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롱하는 그림자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만일✳✳✳

by twohfiveownn

'인생은 원래 쓰레기 더미와 같고, 우습게도 그 안에 보석 가루들이 여러모로 흐트러져있어요. 그 더미에서 찾아내는 것은 평생도 더 걸릴 수 있죠. 아무튼, 잘해봐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잃었다고, 절규에 가까운 고백을 쏟아냈다. 그가 겪어온 모든 일들, 감내하는 고통의 비화들이 나는 아름답게 느껴졌다. 삶의 무게에 짓눌린 채 온몸을 움츠리고 떠는 모습, 새가 날개를 다쳐 처절하게 파닥이는 그 처연함 속에는 지극히 원초적인 생명의 존엄이 깃들어 있다. 아마 그도 종만 다를 뿐, 사람들의 눈에 그리 비칠 것이라 생각했다.

우리는 많은 부분들을 간과하고는 한다. 단단한 기준을 세울수록 필연적인 허점이 생기고, 경외시 하는 마음은 의존을 염두에 두며 사고를 멈추게 한다. 사유가 깊어질수록 신중함은 생기겠지만, 과유불급이라. 필요 이상 골똘히 사유한다면, 그건 필시 독이 될 것이다. 나는 내가 그를 단지 '고통받는 아름다운 새'로 단정 짓고, 그 깃털 하나하나에 담긴 진실을 파고들기를 멈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쳤다. '노력해도 안 되는 한심한 광대.' 그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은, 온라인의 익명들이 던졌던 비난의 문장이었다. 하지만 어쩐지 그 말을 내뱉는 그의 목소리에는 깊은 체념과 함께, 그 스스로가 그 낙인을 온전히 내면화했다는, 그래서 누구보다 그 말을 믿고 있다는 뼈아픈 진실이 담겨 있었다.

나는 어릿광대의 축 처진 어깨와 눈물로 번진 분장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나는 오직 그가 짊어진 '피해자'라는 역할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의 행동과 말속에서 내가 놓쳤던 미세한 균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나에게 묻지도 않은 사과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ㅈ,.,. 죄성 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마치 사과하는 것이 몸에 밴 사람처럼. 하지만 그 사과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진심이라기보다, 혹시 모를 비난과 조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필사적인 방어 기제처럼 느껴졌다.

그의 분장은, 자신의 상처받은 감정을 숨기려는 방패였을까? 아니면...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정당화하기 위한 가면이었을까.

그 순간, 나는 눈앞의 이 사람이 '피해자'의 가면을 쓰고 있지만, 그 또한 온라인의 관객들과 다르지 않게, 어둠 속에 숨겨진 '또 다른 칼'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가설을 떠올렸다. 익명의 그림자들이 온라인이라는 익명성의 장막 뒤에서 칼을 휘둘렀다면, 그는 자신의 고독하고 은밀한 공간에서 그 칼을 휘두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가 겪었던 고통이 그를 '피해자'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그 고통은 그를 '가해자'로 변모시켰을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생각.

나는 차가 식어버린 찻잔을 다시 들었다. 그의 고백으로 가득 찼던 공간에 서늘한 공기가 스며드는 듯했다. 어릿광대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침묵하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그를 관찰했다. 그가 털어놓은 이야기는 진실이었지만, 그 진실의 이면에는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또 다른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을 것만 같았다.

누구나 괴물이 될 수 있다.

그때, 테이블 위에 놓인 그의 스마트폰이 짧게 진동하며 빛을 냈다. 그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미세하게 떨리는 손을 뻗어 화면을 잡았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의 눈빛이 화면 위로 스쳐 지나가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황급히 화면을 끄려 하기 전, 액정 위로 아주 짧게 스쳐 지나간 알림. 발신인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이제 제발… 언제까지 그럴 거니."


아마, 내가 또 다른 이면의 가설을 제시하지 않았다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겠지만 분명 내 눈에 포착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던 나는 가설을 바탕으로 좀 더 면밀하고 빠르게 추리를 시작해야 했다.


먼저, 나의 시선은 그의 왼쪽 뺨에 그려진 검은 눈물 점에 꽂혔다. 선명하게 아래로 흐르는 모양은 방금까지 그가 쏟아낸 눈물을 연상시켰지만, 문득 그 경계선이 미세하게 번져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제 눈물이 흘러 분장이 뭉개진 것이 아니라, 마치 억지로 그려낸 듯한 부자연스러움. 그리고 그의 코끝에서 희미하게 스쳐오는 알코올 향. 그것은 분장용 접착제나 특수 화장품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였다. 평소 분장이라는 것에 무지했던 나지만, 어쩐지 그 향은 낯설지 않았다. 찰리의 뮤지컬 분장을 도울 때 맡았던 바로 그 냄새였다.

그렇다면, 그는 정말 '막' 울었던 걸까? 아니면 '막 운 것처럼' 보이기 위해 분장을 더욱 과장했던 걸까.

나는 시선을 내려 그의 손에 들린 모자를 다시 보았다. 낡고 해진 천 조각. 하지만 그 위에 달린 방울은 지나치게 반짝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모자 안쪽 챙 부분에 손때 묻은 흔적 대신, 거의 새것에 가까운 희미한 얼룩이 보였다. 마치 사용된 지 얼마 안 된 새 모자를 일부러 낡은 것처럼 꾸민 흔적 같았다.

그리고 그의 발음. "ㅈ,.,. 죄성 합니다!"와 같은 더듬거리는 말투는 긴장과 수치심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그의 발음은 일관되게 특정 음절에서만 불안정했다. 마치 특정 단어를 의도적으로 흐트러뜨리는 연기처럼. 실제 언어 장애라면 모든 발음이 고르지 못할 터. 이건 계산된 서투름이었다.

나는 찻잔을 든 그의 손목으로 시선을 옮겼다. 덜덜 떨리던 그의 손은 여전히 불안정했지만, 그 떨림이 일정했다. 심장이 격렬하게 뛰는 사람의 떨림이라기보다는, 지속적으로 힘을 주고 있는 듯한 부자연스러운 떨림. 마치 자신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려는 듯한, 연출된 몸짓처럼 느껴졌다.

그의 눈은 다시 내게 향했다. 여전히 비애와 간절함이 뒤섞여 있었지만, 이제 내게는 그 속에 감춰진 깊은 계산이 읽혔다. 그는 자신의 고통을 증명해야 했고, 그 증명을 위해 모든 것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에게 이 '만일'의 공간은 그저 또 하나의 무대에 불과했던 것이다.

스마트폰 알림. 그 알림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었다. 밖에서 쌓인 조롱과 분노를 '집'이라는 밀실에서 풀어냈음을 암시하는 직접적인 증거. 그가 내게 쏟아낸 처절한 비화는, 밖에서 당한 모욕을 누군가에게 고스란히 전가하며 얻는 기묘한 해방감을 숨기기 위한 화려한 장막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분장은, 자신의 고통을 증명하는 순결한 가면인 동시에, 이면의 추악한 진실을 감추는 가장 정교한 거짓말이었다. 그의 떨리는 목소리는 진실을 말하고 있었지만, 그 진실은 오직 절반에 불과했다. '나는 불쌍한 피해자입니다'라는 절규는, '그러니 내가 다른 사람을 괴롭혀도 죄가 되지 않습니다'라는 궤변이었던 것이다. 나의 확신은 어느새 차가운 돌처럼 굳어졌다. 내가 지금 마주한 것은 고통받고 있는 억울한 예술가가 아니라, 자신의 상처를 이용해 타인을 조종하는 능숙한 연극배우였다.


그렇게 정리하고 나니, 방금 전까지 내가 느꼈던 깊은 연민과 감동은 흔적도 없이 산산조각 났다. 그가 메시지를 확인하는 찰나, 나는 유심히 그의 얼굴 쳐다봤다. 그리고 그의 울상을 짓는데 필요했던 안면 근육이 미세하게 경련하는 것을 나는 포착했다. 단 한순간, 그의 눈빛에서 모든 비애가 사라지고 차가운 돌덩이 같은 기류가 스쳐 지나갔다. 마치 가면을 쓴 배우가 자신의 대사를 잊고 내면의 악마를 드러내는 것처럼, 그의 얼굴에는 낯선 분노의 흔적이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 섬광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다시 원래의 슬프고 유약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나는 참지 못해 덜덜 떨리는 손으로 찻잔을 내려놓았다. 찻잔이 테이블에 부딪히며 '딸각' 하는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그 소리에 어릿광대가 움찔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는 여전히 비애가 담겨 있었지만, 내 눈에 그 모습은 더 이상 처절하게 파닥이는 새가 아니었다. 겉으로 드러난 절망을 이용해 타인의 동정을 구하고, 그 동정심이 자신을 합리화하는 방패가 되자마자 뒤에서는 칼을 휘두르는, 이중적인 모습이었다.

그의 눈 밑에 그려진 검은 눈물 점은 이제 슬픔의 상징이 아닌, 스스로 지은 죄를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낙인처럼 보였다. 밖에서 온갖 조롱과 무시를 당하며 무너진 그의 자존감은, 집이라는 폐쇄된 성역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향해 기묘한 우월감을 되찾았을 것이다. 그가 내게 쏟아냈던 모든 처절한 비화는, 사실 밖에서 당한 고통을 집 안으로 옮겨와 풀고 있다는 것을 은폐하기 위한 화려한 서막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세상이라는 거대한 무대에서 가장 비극적인 광대 역할을 연기했고, 그 무대 아래에는 그가 던진 돌에 맞아 피 흘리는 이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 역시,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처량한 광대아저씨 연극을 멈춰야 다음 단계의 진전이 있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던 나는 적막을 먼저 깨트렸다. 떨리던 손의 감각을 억누르며, 나는 차갑게 식어버린 찻잔을 다시 들었다. 그리고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아주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방금 전, 휴대전화로 온 메시지… 혹시 괜찮으신 겁니까? '언제까지 그럴 거니'라는 말씀이 마음에 걸려서요."


내 목소리는 담담했으며, 그 안에 담긴 의미를 그는 정확하게 읽었다. 그의 눈에 비치던 찰나의 희미한 분노가 다시금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 마치 미동조차 않던 차가운 호수에 돌멩이가 떨어진 것처럼, 그의 표면에 일렁이던 유약함의 가면이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차갑게 굳어버렸다. 입꼬리는 더 이상 떨리지 않았고, 축 늘어졌던 어깨에는 경계심이 바짝 섰다. 마치 연극의 막이 내리고, 배우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듯했다. 그제야 나는 그의 분장이 왜 그리도 어설펐는지, 과장되다 못해, 우스꽝스러운 연출들이 얼마나 의도된 행동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외형과 행동들 모두, 나의 동정을 이끌어내기 위한 의도적인 '소품'이었던 것이다.


"훔쳐.. 보신 겁니까?"


그의 목소리는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이전의 더듬거리는 발음 대신, 명료하고 차가운 울림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그는 찻잔에서 손을 떼고, 테이블 위에 놓인 금이 간 스마트폰을 무심하게 집어 들었다. 그 손가락 끝은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나는 조금 더 신중했어야 했다. 그가 나를 본인이 상처받았던 익명의 인간들. '조롱'하는 그림자들과 같은 선상에 놓았음을 직감했다. 그는 지금, 또 다른 '적'을 마주하고 있었다. 동정을 유발하는 가면이 통하지 않자, 그는 이제 공격을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궁금한 게 많으신 모양이네요."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테이블을 돌아 내 옆에 바싹 다가섰다. 풍채에 걸맞지 않은 날렵 함이었다. 유약하고 멍청해 보이던 나약함은 온데간데없이 나를 빠르게 제압했고 흉하게 일그러진 얼굴이 불과 5cm만을 남겨두고 맞대고 있었다. 얼굴에 드리워진 그림자 때문에 그의 표정은 명확히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그의 눈에 광채가 번뜩이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마치 어두운 숲 속에서 먹잇감을 노리는 야수처럼, 숨겨왔던 본능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코끝에 다시금 알코올 향이 진하게 풍겨왔다.


그는 놀라울 정도로 침착했다.


"모든 걸 다 아시는 것처럼 말씀하시고." 그의 목소리는 조롱하듯 낮게 깔렸다. "제가 불쌍한 피해자라고 생각하셨겠죠. 그래서 제가 한 모든 일이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셨을 겁니다."

그는 자신의 손으로 뺨의 눈물 점을 가볍게 쓸어내렸다. 그 행동은 분장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마치 얼굴에 단단히 박힌 가면을 재확인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의 손이 내 어깨 위에 놓였다. 아까까지만 해도 덜덜 떨리던 손은 이제 뜨겁고, 건조하며, 굳건했다. 그 손아귀에 담긴 힘은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는 이전과 다른 '무언가'가 되었다.

"하지만 당신 같은 사람들은, 언제나 아름다운 비극만 보고 싶어 하죠. 그 비극이 진짜 누구를 피 흘리게 했는지는 관심이 없고."

"당신은 제 이야기가 필요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내면의 끔찍한 진실을 파헤치듯 울렸다.


"저의 불행을 당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던 거죠. 그래야만 당신의 상처가 정당화되고, 당신이 겪었던 고통이... 특별해지니까."

그의 마지막 말이 내 머릿속을 꿰뚫고 지나갔다. 나는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그가 내게서 본 것은 그 어떤 것도 아니었다. 오직 나의 상처였다. 그는 나라는 인간을 찰나에 꿰뚫어 보고, 가장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치부를 건드렸다.

"제가 불쌍합니까?" 그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울렸다. "아뇨, 당신은 저를 통해 당신 자신을 측은하게 여긴 겁니다. 저는 당신의 연민을 위한 무대에 오른, 그저 평범한 배우일 뿐이었습니다. 왜 본인이 관객이라고 여겼는지 저는 이해가 잘 되지 않는군요."


그는 해괴하게 웃었다. 그의 분장이 된 입꼬리가 섬뜩하게 올라갔다.

이질적이며, 해괴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나를 돌려세웠다. 그의 얼굴은 내 코앞에 있었다. 눈물 점 아래로 번져있던 분장이 그의 위선적인 미소와 어우러지며, 이 세상의 모든 추악함을 응축한 듯한 기괴한 형상을 만들어냈다. 나는 꼼짝없이 굳어진 채, 그의 그림자가 내 심장 위로 드리워지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의 분노에 찬 시선이 내 영혼을 갉아먹는 듯했다.

그는 굳건한 손으로 내 어깨를 움켜쥐고 흔들었다. 그가 쏟아내는 말들은 날카로운 파편처럼 나를 찔렀지만, 나는 그 말들에 맞서 싸우는 대신, 그의 손에 붙들린 채 그를 조용히 응시했다. 광대는 무력으로 나를 더 제압하려고 이리저리 흔들어 댔지만, 나는 애써 침착하며 말했다.


"그래서.. 할 말은 다 하셨습니까?"


나의 침묵 속에서 터져 나온 그의 표정은 분노 이상으로 도리어 절규에 가까웠다. 나는 억지로 숨을 들이켰다. 사실 온몸이 두려움에 떨렸지만, 나는 그에게 삿대질하는 대신, 아주 작은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그만하세요… 제발. 이게 본인이 말하던 말로 찌르던 사람들과 다를게 뭡니까."


나의 한마디에 그의 격앙되었던 표정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는 나를 꿰뚫어 보려던 시선을 거두고, 마치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황한 사람처럼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분노는 갑작스레 풀려버린 활시위처럼, 순식간에 공허함으로 변했다.


"… 당신을 비난하려는 게 아닙니다. 당신이 겪은 고통은… 제가 감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다는 걸 알아요."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나의 진심을 담아 말했다.

"하지만 당신의 이야기는 진실이고, 그 진실은 당신의 고통을 정당화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연민을 가장 원하는 사람은… 바로 당신 자신 아닌가요?"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는 내게서 손을 떼고, 마치 모든 힘을 잃은 것처럼 테이블에 기대어 섰다. 험악하게 일그러졌던 얼굴은 다시 처음 만났을 때의 처연한 광대처럼 돌아왔다. 그는 천천히 몸을 돌려 창밖을 응시했다. 차가운 유리창 너머로 회색빛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그의 등은 아까보다 훨씬 더 작아 보였다. 늙고, 지치고, 세상의 모든 무게를 짊어진 듯한 모습이었다. 그의 흐느낌은 찻잔 속의 물방울처럼 미세했지만, 나는 그 소리에서 한 인간의 모든 절망과 후회, 그리고 어쩔 수 없는 비극을 느꼈다.


"어머니가… 늘 제게 말했습니다. '괜찮아, 아들아. 네 모습 그대로도 충분히 아름다워.'"


그의 목소리는 갈라져 나왔다. 이제 더 이상 연극이 아니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가면 뒤에 숨겨진 진짜 인간의 깊은 슬픔이 묻어 있었다.

"어머니는… 세상의 모든 조롱과 비난 속에서도, 단 한 번도 저를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제 편이었죠. '노력해도 안 되는 한심한 광대…' 그건 사람들이 제게 던진 말이었지만, 어머니는 절대로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내 눈에는 네가 가장 멋진 광대란다'라고… 매일 밤 제 손을 잡고 속삭여줬습니다. 그 말이… 그 말이 저를 더 미치게 만들었죠."

그의 어깨가 더욱 심하게 들썩였다. 그는 울고 있었다. 분장이 번져 흐르는 검은 눈물 점은 이제 정말 슬픔의 상징이 되었다. 나는 그저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의 안에 얼마나 깊은 상처가 자리하고 있었는지, 그제야 가늠할 수 있었다.


"저는… 저는 어머니의 그 사랑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세상의 비난을 맞고 돌아온 저는… 그 사랑 앞에서 한없이 초라해졌어요. 세상의 멸시가 칼이라면, 어머니의 사랑은… 저의 비참함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었죠. '너는 이렇게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라고… 거울 속의 제가 끊임없이 속삭이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그의 비참한 침묵 속에서, 그가 '어머니'에게 어떤 식으로 분노를 표출했는지 깨달았다. 세상의 비난을 견디지 못해 가장 가까운 사람을 상처 입히며 자신의 비참함을 증명하려 했던 처절한 몸부림. 그가 휘두른 칼은, 세상이 자신에게 휘두른 칼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증오와 분노가 어머니라는 유일한 안식처를 향했던 비극이었다.


창밖의 빗방울이 유리창을 때리기 시작했다. 톡, 톡, 톡. 그 소리는 마치 그의 눈물처럼 들렸다. 그의 비극은 더 이상 나만의 추리나 판단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너무나도 아프고, 너무나도 현실적인 한 인간의 삶이었다. 나는 찻잔을 내려놓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에게 다가가, 그의 떨리는 어깨를 조용히 감싸 안았다. 차가운 그의 몸에서, 나는 지독한 외로움을 느꼈다. 그 외로움은 그가 세상의 모든 것을 잃은 채, 스스로를 가장 깊은 어둠 속에 가뒀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혼잣말처럼 나직이 말하는 건 꼭 상대가 들으라는 게 아닐 수도 있는 삶풀이 일지도 모른다. 그는 그런 느낌으로 생애 마지막 한숨처럼 문장을 더 읊었다.


"나는 대체 뭐였던 걸까요? 저는 살 가치가 있긴 한가요? 세상이 미웠지만, 그 이상으로 제가 더 미웠습니다. 저는 다신 없을지도 모를 제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저를 사랑해 주는 사람을 불구로 만들었어요. 어쩌면 그들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멈추세요."

나는 그의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주어 그의 흐느낌을 멈춰 세웠다. 그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눈물로 번진 분장이 그의 절망을 처연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마세요. 그들은 당신을 조롱했지만, 그들의 말이 당신의 진정한 가치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나는 나직이 말했다. "당신이 말하는 '그들'의 판단은 당신을 향한 진실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자신들의 비겁함을 숨기기 위한 방패일 뿐이었죠. 당신의 인생은 그들의 무책임한 말 한마디로 정의될 수 없습니다."

그는 여전히 흔들리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당신의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 그것이 당신의 삶을 끝낼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당신이 그녀에게 상처를 준 것은 사실입니다. 용서받을 수 없는 끔찍한 일이었죠. 하지만 그 사실이 당신의 존재 자체를 무가치하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자신이 저지른 가장 큰 죄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 그리고 그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가려 하는 것. 그것이 당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당신의 삶은 당신이 저지른 잘못으로 인해 '무의미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잘못을 마주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선택하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의미를 찾게 될 겁니다. 당신의 삶은 이미 어머니의 사랑을 통해 무가치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이제 그 사랑을 갚는 삶을 살아야 할 차례입니다."


"당신은 스스로를 비난하고 있지만, 그 비난조차도 당신의 존재를 부정하려는 또 다른 형태의 도피에 불과합니다. 세상의 조롱과 당신 자신의 자기혐오, 그 둘 모두가 당신을 깎아내리려 합니다. 이제 당신이 선택해야 할 것은, 그들의 말에 동의하며 스스로를 파괴할 것인지, 아니면 그 모든 것을 짊어지고 살아갈 것인지입니다. 당신이 살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는 그들의 판단이 아니라, 당신의 남은 삶이 증명할 겁니다."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바닥을 향한 채, 고요하고 깊은 침묵만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그 침묵은 대답을 기다리는 정적이 아니라, 모든 논쟁이 끝난 후 찾아오는 단단한 고요함이었다. 아까와 같은 분노도, 급작스런 폭력도 더 이상 없었다.

그는 천천히, 더듬거림 없이 몸을 일으켰다. 그의 손은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그는 테이블 위에 찻값 대신 동전 몇 개를 조용히 내려놓았다. '딸랑'하는 요란한 종소리 없이, 아주 작은 '쨍그랑' 소리가 울렸다. 착각, 혹은 바람일 수 있지만, 그 소리는 마치 그가 지금까지 짊어졌던 모든 비참함과 거짓을 깨뜨리고, 스스로의 가치를 인정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어릿광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낡은 문을 향해 걸어갔다. 더 이상 울음을 참는 흐느낌도, 연기처럼 떨리던 어깨도 없었다. 문이 열리자 차가운 빗줄기가 안개처럼 가게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는 비를 피하려는 듯 움츠러들지도 않았다. 마치 자신의 죄를 씻어내려는 듯, 그는 그대로 빗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짤랑' 작고 맑은 종소리가 울렸다. 그는 그렇게 '만일'을 떠났다.

그의 선택은 옳은 것일까?

나는 그의 뒷모습이 빗속으로 천천히 스며드는 것을 지켜보았다. 요란한 모자는 더 이상 우스꽝스럽지 않았고, 그의 등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지독한 외로움 대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한 인간의 고독한 결의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퇴장은 그 어떤 말보다도 명확한 대답이었다. 스스로의 고통과 마주하기로 한 그의 선택은, 이제 비가 내리는 세상 속에서 홀로 이어질 것이다.




이전 06화어릿광대와 관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