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 2

떠올리고, 만나다

by twohfiveownn

그녀는 내가 타지에 살고 있을 때 알게 됐었다. 서로의 얼굴을 알고 있는 거 보면, 적당한 교류가 있었고, 적당히 교류를 마치고 나선, 끊겼다. 얼마 뒤 페이스북을 보니, 나는 그녀가 남자친구가 생겼던 사실을 알고는 그렇구나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서로가 그랬을 거다. 나는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나름대로 자연스럽게 끊겼을 거라 지레짐작하며 지냈고, 의외의 답장이어서 놀랐을 뿐, 그 이상으로 심각하진 않았다.

그녀의 성격을 유추해 봤을 때 내 기준에서 굉장히 '털털한 편'이었다.

조금 더 자세히 읊어보자면 아래 지방에서 살던 그녀는 굉장히 유쾌한 사람이었다. 사진을 처음 봤을 땐 파릇파릇하고 생기 있고 에너지가 넘쳤던 귀여운 얼굴이었다. 긴 검은 생머리에, 젖살이 아직 안 빠진 볼, 약간 마른 체형, 크고 동그란 눈에, 작은코와 분홍빛 도는 입술 왠지 인기가 많을 것 같은 얼굴이었다. 사실 외모도 그렇지만 나도 못 미더운 나와는 달리 굉장히 당차고 솔직한 편이었다. 그녀는 단기간 연애를 자주 하는 편이었고, 연애에 대한 호기심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다양한 신상 남자친구 사진이 올라왔다. 이걸 기억하는 이유는 내가 관음 해서가 아닌, 주기적인 헤어짐이 올 때마다 나에게 연락을 해왔기 때문이다. 자주는 아니고 3번 정도? 그럴 때 주로 '전'남자친구가 되어버린 그들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했다. 단점이 있었고 이런 게 별로였다. 사실 구체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않은 잠깐의 가십거리처럼 말하는 본인도 인과에 대해 딱히 개의치 않아 하는 듯 보였다. 이어서 그럴 때마다 종종 그녀는 어린 마음인지 나에게 호감을 표하고는 했다. "나는 오빠랑 만나보고 싶은데, 너무 멀다.. 왜 그렇게 멀리 사는 거야?" 이러다가 얼마 뒤 남자친구가 생기거나 하면, 과감히 나와의 연락을 끊고는 했다. 처음에는 황당했지만, 거듭 겪다 보니 그냥 그런가 보다 여기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그 행동이 싫지 않았고, 거기에 악질적인 괴롭힘의 의도가 크게 보이지 않았기에 내 생활을 근근이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게 전부다. 그렇기에 내가 사는 곳으로 놀러 온다는 말에 적잖이 당황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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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돌이켜보다 문자 알람이 와서 정신을 차렸다.


"그럼.. 이때 가면 될까?"

대학생이었던 그녀는 따분했는지, 무려 3일이나 이쪽으로 놀러 온다고 했고, 단순 여행이 목적이 아닌 나랑 놀겠다고 온다는 말에 2차로 황당하고 있었다.


"응, 그런데 나 그중 하루 정도는 파트타임 일이 있어서 집에 혼자 있어도 괜찮아?"

왠지 부담감과 책임감이 공존하는 기묘한 기분이 들면서 답장했다.


"응 괜찮아 길지도 않고 마치면 오후니까 어디 다녀와도 좋고, 오빠는 술 잘 마신다 했나?"


"아니 전혀, 그렇지만 맞은편에서 말상대는 해 줄 수 있어."


지금 돌이켜보면 오래 알고 지낸 사이라 생각했을 땐 큰 위화감은 없겠지만,

문제는 서로 간 실제로 본 적도 없거니와 잘 모른다. 그렇다고 안다고 하기에도 증빙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도 하고. 가짜 같은 일이다 아무리 당시엔 모르는 사람끼리의 만남이 범죄로 이어지고

나쁜 일로 번지는 일이 흔하지 않았어도, 어떤 그럴싸한 완충재를 덧대도 상식적으로 제정신이 아닌 만남이다.


나야 남성이고, 내가 사는 지역이니까. 비교적 낫지만 이 친구 입장에서는 정말 말도 안 되는 리스크 투성이에 내가 나쁜 마음먹기라도 한다면 범죄로 이어질 수도 있는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걸까?

나에 어떤 걸 보고 느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오빠는 안전합니다."라는 마음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짓이다.

혹은 "난 충분히 대비했고, 손가락 하나 건들면 박살을 내주지."는 더 이치에 맞지 않았다. 문제를 삼아서 문제가 된 것이겠지만, 내 머릿속은 그런 게 문제가 아니라, 그녀에게 '신뢰'를 받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우습게도 자존감이 부족한 사람은 날 믿어준다라는 것의 힘이 굉장히 강하게 작용한다. 책임감을 부여받고, 그녀가 안전하게 잘 즐겁게 보낼 수 있게 도와줘야 해.라는 아무도 요구하지 않은 강박이라는 주술이 완곡히 새겨지고, 수행하고 완수했을 경우 사명을 다한 거라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기에는 의심 따윈 일절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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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없었던 손님을 맞이하는 거라 조금 들뜬 마음이 됐다. 우선 해야 할 것은 지저분한 머리를 정리하는 일이었다. 미용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나는 인근 아무 미용실을 들렀지만, 결론만 말하자면 정말 망쳐버렸다. 앞머리카락을 반이상 날려버려서 엉망이 되어버렸다. 허탈한 마음으로 돌아와서, 방 정리를 했고 미뤄둔 빨래를 통돌이에 아무렇게나 처박고는 일상을 보냈다. 고대하던 시간이 점점 가까워지고 어설픈 나는 나름의 계획을 짜고는 했다. 같이 일하는 동료 형이 아르바이트할 때, 거기에 방문하고, 시내를 나가보고, 산책도 하고 여러 가지 해보고 싶은 것들을 정리했다. 물론, 그녀의 의중은 하나도 묻지 않은 채 말이다. 그리고 잠깐 친구와 맥도널드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차 시간이 가까워지자. 해당 사실을 말하지 못한 나는 조바심이 났었다. 조금 말하기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친구에게 대략 설명하니 의외다 싶은 반응이었고, 옅게 미소만 지을 뿐 잘 다녀오라고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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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해 보니 14:30분쯤 됐을까, 아슬아슬하게 10분 전 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렇게 8분.. 7분... 대략 3분쯤 남았을 때,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리는 게 느껴졌고 나는 아까 시계를 봤을 때처럼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예정한 시간이 되었을 때 안내음과 함께 기차가 들어왔다. 인접했을 때, 나와 연락했던 그녀는 내리는 곳의 열차 번호를 알려줬고 해당 번호로 발걸음을 옮겼다. 기차는 오차 없이 해당 번호에 멈춰 섰고, 문이 천천히 열리며 승객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행여 통행에 방해가 될까 서, 너 걸음 멀지 떨어져 지켜봤는데 인파가 있어 그녀를 바로 찾지는 못했다. 동시에 내 머릿속은 처음 인사로 무엇을 말해야 할지 고민 가득했지만 그 역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우왕좌왕할 동안 뒤편에서 누군가 콕콕 두드렸다. 돌아보니 열심히 찾고 있던 얼굴이 보였고 그녀는 수줍은 얼굴로 물끄러미 나를 쳐다봤다.


"안녕..?"


옅게 붉어진 그녀의 입술에서 나온 첫 번째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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