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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파 Oct 15. 2019

아티스트 설리, 인간 최진리를 추모하며

자기 빛깔대로 살았던 한 인간을 기억하는 일



인간적인 인연과 별개로, 대중에게 친숙한 연예인의 죽음은 큰 충격을 준다. 설리의 죽음 역시 그렇다.


이른 나이에 연예계에 입성한 후, 그녀 에프엑스의 막내로 활약했다. 머리를 독특하게 묶고 '라차타'를 부르며 환하게 웃는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에프엑스의 '제트별', 'Airplane', '시그널', 딘의 '하루살이' 등, 내가 지금까지 즐겨듣는 노래들에도 설리의 목소리가 있다.


그녀가 그룹 활동을 접은 <Red Light> 앨범 이후, 그녀는 세상과 불화를 빚는 일이 잦았다.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틀에 자신을 맞추지 않다. 팬들은 그녀를 '할리우드 스타'에 비유하곤 했다. 무엇을 입든, 무엇을 말하든, 고개를 숙이지 않는 자세 때문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설리처럼 자기 빛깔대로 사는 사람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어느 한 쪽, 어느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다. 온라인 공간 속에서 얼굴을 숨기고 그녀에게 돌을 던졌던 군중들, 여성 연예인에 대한 성희롱을 유희라 여겼던 남성 네티즌들,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고인을 한낱 흥밋거리로 다루고 있을 거짓 언론들. 나는 이들이 절대 소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죄인의 마음으로 살기를 바란다. 지금이라도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길 바란다.


설리의 강력한 지지자였던 적은 없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활동을 보면서 내심 늘 멋지다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하고 싶어도 하지 못 하는 말을 했다. 노 브래지어 이슈도 그러한 맥락에 있다. '편안한 것이 최고'라며 의상의 자유를 외쳤을 뿐이다. 타인의 신체를 대상화하기 바쁜 사람들에게 있어, 그녀는 '관종'에 불과했 것이. 그러나 많은 여성들에게 있어 설리는 '사랑스러운 대변자'였다.


2017 총선 기간, 설리 인스타그램에 쿠바 여행 사진을 올리자, '선거일에 왜 투표를 안 하느냐'며 무례한 훈수를 두는 네티즌이 있었다. 설리는 보란듯이 사전투표 인증샷을 업로드했다. 통렬한 대처법이었다.


설리는 부지런히 자신의 뜻을 세상에 표현했던 시민이기도 하다. '낙태죄 폐지'와 '여성의 날'을 기념하며 여성들에 대한 연대를 천명했다. '위안부 기림의 날'을 알리는 것은 물론,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에는 여성주의 영화 '메기'의 GV에 참석해 마이크를 잡았다.


여성 연예인에게 유독 가혹한 잣대를 들이미는 이 땅에서, 설리는 자신의 빛깔대로,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치열하게 살았다. 하고 싶은 말은 꼭 했다. 스물여섯 살. 수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젊은 나이에 삶이 끝났다. 고인이 많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기를, 그리고 무엇보다 평안 속에서 쉴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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