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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파 Oct 15. 2019

누구도 몰랐던 사진가, '삶은 표현'이라 말하다

외로운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 표현을 통해 우리는 영원한 존재가 된다.


(2년 전, 오마이뉴스에 기고했던 글이다.)


당신은 비비안 마이어를 알고 있는가? 비비안 마이어는 미국에서 40년 동안 베이비시터('내니'라고 불리기도 한다)로 살았던 여성이다. 이민자의 자손이며, 하층민이었던 그녀는 삶의 대부분을 시카고에서 보냈다. 그리고 2009년에 한 요양원에서 쓸쓸하게 숨을 거두었다. 그렇게 조용히 세상에서 잊힐 것만 같았던 그녀의 이름은 뒤늦게 사람들 사이에서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존 말루프라는 청년이 우연히 그녀의 필름들을 발견했고, 이 사진을 세상에 알렸기 때문이다(이 스토리는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로 제작되었다).


비비안 마이어는 발이 닿는 곳마다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10만 장이 넘는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사진을 현상하지 않았다. 지인들은 비비안이 '폐쇄적인 사람'이었다고 회고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는 살면서 자신의 사진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말한 적도 없다.


그녀는 자신의 작품을 대중 앞에 내놓지 않고 죽었다. 그녀의 숨겨진 일기라도 발견되지 않는 이상, 우리는 그녀가 정확히 무엇을 표현하려고 했는지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슬픈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 한 가지 있다. 어디로 나가 사진을 찍을 것인지, 혹은 그 사진의 피사체를 선택하는 과정 하나하나에 비비안의 감정과 가치관이 서려 있었다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의 아내이자 밴드 윙스(Wings)의 멤버였던 린다 매카트니(Linda Mccartney)의 사진전에 갔던 날이 새삼 떠오른다. 그곳에는 지미 헨드릭스, 마이클 잭슨, 존 레논 등 수많은 슈퍼스타들의 사진들이 즐비했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가슴을 벅차게 하는 사진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의 마음을 흔든 한 장의 사진은 억만장자 스타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포르투갈의 이름 모를 시골 모녀가 함께 자전거를 타며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섣부른 추측일 수도 있으나, 그들은 아마도 몹시 가난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입고 있는 옷차림이 꽤 남루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웃음에서 가난의 무게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수십 채의 별장을 가지고 있는 스타들보다도 풍족해 보이는 웃음이었다(이 아름다운 사진을 다시 보고 싶은데, 아직 찾지 못했다). 린다 매카트니는 그 사진 한 장에 행복의 정서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이미 고인이 된 린다 매카트니를 만날 수는 없지만, 나는 그녀가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한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비안 마이어가 말한다, '표현하는 일' 자체가 좋은 거라고



비비안 마이어가 찍은 사진들도 이와 같다. 10만 장이 넘는 사진 속의 주인공은 다양하다. 거리의 걸인도 있고, 행복해 보이는 연인도 있다. 그녀의 작품들을 훑어보고 나서, 쉽게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사진이 있다. 백인 소년의 신발을 정성 들여 닦아주고 있는 흑인 소년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다. 그 두 사람이 친구였는지, 그 반대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진은 말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그저 추측할 뿐이다. 노예제도가 사라진 20세기 중반의 미국이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노예제가 존재했다. 비비안 마이어는 백인 소년보다는 무릎을 굽힌 흑인 소년에게 연대 의식을 느꼈으리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궁금해지는 것이 하나 있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사진들이었다면, 그녀는 왜 사진을 찍으며 살았는가 하는 것이다. 그 누구도 해답을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짐작할 수는 있다. 국어사전은 '표현'을 '생각이나 느낌 따위를 언어나 몸짓 따위의 형상으로 드러내어 나타내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우리가 스마트폰으로 찍는 '셀카'도 결국 표현에 대한 욕구 때문이다. 필자 역시 하루가 멀다 하고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린다. 허영이라고 해도 좋다. 타인이 어떤 반응을 하느냐에 앞서, 이 사진에는 내가 취사선택한 '나'의 이미지가 반영되어 있다. 비비안 마이어가 찍은 수십만 장의 사진들은 우리에게 살며시 말을 걸어온다. 설령 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표현하는 일 자체가 좋다는 것을 말이다.


그녀는 늘 경제적으로 압박받는 삶을 살았다.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아서 가족도 없었다. 사회성 없는 성격의 '내니'를 사랑해주는 곳은 많지 않았다. 이러한 모습만 본다면 그녀가 자신의 삶을 포기했을 것이라고 보기 쉽다.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그녀는 언제나 마음 한켠에 표현의 욕구를 간직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사진을 찍겠다는 일념으로 지갑을 쥐어 짰고, 세계 여행을 떠났다. '비록 가난하더라도 당신이 하고 싶은 걸 하라'는 식의 말을 하고 싶진 않다. 다만, 얼마나 낭만적인가. 그녀의 사진을 세상에 알린 존 말루프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그 시대의 기자였어요.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는 알리지 않았어요. 그냥 한 거예요."


인간은 느끼고 사유하며, 표현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생물이다. 그 표현을 남들과 풍부하게 나누는 것까지 가능하다면 더 할 나위 없는 행복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글이 있고, 그림이 있으며, 음악이 있는 것이다. 영원히 살 수 없는 운명의 인간에게는 축복과도 같다. 인생은 단 한 번이다. 그러니 우리는 삶에서 느끼는 것을 더욱 부지런히 표현해야 한다. 비록 비비안 마이어는 살아서는 풍요롭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의 유산은 시간의 벽을 넘어 현재를 사는 사람을 움직이고 있다. '표현'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영원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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