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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파 Mar 07. 2021

"세종문화회관 같은 곳만 공연장이라고?

코로나 시대의 서글픈 목소리, #우리의무대를지켜주세요


지난 2월 27일, 마포구에 위치한 라이브 클럽 'Club FF'에서 밴드의 공연이 갑자기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마포구청 측에서 시행한 강제 행정 조처 때문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에서는 일반음식점의 무대 위에서 공연하는 행위를 할 수 없다는 것이 그 근거였다. 그리고 3월 3일, 마포구청의 한 익명의 관계자는 이 행정 조처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입장을 내놓았다.


"세종문화회관 같은 곳이 공연장이다."/ "일반음식점에서 하는 칠순 잔치 같은 건 코로나 19 전에야 그냥 넘어갔던 거지, 코로나 19 이후에는 당연히 안 되는 것 아니겠느냐"


마포구는 줄곧 지역 문화와 예술, 축제를 지역의 상징으로 내걸어왔지만, 이 관계자의 발화에는 고급문화와 저급문화의 위계를 구분 짓는 듯한 뉘앙스가 묻어 있었다. 이들이 보여준 '공연장의 이분법'은 많은 뮤지션과 음악 팬들의 공분을 샀다.


라이브 클럽은 왜 공연장이 아닌가요?
 

마포구청 관계자의 발언과 달리, 세종문화회관 같은 대형 공연장만이 공연장은 아니다. 라이브 클럽은 언더 그라운드의 신(scene)을 형성하고 문화의 다양성을 증진하는 데에 있어 필수적인 곳이다. 비틀스(The Beatles)는 신인 시절 영국 리버풀의 캐번 클럽, 독일 함부르크의 인드라 클럽 등 라이브 클럽을 기반으로 활동했다. 술을 마시며 공연을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국내에서는 크라잉넛과 노브레인, 자우림 등 국내의 굵직한 밴드들이 라이브 클럽을 거점으로 삼고 성장했던 바 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라이브 클럽은 불법으로 간주되곤 했다. 공연을 중심으로 하는 라이브 클럽과 유흥업소 '나이트 클럽'은 잘 구분되지 않았고, '퇴폐적 장소'라는 오명에도 노출되어 있었다. 다양한 장르 문화에 대한 인식 부족은 자연스럽게 정책적인 억압으로 연결되었다. 라이브 클럽에서는 주류를 판매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일반음식점으로 분류되었다. 그래서 라이브 클럽은 2인 이상 유흥종사자를 둘 수 없다.'는 식품위생법 시행령의 영향권에 놓이게 되었다.


당시의 규정에 따르면, 뮤지션의 공연은 '유흥 행위'에 포함되었다. 음악 공연을 유흥 행위에 포함시키는 당시의 규정은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1999년 11월 16일 식품위생법이 개정되면서 라이브 클럽에서의 공연이 비로소 합법화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원로 가수 출신의 최희준 국회의원이 '현장 공연 활성화를 통한 대중문화 발전 방안' 공청회를 열기도 했다.


각계의 노력 끝에 '불법 업소'라는 타이틀은 벗어났지만 과제는 남아 있었다. 많은 클럽 공연장들이 '일반음식점'과 동일한 규제를 받고 있다. 음식점보다 공연장의 정체성이 더욱 강한 장소들이지만, 이 공간의 특수성을 고려한 정책은 전무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불합리성은 펜데믹 이후 더욱 극심하게 드러나고 있다.


 
'무대를 지키자' 아티스트들이 직접 나섰다.
 

홍대앞 라이브 클럽을 차치하고도, 대중음악이 타 장르에 비해 겪는 불합리한 대우는 두드러진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사회적 거리두기 수도권 2단계에 따르면, 영화관이나 뮤지컬 공연의 경우, '일행' 단위로 한 칸씩 띄어 앉는 것이 가능하다. (일행은 최대 4명 단위까지 인정된다.) 올해 2월 2일부터 3월 1일까지 뮤지컬 < 맨 오브 라만차 >를 공연했던 뮤지컬 전문 공연장 '샤롯데시어터'의 경우, 거리두기 좌석 기준을 적용하여 총 정원인 1241석 중에서 800석 이상의 좌석이 채워질 수 있었다.


그러나 대중음악 공연의 경우에는, 같은 거리두기 단계에 따른 동일한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다. 가수 이소라의 콘서트는 '100인 이하로 집합 인원을 제한하라'는 행정 명령을 받았다.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개최된 보이그룹 엔하이픈의 팬미팅은 공연 도중에 집행 금지 행정 명령을 받았다. 대중음악 콘서트는 뮤지컬과 달리 일반 집합·모임·행사 리스트에 포함돼 있다. 따라서 현행 거리두기 2단계 정책에 따르면 대중음악 콘서트에서는 100인 이상의 대면 집합 자체가 금지된다.


지금의 거리두기 단계가 유지된다면 앞으로 예정된 '미스터 트롯', '싱어게인' 콘서트의 개최도 어려울 것이다. 중대형 공연장에서 공연을 진행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면, 100인 이하를 수용하는 소규모 공연장에서의 공연은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클럽 FF 등에게 시행된 행정 조처가 보여주듯, 소규모 공연장의 공연 진행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현장에서는 철저한 방역 정책과 거리두기가 준수되고 있으나, 방역 당국은 '관객의 집단 가창과 함성 때문에 비말 전파 위험이 높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형평성과 당위가 부재한 정책이 시행되고 있는 가운데, 무브홀 등 유서깊은 공연장들이 하나 둘 문을 닫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위기에 처한 공연계의 생태를 살리고자 하는 움직임도 계속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오는 3월 8일부터 14일에 걸쳐, 실시간 온라인 뮤직 페스티벌 '#우리의무대를지켜주세요(Save Our Stages Korea)가 열린다. 이미 미국에서 동일한 취지의 캠페인 #SAVEOURSTAGES가 열렸고, 푸 파이터스(Foo Fighters), 본 이베어(Bon Iver), 마일리 사이러스(Miley Cirus) 등 거물 뮤지션들이 참여하면서 높은 액수의 기금을 마련했다.


이 페스티벌은 ' 팬데믹 시대에 사라져가는 인디 라이브 공연장을 지키기 위한 실시간 온라인 공연 페스티벌'을 자처하고 있다. 홍대앞의 여러 라이브 클럽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라이브 클럽 데이'처럼 다섯 개의 채널에서 서로 다른 공연장의 무대(롤링홀·웨스트브리지·프리즘홀·라디오가가·드림홀)를 송출한다. 크라잉넛과 노브레인, 잔나비, 최고은, 브로콜리너마저 등 홍대 신을 기반으로 성장해온 많은 뮤지션들이 라인업에 합류했다.


가리온과 다이나믹듀오 등 힙합 뮤지션들의 참가도 예고되었으며, 칠순을 넘긴 포크 음악의 거장 이정선 역시 이 페스티벌에 참가한다. 1일 티켓은 1만원, 전체 공연을 즐길 수 있는 티켓은 5만원에 판매된다. 페스티벌의 수익은 행사를 진행하는 인원들의 실비, 공연장과 뮤지션의 몫으로 분배되며, 인디 음악 생태계를 위한 기금으로도 조성된다. 공연을 단순한 '유흥'이 아니라 '삶'의 중요한 과정으로 여기는 이들의 목소리가 하나 둘 모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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