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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해 Jun 09. 2022

그렇게 모두 퇴준생이 된다

평범하게 사는 게 제일 어려워요

회사가 나를 힘들게 해서,
회사의 누군가 나를 힘들게 해서,
아무리 노력해도 일이 늘지 않아서,
그렇게 모두 퇴준생이 된다.


지금 몸담고 있는 곳은 인턴과 단기 근무 포함 5번째 회사다.

두 번 정도 인생 상사, 인생 멘토를 만났었고 두 번 정도 다신 겪고 싶지 않은 상사를 만났다. 그러고 보니 인생 상사 1인과 최악 상사 1인은 같은 곳에서 만났는데 역시 인생은 입체적이라 재미있다.




첫 회사, 첫 퇴사

첫 회사에서 퇴사를 결정하기는 쉽지 않았다. 첫 연애 첫 이별처럼 내가 다닐 수 있는 회사는 여기밖에 없을 것만 같고, 밖은 정글이라는데 다른 회사에선 또 어떤 일을 겪을지 두려움이 가득했다.


기존에 인턴으로 일했던 곳이랑 다른 직무였던 것도 한몫했다. 당시의 나는 커리어 패스를 통일성 있게 만들고 싶은 원대한 꿈이 있었던 시절이었다. 직무보다는 회사의 규모와 네임밸류를 더 많이 봤던 피라미 구직자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구체적으로 어떤 경력과 직무와 규모의 회사를 거쳐야 하는지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대책 없는 목표만 있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 쉴 수 없다고 판단한 시점 그렇게 욱여넣듯 들어간 첫 회사에선 나에 대한 처우와 업무 능력에 대해 지속적으로 가스 라이팅 아닌 가스 라이팅(?)을 했다.


잠시 첫 회사 까기 대회를 하자면,

야근을 시키고 출근한 다음날 퇴근하기도 하며 택시비와 수당을 지급해야 하는 것은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한 처사인 것이다. 교통비 영수증을 제출하는 나에겐 따가운 시선과 회사 등골 빼먹는 직원이라는 뉘앙스의 생색이 꽂혔다.. (이런 비용 정도도 보장이 되지 않는 회사라면 도망쳐!) 재밌는 건 우리 부서가 당해 매출 1위였다는 것, 사람에게 투자하지 않는 회사는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또, 나는 그 팀장 아래에서 버틴 여성 사원중 가장 오래 버틴 사원 1호로 기록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거칠게 다듬어지지 않은 언사는 그 사람 개인의 미성숙이라고 쳐보자. 미팅하러 같이 가면 협의가 필요한 이야기 외에 생색용 업무를 팀장 측에서 먼저 제안한다. 클라이언트 측에선 거절할 이유도 없고 손해 보는 장사도 아니니 당연히 반긴다. 팀장이 그 업무를 직접 했다면 퇴사하지 않았겠지. 물론 생색은 본인이, 업무 처리는 나나 다른 후배에게 뿌려지는 식이었다.


이 회사에선 야근을 자주 하지 않으면 일을 제대로 안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 일은 상대평가가 아니라 절대평가로 결과로 말해야 하는데, 딴 사람보다 더 오래 일한다거나 다른 팀보다 더 잘해야 한다는 식의 잘못된 기준에 나를 맡기면 주기적으로 현타가 온다. 오래 일해야 잘하는 것인지? MZ세대인 난 도저히 타협이 어려운 것이다.



끝으로, 엄청난 전문가라거나 구를대로 굴렀다거나 한건 아니지만

딱 한걸음 더 걸어본 퇴준생으로서 겪고 느낀 점들을 도움이 될까해 정리해봤다.






직속 상사는 정말 중요하다.
[도라희 총량의 법칙]에 따라 이 구역의 도라희가 혹시 내 직속 보스라면 퇴사를 마음먹게 될 확률이 크다. 우선 직속 보스라면 실무면접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고, 혹은 1~2달 이내에 성향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이때 똥 밟았다는 쎄한 느낌이 들면 빠르게 도망칠 준비를 하자.


첫 사수의 노하우가 많을수록 도움이 된다.
사수 멸종 시대긴 하지만, 사실상 신입에게 일을 어느 정도 시켜놓으면 거기서 거기인데 특별히 뛰어나게 되는 경우는 대체로 첫 사수(or상사)의 노하우를 보고 배운 경우랄까


회사의 허리 층 실무자가 얼마나 있는지 볼 것.
직급으로는 주임, 대리, 과장 급이 얼마나 있는지 너무 저연차와 정년층만 있는 회사는 염증이 있을 확률이 크다.


대표가 혹시 선출직인가?
크던 작던 회사는 사람이 중요한데, 특히 대표를 정하는 방식, 투표로 선출한다거나 모회사에서 지명한다거나 하는 방식을 잘 봐 두는 것도 팁이다. 짧게 대표가 계속 바뀌는 경우는 대표가 회사의 장기사업플랜 또는 인사권에 크게 영향이 없을 수도 있으니 알아두면 도움이 된다. 보통 잡플래닛 등의 기업 리뷰에서 티가 나기도 한다.


입사 대비 퇴사율을 확인하자.
너무 당연한 거라 적을까 말까 했지만 빠질 수 없는 퇴 사 율!


초년생이면 혹시 모를 수도 있는 꿀팁(?), 인당 매출 발생 금액을 확인하자.
공고에 기업정보를 보면 매출액과 사원수가  명시되어있다. 매출액을 사원수로 나누었을때 사원수 대비 매출이 1억이 넘는다면 재무 상황이 넉넉한 편일 것이고 1억 미만이라면 캐시카우가 확보되지 않은 사업군일 수 있다. (ex. 230명 대비 매출 350억→매우풍성한 곳간일 확률 높다.) 이게 중요한 이유는 야근이나 업무 강도, 나아가서는 각종 복지와 연말 상여, PS 등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인사 담당자에게 연락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공고에 미처 적지 못한 내용이 되었든 내가 궁금한 문의가 되었든 연락한다고 싫어하는 담당자는 한 번도 없었다. 메일이나 전화 등 맨투맨으로 문의할 때는 첫인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태도를 단정히 하여 연락하면 좋을 듯하다. 어떤 역할 포지션을 원하는지, T.O가 사세 충원인지 결원 충원 인지도 공고나 인사담당자를 통해 알 수 있다.


체계가 있어도 문제, 없어도 문제.
체계가 없는 문제는 모두가 알 것 같고.. 체계가 잘 잡혀있다면 사실 커다란 시스템을 익히는 데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너무 체계화 되어서매뉴얼대로만 하면 개인이 커다란 기계의 나사 정도로 느껴질 수 있다. 언제든 누구든 대체할 수 있는 자리일 수 있다. 나의 경우 연차에 비례하는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느껴왔기 때문에 초년생이 사회와 조직 시스템 이런것들을 배우기 위한게 아니라면 비추한다.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다고 퇴사 먼저 하지 말기!
회사를 인큐베이터라고 생각해보자. 지금 지치고 힘들고 뭐같은 마음을 퇴사로 치료하려고 하는 마음 충분히 공감되고 나도 그랬었다. 계획이 짜여있다면 말리지 않는다. 하지만 계획 없이 감정적으로 저지르는 퇴사는 정말 그 자체로 사고다!




잘못 들어간 회사나 한번 잘못한 실수 같은걸로 인생이 어떻게 되지는 않더라고-

모두 내가 구속된(?) 이 회사가 인생의 마지막 회사가 아니라는걸

특히 첫 회사이신 분들께 말해드리고 싶었다.

회사로부터, 상사로부터 가스라이팅 당하지 말아요 우리.

어제보다 1분이라도 더 행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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