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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파 Oct 15. 2019

혐오와 반지성의 시대, 우리의 역할은 무엇인가?

‘타락한 저항 : 지배하는 피해자들, 우리 안의 반지성주의’를 읽고.

나는 그 어느 때보다 SNS와 밀접한 삶을 살고 있다. 유튜브를 시작한 후로 더욱 그렇다. 그런 만큼, 환멸을 느끼는 순간 역시 많아진다. 나의 기준에서 용납할 수 없는 반지성적 발화들 때문이다. 이러한 발화는 주로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에게 집중된다. [82년생 김지영]을 ‘82kg 김지영’이라 조롱하며, 해당 작품을 소비하는 사람은 ‘걸러야 할 사람’으로 분류된다. 간단한 도식이다. 페미니즘은 연애에 실패한 ‘못생기고 뚱뚱한 여자’들이 탐닉하는 것으로 치부된다. 이 과정에서 사회학적 맥락은 간단히 거세된다.


감사원 조사 결과, 서울메트로가 여성 지원자의 점수를 깎아 의도적으로 탈락시킨 사실이 밝혀졌다. 가스안전공사는 신입사원 채용 과정에서 여성 지원자 7명을 탈락시키기 위해 점수를 조작했다. 이러한 역사는 공기업과 사기업 할 것 없이 현재 진행형이다. 한국 남성의 가사 노동 시간은, 국회의원의 성비는 또 어떤가? 차별은 실재한다. 그럼에도 이를 인지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에게는 ‘진지충’, ‘PC충’이라는 낙인이 붙는다.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 단순히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할 때, ‘올바름이 어떻게 발전해야 하는가 ‘에 대한 논의는 사라진다. 세월호의 진실을 외치는 유족들의 울 부음에는 ‘유족충’이라며 삿대질을 한다. 진지한 토론보다는, 집단 전체를 유별난 ‘충’들로 뭉뚱그리고, 배제하는 전략이 상대적으로 편하기 때문이다


.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고 그것을 생각하는 일은 피곤하다. 독설, 조롱 혹은 감정에 극도로 호소하는 신파가 더 쉽다."- p. 9 ~10 중


예술사회학을 공부한 저자는 반지성주의를 ‘알기를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태도’라고 규정한다. 어느 시대보다 문자가 널려 있지만, ‘글’을 읽는 사람은 적어진 21세기. 이 책은 21세기에 만연한 ‘반지성주의(anti-intellectualism)’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이다.


다양한 예가 등장한다. 억압의 역사 속에서 탄생한 ‘블랙리스트’와 '팬덤 정치',  '나꼼수'가 재생산하는 진보의 성차별 등. 그리고 저자는 더 나아가 박근혜라는 정치권력을 ‘여성성’으로 전환하는 시도에 대해 비판하기도 한다. 이구영 작가의 <더러운 잠>을 비롯, ‘악녀’, ‘저잣거리 아녀자’, ‘홍등가처럼 빨간 눈’와 같은 표현들이 바로 그 예다. 이것은 모두 문제의 본질을 지우고, 여성성을 수단으로 삼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여성이 남성 권력에 의해 정의되고, 명명되는 가운데, 페미니즘이 악마화 되는 과정을 논한 3장 역시 인상적이다.


"늘 그렇듯이, 여성의 ’ 극단‘은 더욱 확장되어 알려지며 남성의 ’ 보편‘은 일부의 문제로 축소된다. 확장되는 극단과 축소되는 보편 사이에서 이 둘은 결국 비슷한 무게와 모양을 가진 동일 집단이라는 허상이 만들어진다." - p. 166 중


 “사회의 야만은 약자 멸시에 담겨 있다. 지성은 사회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향해 치밀한 관심을 동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고립되기를 두려워하지 않되, 현실에 참여하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다. 참여하되 구속받지 않아야 한다.” - p. 196 중


반지성주의는 증오와 연합한 채, 다양한 곳에서 작동한다. 혐오는 보수와 진보, 그리고 국가를 막론한다. 세월호 유족들이 모욕당한 광화문 광장에 있었고, 우리가 섰던 촛불 광장에도, 강남역 10번 출구에도, 도널드 트럼프의 트위터에도, 명문대학교의 커뮤니티에도 존재했다. 반지성주의를 테마로 삼아, 여러 가지 논의를 펼치던 저자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한다. ‘애도는 개인의 슬픔으로 머물 것이 아니라 사회화되어야 한다’(p.187)라고 말이다. <타락한 저항>은 한 지식인이 사회의 진보에 기여하는 방법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이다. ‘나는 충분히 알고 있다’고 자신하는 것은 금물이다. 타인의 고통을 고민하고, 현실에 불편한 질문을 던질 때 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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