 가장 친한 벗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 한구석에는 늘... 사람들과 함께 웃고 싶다는, 그 작은 소망이 있었습니다. 어울리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제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존재가 되어 보자는...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했어요."


그의 목소리는 점점 더 희미해졌다.

"그래서... 그래서 봉사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작은 바자회, 고아원, 양로원... 제 노래를 들려주고, 마술을 보여주면 사람들이 잠시나마 웃더라고요. 서툴러도 괜찮았습니다. 웃어주는 그 얼굴들이 저에게는 세상의 전부였습니다. 회사에서도 늘 혼자였지만, 봉사 활동을 하는 날만큼은 제가 살아있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어릿광대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눈물 점 아래로 진짜 눈물이 겹쳐져 흘러내렸다.

"회사 동료들이 제가 봉사 활동하는 걸 알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특이하다'는 반응이었죠. 그러다 누가 저 몰래 영상을 찍어서 익명 게시판에 올렸습니다. '관종 또 지랄한다', '얼굴도 못생긴 게 웃기지도 않네' 같은 댓글들이 달렸어요. 처음에는 몇 개 안 됐는데... 어느 날 누군가 그 영상을 편집해서 올린 거예요. 제가 가장 크게 실수했던 장면들만 모아서... '노력은 가상한데 얼굴이 재능 없는 마술사'라는 제목으로."


그는 고개를 들었다. 눈물로 얼룩진 흰색 분장이 처연했다.

"그때부터 지옥이었습니다. 회사 사람들은 제 앞에서 대놓고 킬킬거렸어요. 제가 화장실만 가도 '삑사리 내러 가냐', '비둘기 만들어봐라' 비아냥거렸습니다. 제 자리에 마술 지팡이 그림을 그려놓기도 하고, 제 이름 대신 '광대'라고 불렀어요. 인사조차 안 받아주는 건 기본이고, 제가 말하면 다들 웃거나 대놓고 무시했습니다. 그때 깨달았어요.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에게 저는 그저 웃음거리일 뿐이라는 것을요.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손에 든 스마트폰을 덜컥 하고 테이블 위로 조심스럽게 밀어놓았다.

"그래서 저는 제가 '어릿광대'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들이 정의한 저의 모습이요. 제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는 저의 진짜 모습... 그들이 옳았습니다. 저는 그냥... 그런 존재였어요."

그의 절망적인 고백은 잘만든 신파처럼 날 찔렀다. 그의 고통은 단순히 온라인 조롱을 넘어, 그의 삶 전체를 짓눌러 온 외로움과 좌절감의 결정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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