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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터 Mar 29. 2022

3월, 혼란하다 혼란해

2022년 3월의 월말 결산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까워 남겨두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바탕으로 매달을 기록해둡니다.




3월에 읽은 책

• <내가 예민한 게 아니라 네가 너무한 거야> - 유은정

"사람은 반드시 혼자가 아닌 둘 이상이어야 가질 수 있는 감정이 있다. 존재감, 자아정체성, 연대감, 유대감, 소속감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감정은 자존감과 삶의 질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아무리 힘들어도 관계를 포기하지는 마라. 대신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을 버려라."
"해결하지 못한 감정에는 유효 기간이 없다."
"평소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드러내지 못했던 솔직한 모습이 자주 등장할수록 진짜 자아는 건강해진다."


• <마녀체력> - 이영미

"이 세상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내 몸밖에 없다. 특히 내 자유 의지로 운동을 하면서 서서히 변해 가는 몸을 지켜보는 건 근사한 경험이다."
"운동이 단순히 근육을 단단하게 만들고 심장 기능을 강화하는 데만 효과적인 것은 아니다. 노력하는 ‘나'라는 존재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만든다. 분발하며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하겠다는 자신감을 보여준다. 그런 자부심과 자신감을 발산하는데, 어찌 내가 예전에 알던 평범한 사람으로 보이겠는가."


• <기획자의 습관> - 최장순

"기획은 기획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일상을 책임감 있게 살아가려는 모든 이들이 할 수 있는, 사유의 한 형식이다."
"기획의 절반은 ‘학습'이지만, 학습을 완성시키고 오래 유지시키는 또 다른 절반은 ‘표현'임을 잊지 말자."
"의미의 저편을 읽어보자. 기획자의 생각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는 (see the unseen) 노력이어야 한다."


• 매거진B 러쉬, 기네스 편


3월에 즐겨들은 K팝

• 엔믹스(NMIXX) 'O.O'

- 처음 들었을 땐 뭐 이런 노래가 다 있나 싶고 당황스러웠는데, 한 번 들으니 잊히지가 않아서 계속 '와챠발라발라~' 하고 귀에 맴돌아서 어이가 없다. 역시 나는 JYP의 노예임을 또 한 번 깨달았고. 갓 데뷔한 신인인데도 모든 멤버가 라이브를 상상 이상으로 잘하는데, 기본적으로 목청이 트여있고 노래하는 걸 즐거워하는 게 보여 기특하다. 이 아기 명창들을 어쩜 좋을까. 세계 무대로 보낼 수밖에.


• (여자)아이들 'TOMBOY'

- K팝 신보 듣고 충격받는 경험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풍성한 락 사운드 매우 만족스럽고, 당당하고 멋진 가사도 마음에 들고, 후렴 F-단어에 삐- 효과음 너무 좋아서 무릎 꿇을 뻔. 전소연 씨, 당신은 이 시대의 진정한 천재 프로듀서입니다. 오래오래 음악 해주세요.


• 레드벨벳 'Feel My Rhythm'

- 아직 톰보이의 충격에 헤어나지 못했는데 '이건 또 뭐야 ㅠㅠ'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희대의 명곡. 음악 이론은 잘 모르지만 화성학적으로 아름다운 곡이라고 느꼈다. 컨셉면에서도 예쁘고 완벽해 보이는데 어딘가 이상하고 괴기스러운 느낌도 한 스푼 들어가 있는 이런 '불안한 아름다움'의 정서가 레드벨벳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시도, 파격 변신도 좋지만 나는 잘하는 거 잘하는 팀들이 더 좋더라.


3월에 본 영화와 드라마

• 미국 ABC 드라마 <Fresh Off the Boat> (2015~)

- 1995년에 플로리다로 이민 간 중국계 이민 가족의 우당탕탕 일상을 다룬 시트콤. 우리 가족도 2000년대 초반에 플로리다에 거주했던 경험이 있어 격하게 공감했다. 시즌1 1화 보고 나도 초딩 때 엄마가 점심으로 김밥 싸주면 애들이 놀린다고 미국애들이 먹는 Lunchable 같은 거 사달라고 떼썼던 아련한 기억이 나서 확 몰입이 됐다. 밤마다 한 편씩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이런 30분 내외의 친구 같은 드라마가 필요했는데 잘 찾은 듯.


• 디즈니 영화 <엔칸토: 마법의 세계> (2021)

- 그래픽 아름답고 음악도 벅차오르고 다 좋은데, 뭐랄까 스토리가 내 마음을 뒤흔들어 놓기에는 2% 부족한 느낌이었다. 이 정도의 디즈니 대작을 보고 눈물 한 방울 안 흘린 적은 처음인 듯.


3월에 인상 깊게 본 콘텐츠

• 넷플릭스 오리지널 <더 써클> (2020)

- 지금 우리 시대의 인스타그램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써클'이라는 SNS 세계관을 설정해놓고 그 안에서 가장 많은 인기를 얻는 최후의 1인을 가려내는 서바이벌. 참가자들이 서로 속이고, 연대하고, 배신하고, 관계 맺는 과정을 관찰자 입장에서 지켜보는 게 재밌기도 하지만, 보다 보면 SNS에 올라오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디까지가 진짜일까 깊이 생각해볼 지점도 많다. 만약 한국판 '더 써클'을 한다면 강유미, 주현영, 사내뷰공업 같은 뉴미디어 문화인류학자들이 나오면 겁나 재미있겠다는 상상.


• 넷플릭스 오리지널 <블라인드 러브: 일본> (2022)

- 나의 길티 플레저 '블라인드 러브' 시리즈. 여전히 몇 번의 대화만으로 사랑에 빠지고 울면서 청혼하기까지의 감정선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지극히 외모지상주의적인 다른 데이팅 리얼리티 프로그램보다는 낫다고 생각. 초면에 키갈하고 싸우면 냅다 쌍욕부터 날리는 미국 편에 비해 일본 편은 너무 순한 맛이긴 했지만, 나름 공감할 만한 지점은 좀 더 있었다.


• 유튜브 민음사TV 

- 남의 회사의 평범한 직장인들을 이렇게까지 좋아하게 될 일인가. 출연하는 편집자, 마케터 분들 어쩜 하나하나 다들 캐릭터 있으시고 말도 잘하시고 귀여우신지. 특히 아란 부장님 나오는 갓생 시리즈를 제일 좋아한다. K-직장인으로서 공감하며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민음사 책에 영업당하는 것은 덤.


3월에 한 문화생활

- 전시 <빛: 영국 테이트미술관 특별전>


3월에 맛있게 먹은 음식

- 어렸을 땐 이런 거 왜 먹나 했는데 나이 드니(?) 새삼 겁나 맛있는 꼬막무침과 참치회

- 그리고 요즘 요리해 먹는 게 너무 재미있다. 혼자서도 건강하게 잘 챙겨 먹는 나 자신 제법 뿌듯해요.


3월에 있었던 일들

- 지난 몇 달간 일태기 때문에 무기력하다고 쓴 걸 누가 봤나. 어느 날 갑자기 덜컥 새로운 일을 맡게 됐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던, 그동안 한 번도 '내 일'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던 낯선 업무의 담당자가 되어버렸다. (누가 제발 꿈이라고 해줘..) 너무 어렵지만 나는 죽어도 "못하겠다"는 말을 하기 싫어하는 사람이니까, 우선 꾹 참고 부딪혀 보고 있다. 이거 괜찮을까?


-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과 주어진 환경을 탓하기보다는 내 손으로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계속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퇴근 후나 주말에도 쉬지 못한 날이 많았다. 그래서 다음 달 쯤이면 뭐라도 윤곽이 나오려나. 기대되면서도 두렵고, 이상한 감정이다.


- 내 일만으로도 바빠 죽겠는데, 대선 전후로 극에 달한 사회적 대립과 차별, 혐오 때문에 매일 분노가 차오르고 인류애를 상실하고 있다. 휴..


- 바빴던 와중에 운동만큼은 정말,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나도 모르겠을 정도로 열심히 한다. 크로스핏에 제대로 재미를 붙였다. 나만 알고 있는 나의 기록을 하나씩 깨 나가는 게 재미있고, 콤플렉스라고 생각했던 내 몸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된 걸 느껴 뿌듯하다. 주 1회 하던 풋살도 주 2회로 늘렸다. 기존 팀은 계속 다니고 새로운 팀에도 합류해 드리블, 패스부터 다시 배우며 기본기를 다지고 있다. 크로스핏과 풋살, 나랑 잘 맞고 오래오래 하고 싶은 반려 운동을 드디어 찾은 것 같다.


- 임시로나마 집에서 혼자 지낼 수 있는 기간이 있었다. 정말 이렇게 행복할 수가 있는 건가. 넓은 거실 공간을 마음껏 누리고, 방 문을 열어놓고 지내도 되고, 원치 않는 소음과 말소리가 들리지 않고, 내가 뭘 하든 굳이 다른 이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는 삶. 나 진짜 독립 체질인데 말이야.


3월의 베스트 모먼트

1. 크로스핏 두 타임에 풋살까지 뛰고 하루 활동량 1454kcal, 운동시간 236분 찍었던 날의 쾌감

2. 생활 소음이 아닌 노랫소리에 눈을 뜨고, 여유롭게 브런치 해 먹고, 팟캐스트 들으며 집안일하고.. 별 거 아니지만 너무나도 간절히 바랐던 이상적인 주말 아침

3. 몸에는 안 좋지만 기분에는 좋은 음식 먹고 마시며 '막 사니까 겁나 재밌네'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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