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날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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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피부에 서툰 화장을 한 그녀의 속눈썹은 과하지 않게 꺾여있었다. 착각인 줄 모르겠으나 묘하게 미간이 찌푸리고 있었다. 수줍었던 표정은 생각보다 빠르게 진정됐고, 입꼬리만 살짝 올라간 미소를 나한테 보였다. 필시 그녀도 나름 긴장하고, 노력했음을 알 수 있었다. 눈썹은 문신을 한 듯 아주 찐하게 그려져 있었다.
나는 그게 미용인줄 모르고 굉장히 짱구 눈썹 같네 하고 속으로 생각했었다.
"그래 안녕, 온다고 고생했어.. 많이 어색하지..?"
당연히 어색하고 낯설 텐데, 굳이 물어본 건 나도 긴장하고 놀랐기 때문이다.
이어서 그녀는 날 빤히 봤고, 나도 그녀를 빤하게 봤다.
상호 사진과 대조하고 빠른 탐색전을 거친 듯했다. 나도, 이 친구도 다행히 크게 괴리는 없어 보이는 듯했다.
"그럼.. 이동할까..?"
내가 먼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
다행히 집까지 그렇게 멀지 않았고 우린 버스를 타면서 소소하게 이야기를 했었다. 너는 무슨 생각으로 왔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지만, 꽤 용감한 표정으로 나에게 "그냥 놀러 온 거지, 평소 이곳도 궁금했고"라고 말했다. 그런 쪽으로는 편견이 없었는지, 나도 정말 그렇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아~ 놀러 온 거구나..? 평소 와보고 싶은 곳이었나 보다." 하면서.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이후 친구에게 대략적인 이야기를 꺼냈더니, 그가 말하길. '세상 어느 여자가 미쳤다고 단신으로 숙소도 없이 제대로 모르는 남자 집에서 자고 그것도 3일간이나 있는다는 게 단순 "놀러 왔다"로 퉁쳐버리는 게 말이 되냐?'는 식으로 매도당하고 나서야 알게 됐다. 그렇게 무사히 내 자취방에 도착하고, 그녀는 가져온 조그마한 캐리어를 내방 한켠에 배치했다. 당시 나는 원룸에 거주하고 있었다. 책상 하나와 의자와 노트북. 나머지 필수 가전들은 옵션이 전부. 마치 절간이나 다름없는 인테리어를 고수했다. 근교는 공항이라 틈만 나면 전투기,비행기 소리로 시끄러웠고, 이 때문에 해당 지역은 소음 보상피해 민원이 무시 못하게 진정(陳情)된 걸로 알고 있다. 그것만 빼면 우리 주변은 굉장히 따스하고, 맑고 평화로웠다.
나는 그녀와 적당히 친한 친구랑 얘기하듯 이야기를 나눴다. 인적사항은 물어볼 만큼 물어봤고, 그냥 친구나, 사는 거, 앞으로 무엇을(사는 것, 직장) 할 건지에 관해 의외로 건설적인 이야기들로 나눴던 걸 기억한다. 그렇게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니 금방 서로의 경계가 풀렸다. 그녀는 다각도에서, 볼 때마다 다른 얼굴 같았다. 옆에서 보면 참 하얗고 예쁘다가도, 위에서 아래로 볼 때는 정수리 외에도 살짝 나온 이마, 속눈썹, 작은 입과 코 사진으로는 알 수 없었던 작은 키. 그런 그녀는 아담하고 삐약이 같아서 너무 동생 같고 어려 보였다. 그러다가 마주 보며 정면을 볼 때는, 제법 숙녀같이 도도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진지하게 말하고 있다. 실제로는 3-4살 정도의 나이 차이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다 내가 별 재미없는 이야기를 재미없고 무뚝뚝하게 꺼내면 잘 관리된 뾰족한 속눈썹과 크고 둥근 눈을 깜빡거리면서 배시시 웃어주고는 했다. 박장대소하는 모습을 못 봤지만, 목소리 톤이 낮고, 꽤 조용해서 나는 처음 만나고 얼마간 그녀가 '내가 싫은가?' 싶었다. 그리고 '저 친구 예상과 내가 너무 달라서 별로면 어떡하지?'도 같이 껴있었다. 다행히 그건 아닌 것 같아서 안도를 느끼고 이전에 세워둔 장대한 계획은 머릿속에서 다 지워진 지 오래라서, 그녀에게 배 고프냐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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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짐 정리를 대강 하고 나가서 밥을 같이 먹기로 했다. 나는 차가 없어서 같이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해야 했다.
"놀러 온 사람이 밥 사는 거니까 내가 사줄게."
그녀는 말없이 끄덕하고는 내 뒤를 졸졸 따라왔고 발맞춰 걸어주는 걸 몰랐던 나는,
힐끔 쳐다봤던 그녀의 하얀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걸 보고 나서야 걷는 속도를 늦췄다.
사투리를 쓰는 그녀는 첫 대면의 긴장이 풀렸는지, 버스 타고 가는 내내 조잘조잘 말이 많았다. 아까는 그냥 낯 가린다는 이유로 점잖은 척이었고, 조금 상황들이 익숙해지니 보통 여자보다 조금 낮은 목소리로 ~~ 했디. ~~ 디.라는 특이한 끝맺음 하는 말로 나에게 무어라 즐거운 듯이 얘기했다. 사실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 알아듣지 못했다는 게 더 정확할 수도 있다. 아무렴 그녀는 즐거워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 안심이 되었다. 그러다가도 어느 구간에서는 혼자 조용히 맹~~ 한 표정을 짓고는 했는데, 기분이 안 좋은가 물어보니 그냥 정말 아무 생각 안 했다고 하더라. 그렇게 맘 졸이는 여정도 끝이 보였고 우리는 무사히 지면에 발을 붙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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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는 30분이면 넉넉히 가는 거리였다. 나는 그녀에게 뭘 먹고 싶냐 물어봤고, 그냥 주변에서 가볍게 먹고 싶다 했었다. 그래서 주변을 둘러보다 내가 괜찮게 식사를 했던, 굳이 지역색을 타지 않고 흔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점을 들어가 밥을 같이 먹었다. 그녀는 여느 또래들과는 다르게 먹는 것에 의의를 두거나 하지 않았다.
'그냥 때운다'에 가까웠었다. 그렇게 점심 겸 저녁을 먹고 나서, 주변을 둘러보러 다시 나왔다. 시내는 활기찼고, 해는 쨍했지만 하늘은 파랗고 여기서 덥지 않은 바람이 불어 기분이 좋은 날씨였다. 분명 이 기억을 더듬으면서 그립고 좋은 감정이 든다는 것은 날씨도 한몫했을 거라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인근을 조금 걷다가
하늘색 간판에 만화책방을 발견했다. 내 소싯적엔 비디오와 만화책을 같이 빌려주고, 춘장냄새와, 재떨이. 만화책이 얼굴을 덮고 있는 아저씨들이 주류였던 기억이였는데, 간판 디자인과 유리창 안으로 보이는 구조가 내가 생각하던 그것과는 거리가 꽤 멀어 보였다.
"저기 가볼까?"
"응 좋아."
간단한 질답이 오고 가고 결론을 지은 우리는 계단을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