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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파 Oct 09. 2020

내가 가짜 사나이를 사랑할 수 없는 이유.

가짜 사나이를 보았다. 지난 여름, 시즌 1이 흥행하고 있을 때, 나는 피지컬 갤러리 구독자였는데도 클릭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나는 일상 속 운동 이야기 때문에 빡빡이 아저씨의 채널을 구독했지, 특전사 훈련은 내 관심밖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짜 사나이는 2020년의 아이콘으로 손꼽힐만큼 공룡 컨텐츠로 성장했고, 수많은 레거시 미디어 컨텐츠들의 콧대를 눌렀다. 마냥 외면하고 있을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재미있었다. 영상의 퀄리티가 정말 높았고, 긴장감도 꽤 많이 느껴졌다. UDT 훈련은 일반적인 육해공 부대와는 그 차원이 다르다. 영상으로나마 체험한 UDT 훈련의 강도는 놀라웠다.  실제 UDT는 이것보다 더 강도높은 훈련을 받을 것이다. 나는 직업 군인, 특전사들의 전문성과 헌신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들을 하는 사람들이다. 가짜사나이를 재미있게 보고 있는 이들 역시 존중한다.


그러나 영상을 쭉 보고 결론을 내렸다. '이것은 내 취향이 아니다.'라고. 누군가가 육체적, 신체적인 고통을 받고, 교관이 일반인 훈련생들에게 욕설을 하는 모습, 고압적인 분위기. 나는 이 모든 것이 유쾌하지 않았다. 욕설 역시 훈련의 일환이라는 것을 알지만, 나는 왜 이것을 영화처럼 재미있게 즐길 수 없었을까? '가짜 사나이'는 스트리머 공혁준의 나태한 모습을 본 김계란의 '갱생 프로젝트'에서 착안한 것이다. 가짜 사나이는 극한의 경험을 통해 나태한 자신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만큼 극단적인 경험을 하지 않으면,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없는가?  


즉, 나는 이 근본적인 명제에 설득되지 않은 것이다. 


나는 육군에서 군복무를 했다. 군대에서 즐거운 추억도, 좋은 인연도  있었지만, 군대 문화에 대한 로망은 없다.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그냥 막내라는 이유만으로 삽을 들고 나를 위협하던 상병을 기억한다. 어디에도 내 편이 없다고 생각되던 텐트에서, 얼마나 무서운 밤을 보냈는지 모른다. 뭐 로망이 굳이 있다면, 군대 생각이 나서 간짬뽕이랑 공화춘 라면을 섞어먹는 정도다. 


나는 상명하복과 수직적 질서를 강조하는 군사 문화를 싫어한다. 더 나아가, 이 문화가 현대 대한민국 사회를 퇴보시켰다고 믿는다. MBC 진짜 사나이를 보면서 웃긴 장면, 추억을 자극하는 장면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진짜 사나이는 대한민국 군대를 미화하고, 조직의 후진성과 야만성을 은폐했다.  (군인들이 실제로 고생하는 것에 비하면 급여라고도 할 수 없는 돈을 '금일봉'이라는 식으로 둔갑시켰던 것이 대표적이다.) 가짜 사나이는 애써 군사 문화를 미화하지 않았지만, 군사 문화를 그저 멋진 것으로만 재생산할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우려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누군가가 이 컨텐츠에 대해 비평을 하면, 시청자들은 '불편하면 보지 말라', '참가자들도 다 사전 동의한 것이다.' 라고 응수한다.  이 컨텐츠가 불편한 사람은 '미필'이나 '공익'일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나는 모든 비판과 토론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불편러'라는 말이 지독하게 싫다. 


내가 불편러라서 그런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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