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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파 Dec 20. 2019

팔자가 별거야? 동백꽃은 핀다.

이제야 정주행 한 동백꽃 필 무렵




<동백꽃 필 무렵>은 올해 한국 드라마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을 만들었다. 공중파 드라마가 케이블 드라마에게 주도권을 내준 지 오래되었다지만, 2019년 최고의 화제작은 단연 동백꽃이었다. 시대의 변화를 성실하게 반영한 이야기가 있었고, 좋은 배우들의 연기가 여기에 숨을 불어넣었다.  '까불이를 잡아라'라는 서브플롯은 결코 산만하지 않게 본 이야기와 연결되었다.


"팔자가 아무리 진상을 떨어봐라. 내가 주저앉나." 


임상춘 작가는 '팔자', '박복한 여자' 등으로 상징되는 편견과 거리를 두고자 한다. 이 세련된 태도는 드라마의 서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동백(공효진)은 고아원 출신의 '미혼모'다. 어린 시절에는 고아라는 이유로 차별받았다. 옹산 지역 사회에서는 술집을 운영한다는 이유로 수년을 시달렸다. 그녀의 삶에서 언제나 차별은 작동했다. 그러나 동백은 사람을 편견으로 대하지 않고 끌어안을 줄 안다. 세상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성매매 여성 향미(손담비)를 우리 식구라고 감싸는 유일한 사람이다. 용식(강하늘)의 어머니인 백두 게장 곽덕순 여사(고두심)는 세상의 편견을 가만히 듣고 있지 않는 위인이다. 그녀는 자신이 지역 사회에서 가지고 있는 신망을 이용해 동백을 지킨다. 젊은 시절 남편을 잃었을 때, 무당이 남편에 빙의되었다며 '서방 잡아먹을 팔자'를 운운하자, '내 남편은 전라도 사투리를 쓰지 않았다'며 무당을 붙잡는 모습은 상징적이다.


"나는 걸을 때 땅만 보고 걷는 사람인데. 이 사람이 나를 자꾸 고개 들게 하니까, 이 사람이랑 있으면 내가 막 뭐라도 된 거 같고. 자꾸 또 잘났다, 훌륭하다 지겹게 이야기를 하니까. 내가 꼭 그런 사람이 된 거 같으니까."

- 동백


동백은 타인을 따뜻하게 안을 수 있는 사람이지만, 그녀를 안아주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그런 그녀에게 나타난 것이 황용식이다. 씩씩하게 살아가는 동백의 모습을 보고 용식은 대책 없는 사랑에 빠진다. (눈깔을 왜 그렇게 뜬다?) 용식은 동백에게 끊임없이 의미와 가치를 부여한다. 그러나 그는 '백마 탄 왕자님'도, '도깨비'도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동백을 사랑한 '사람'일 뿐이다.  그러나 정작 그가 그녀를 구하려고 하는 여러 순간에 동백은 스스로를 구해냈다.  


 “내가 너 위해서 딱 하나, 뭐든 딱 하나는 해주고 갈게." - 정숙.


모성과 가족은 오래된 소재이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결코 모성을 초월적인 것으로 그리지 않았다. 여러 인물을 통해 모성의 다양한 단면을 표현하고자 했다. 특히, 동백 엄마 정숙(이정은)이 보여주는 모성은 시청자를 울린다. 그러나 그녀의 모성은 완벽하지 않다. 죄를 짓고, 후회한다.  7살의 어린 동백을 버린 그녀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동백꽃의 모성 이야기가 시청자로 하여금 더 많은 공감과 이야기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하는 것 역시 인간적인 한계를 외면하지 않았기 때문 아닐까.


임상춘 작가의 전작 <쌈 마이 웨이>가 그랬듯, 다양한 캐릭터가 활약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즐겁다. 그것도, 사랑하고 싶은 캐릭터들 말이다. 당돌한 필구는 사랑스럽고, 지질한 노규태마저 매력적이다.  '옹산 어벤저스'로 대변되는, 작고 평범한 여성들의 연대는 유쾌하다. 최향미처럼, 누군가에게 하잘것없다고 규정되는 이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시선 역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향미는 코펜하겐에서 행복할 것이다.)


동백이와 용식이는 세상이 뭐라 떠들든 자기 '쪼대로'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사랑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다. 허구의 이야기라지만 두 사람을 보면서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생각한다. 마지막 에피소드의 제목이 '기적 같은 소리'였다. 팔자의 아이콘 동백은 '기적 같은 소리'를 믿지 않았다. 그러나 기적을 만들어낸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이었다. <동백꽃 필 무렵>은 사람을, 사랑을 믿고 싶어 지도록 하는 작품이다. 이 따뜻한 서사가 마음 한 구석을 따습게 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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