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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처음 본 새를 만났을 때처럼

이옥토 <채식주의자>

by 이현 Feb 12. 2025

영혜의 영혼인 듯 연약하게 날고 있는 새처럼 보이는 이것은 꽃잎이다. 식물이 되고자 했던 영혜를 말해주듯...

2022년부터 채식주의자의 표지는 이옥토(1991~현재)의 사진으로 바뀌었다

이 사진은 이옥토의 사진 에세이

<처음 본 새를 만났을 때처럼>에 수록된 이미지다.

시적산문ㅡ

짧고 함축적인 문장으로 씌여진 한강소설을 이야기할 때 자주 언급되는 표현이다.

영상작업 중 사진은 원하는 한 순간을 정지시켜 말하고자 하는 대상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문학장르에 비유하자면 '시'에 가깝다

개정판 한강소설의 표지는 사진 이미지로 바뀐 것이 많다. 한강은 소설가로 데뷔하기 이전에 시에 먼저 심취했었고 시집을 내기도 했던 시인이다.  소설 속에서도 시의 흔적이 나타날 만큼 시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을 것으로 보인다. 그녀가 사진이미지를 표지로 선택한 것은 이러한 측면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흔히 사진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라고 생각하지만, 이옥토에게 사진은 '왜곡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사진은 주어진 입체와 시간을 평면과 순간으로 수렴함으로써 마치 그것이 생략이 아닌 함축인 것처럼 왜곡시킨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겉들
처음 본 새를 만났을 때처럼

이옥토는 두 권의 사진 에세이에서 사람사물의 깊은 내면을 드러내려 하면서도 겉으로 보이는 면을 섬세히 보여주고자 한다.

이러한 작가의 시선은 두 번째 사진에세이 <처음 본 새를 만났을 때처럼>에서  사물의  '반투명함'으로 나타난다. (이옥토의 '반투명 책갈피'가 굿즈로 인기가 많았다. 과일이나 꽃잎의 단면 사진을 책갈피로 만들었는데, 섬세함이나 정교함이 마치 얇게 저민 과일이나 실제 꽃잎 같아 감탄할 정도다. 과일에서는 실제 과일향이 나기까지 한다.)

이 사진 에세이에는 투명하고 엷고 연약한 것들이 자주 등장한다. 물, 식물, 사람과 같은 평범한 일상의 소재를 이옥토는 서늘하고 연약하며 쉽게 부서질 것처럼 가볍게, 마치 질량이 없는 물질처럼 담아낸다. 작가의 시선에서 이러한 것들은 무해하고 자유로우며, 작가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은  바로 '무해하고 자유로운 상태'를 말한다.

투명함, 반짝임, 연약함, 겨울, 꿈,

어른거림, 어스름함, 모호함, 슬픔, 회복

빛과 어둠의 경계, 현실과 꿈의 경계. 틈...

이러한 단어들에 대한 사유로 특징 지워질 수는 이옥토의 사진에세이 <처음 본 새를 만났을 때처럼>은 한강 소설의 정서적 기조와 결이 비슷하다.

개정판의 이미지는 마치 소설 이후 영혜의 모습을 그려 보여주는 것 같다. 가볍고 자유로워진 영혼, 동물의 세계로부터 떠나고자 했던 그녀의 바람...

한 편의 시 제목과 같은 사진에세이 <처음 본 새를 만난 것처럼>은 상처받은 영혼의 자기 고백적 기록이라는 점에서도 <채식주의자>와 연결지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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