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 4

책방과 저녁

by twohfiveownn

"덥진 않아?"


날 뒤따라 계단을 오르는 그녀는 살짝 핏한 청바지, 과하지 않은 셔링이 달린 흰색 블라우스, 플랫슈즈를 신어 크게 불편함은 없어 보였지만, 행여나 체력적으로 부치진 않았는지 염려되어 잠깐 뒤돌아본 내가 그녀에게 꺼낸 한마디였다.


그녀는 조용히 미소만 지은채 고개를 저었다. 올라가는 길은 조성에 꽤 힘 준 모습이었는데, 아마 나처럼 옛날 만화 책방에 대한 편견을 깨부수려는 듯 귀여운 인형과 식물 조화(造花), 같은 것들로 가득 꾸며져 있었다,

친환경? 아니면 편안함 느낌을 주기 위해 의도된 디자인으로 보였다. 이런저런 감상을 속으로 늘어놓다 보니 입구로 보이는 자동문이 보였고, 문은 열리자마자 마치 딴 세상에 온 듯 에어컨 바람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카운터에는 따분한 표정의 직원 1명, 음료 제조 및 동선이 바쁜 직원 1명, 앞에서 밝게 미소 지으며 문쪽을 바라본 직원 1명으로 총 3명이 근무하는 듯 보였다. 카운터 맞은편에는 과자들과, 음료수. 벽면에는 큰 붙박이 책장 안에 보드게임도 즐비해 있었다. 따로 시간당 비용이 들기보다, 음료를 두당 한잔 시키면 시간을 충전해 주는 식이라고 맞이해준 직원이 안내해 줬다.


"좌석은 편하게 이용하시면 되고, 보드게임은 하나만 가져가서 하실 수 있어요~ 즐거운 시간 되세요!"


해당 말을 끝으로 직원의 안내는 마친 듯했고, 우리는 음료 주문을 했다. 나는 냉커피, 그녀는 초코음료. 안내받기로는 메인 공간이 지하에 있어 우린 음료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트레이에 받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왜 직원이 3명씩이나 있는가 의문이 들었었는데 내려가 보니 그 의문이 곧바로 해결됐다. 지하는 굉장히 넓고 큰 공간에 마치 옛날 아이들의 비밀기지 느낌의 오브제들. 거기에 추가로 어른의 힘(돈)이 들어간 매우 큰 규모의 아지트 같았다. 2층짜리 높은 층고의 반오픈 구조로 아늑히 누울 수 있는 공간이 있고, 좌식으로 앉아서 보는 곳, 연인과 같이 와도 아담한 분위기에 대체로 커플들이 와서 누우며 책을 본다거나, 앉아서 음료를 들이켜거나, 보드게임을 하는 등 각개 방식으로 즐기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이런 곳 와본 적 있냐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아니.. 처음 와봐... 히히.."


수줍은 듯 말했고 나도 집밖으로 잘 나오지 않아서 이런 곳이 신기하다 말했다. 웃음이 헤픈 우린 둘 다 웃음이 나왔다. 그녀와 나는 적당한 자리를 잡았다. 거긴 내려오자마자 눈에 띄었던 2층짜리 누울 수 있는 자리. 상당히 아늑해 보였다. 쿠션은 2개가 놓여 있었고, 누워서 보기엔 딱이었다. 나와 그녀는 자리에 짐을 두고, 각자 흩어져서 책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대략 5분 채 안 되는 시간 둘 다 책을 양손 가득히 들고 온 것에 두 번째로 웃음이 났다. 누워서 보다 음료 마실 땐 앉아서 보고, 서로 무슨 책을 보는지 말도 나눴다. 나는 '액션' 그녀는 '멜로' 각자 서로가 보는 위대한 만화에 대해 열띤 논쟁을 하는 걸 보니 그때, 그곳을 간 것은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이 든다. 그렇게 두 시간 안되게 시간을 보냈고, 해가 길어 완전히 지지 않은 노을쯤 돼서야 우리들은 다시 집 인근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우리는 저녁을 먹고, 뭐를 할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오빠 일하는 곳이 저녁엔 호프라 했나?"


"응 맞아. 왜?"


"술 못 마신댔지..?"


여느 20대들이 그렇듯 술이 가장 좋을 나이였다. 그 점만큼은 그녀도 보편에 속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술을 잘 못 마신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예 입에도 못 대는 편이다. 예전에 소개팅 자리에서 주량을 체크 못하고 무방비하게 마시다가 집 오는 내내 게워내어서 주변에 여간 민폐가 아니었다. 잠깐 겪은 대학생활 때도, 그룹들과 어울리고 싶어서 마신 술에 나는 앉은자리에서 잠만 잤었다. 1-2시간 엎드리고 고개를 쳐들면 새하얗게 질려있었고, 그때부터 내 별명은 "뱀파이어" 또는 "흡혈귀"였다. 집안 내력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삶과 멀어지고, 오기도 몇 번 부려보니 소용없다는 걸 깨닫고는, 그런 그룹들과도 점점 멀어지고 차라리 커피를 마시는 게 일상이었다. 아무튼 다시 돌아와서, 그 질문에는 사전에 답했던 기억이 난다.


"응 술이 안 받아. 아마 기절할걸?"

나는 솔직히 말을 했다. 괜한 허세를 부리고 싶진 않았다.


"뭐 어때~ 그냥 말 상대 해줘, 말 상대. 그거면 충분해!"


그녀는 약간 들뜬 표정으로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와 같이 길을 나섰다.

그래봤자, 천천히 걸어도 5분 거리. 낮과 달리 어두워진 동네를 둘러보면서 걸어갔다. 익숙한 풍경인데, 주변이 확 달라 보이는 건 정말 신기한 일이다. 같이 걷는 사람이 생긴 것뿐인데 마치 세상이 달라진 기분이었다.

검정보단 남색에 가까운 저녁에 노랑, 주홍빛 가게등이 문과 창문 틈새로 보였다. 문을 여니, 평소같이 일하던 형이 있었고, 그 형은 내 옆에 그녀를 보고 잠시 놀란 눈치였지만, 이내 히죽거리며 자리를 안내해 줬다. 나는 약간 부끄러웠다. 우리는 2층으로 올라가 2인용 작은 테이블에 앉아서 주문한 메뉴를 기다렸다. 늘 저녁때 만들던 간단한 안주들이 내가 손님으로서 눈앞에 두고 있으니 신기했었다. 기억나는 메뉴는 고구마치즈스틱 그냥 냉동고에서 꺼내서 돌리면 되는 간단한 안주. 그녀는 소주를 주문했고, 나도 형식적이지만 잔을 놓고 조금 따랐다. 손님은 많이 없어서 전세 낸 기분이었다. 음악이 나왔고, 그녀는 만족해하면서 적당한 속도로 술잔을 비워갔다. 우린 그다지 많은 얘기를 하진 않았다. 그쪽에서의 생활이나 내가 보내는 따분한 일상에 대한 이야기. 하나 희망적인 건 내가 그 부분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지 않았던 점은 기특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사람을 존중하는 방법 중 가장 몸에 배어있는 습관은 상대방의 말에 경청하는 것이었다. 내가 입을 많이 열기보단, 궁금한 점이 많아서 그녀의 어느 한 주제의 이야기가 끝나면, 비슷한 교집합의 주제를 되물어 이야기를 들었다. 다른 사람의 삶을 간접적으로 고저 없이,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나만의 노하우였다.


그녀는 열심히 설명하다가도, 이야기가 떨어지면 주춤했다가 다시 이야기를 꺼내고는 했다. 조류로 빗대긴 뭣하지만 '삐약' 또는 '짹' 같은 느낌으로, 땀만 안 흐를 뿐 어떠한 이야기를 열의 있게 설명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한 병이 다 비워졌고, 나는 첫 잔을 제외하고는 마시지 않았지만, 내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서 누군가 본다면 만취는 내가 한 줄로만 알았을 것이다. 시간은 인식하면 느리다가 즐거움에 해이해져 빠르게 가곤 한다. 어느덧 밤 10시 15분이 지났고, 자신 만만했던 그녀도 술에 취한 듯 보였다. (아마 2병 정도 가까이 들이켰을 때) 돌아가는 길이 가까웠기에 다행이라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의 상태는 놀라운 속도로 안 좋아졌다. 잘 못 걷는 듯 보여서 계산을 하고 나는 그녀를 부축하며 천천히 집으로 향했다. 갈수록 힘이 빠지는 그녀는 아무리 작고 가벼워도 힘없는 나한테는 조금 버겁긴 했다. 왜냐하면 계단을 3층으로 올라가야 했기 때문에. 나는 끙끙대며 그녀를 잠시 벽에 거치해 두고 도어록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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