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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파 Apr 25. 2021

길 위의 삶, 누가 그들을 동정하는가?

클로이 자오 감독의 <노매드랜드>



클로이 자오 감독의 영화 <노 매드랜드>는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의 유력한 작품상 후보다. 이 작품은 현재 제 77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제55회 전미비평가협회 4관왕, 제78회 골든글로브 작품상, 제74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등을 수상했다. 어느새 여러 시상식에서 거둔 트로피만 200개가 넘는다. 중국계 미국 여성인 클로이 자오는 <이터널스>의 연출을 맡아, 마블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삶을 관조하는 카메라


<노매드랜드>는 제시카 브루더의 논픽션 <21세기 미국에서 살아남기(Nomadland : Surviving America in the Twenty-First Century) >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이 이야기는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로부터 출발한다. 금융자본주의의 팽창은 수많은 보통의 삶을 거리로 내몰았다. 그중 어떤 이들은 차를 집으로 삼아 미국을 떠도는 유랑자, 즉 노매드(nomad)가 되었다. 그들은 각자의 상실을 등에 진 채 길 위의 삶을 선택했을 것이다. 


영화의 주인공 '펀(프랜시스 맥도먼드 분)의 삶 역시 그렇다. 수십 년을 일했던 네바다의 석고 공장이 금융 위기의 여파로 문을 닫았다. 도시는 유령 도시가 되었고, 우편 번호가 사라졌다. 남편마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펀은 아마존 컨베이어 벨트의 노동자가 되었다가, 식당의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되기도 하며, 국립공원에서 일하기도 한다. 일자리는 계속 바뀌지만, 잠과 용변을 차에서 해결한다는 것은 변함없다. 그에게 남은 것은 차뿐이다. 한편 영화에 등장하는 밥 웰스와 샬린 스왱키, 린다 메이 등의 유랑자들은 배우가 아니라 실제 유랑자들이다. 흥미로운 것은 프랜시스 맥도먼드 역시 유랑자들과 있을 때 이질감이 없다는 사실이다. 연기파 배우의 연기라기보다는, 다큐멘터리에 담긴 시대의 한 풍경에 가깝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맥도먼드는 이 작품에서도 자신의 공력으로 극을 이끌어간다. 펀의 눈빛에는 무엇으로도 쉽게 채워지지 않는 공허감이 서려 있다(실제로 밥 웰스 등 유랑자들은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직접 밝히기 전까지 그가 할리우드 배우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한다). 누군가에게 이 영화는 매우 재미없을 것이다. 핵심적 사건과 기승전결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클로이 자오의 시선은 몹시 관조적이다. 유랑자들을 자신의 방향대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감독의 카메라가 유랑자들의 방향을 따라 간다. 클로이 자오는 자본주의의 그늘을 동정하지 않는다. 사회적인 영화지만 날카로운 비판 의식을 세게 드러내지도 않았다. 주장하기보다 관찰하는 데에 힘을 쏟았다.  사막과 바다, 밤하늘 등 광각 카메라에 담긴 대자연, 끝을 모르게 뻗어 있는 도로의 모습, 현대음악가 루드비코 에이나우디(Ludovico Einaudi)의 미니멀한 음악까지, 그 모든 것이 유랑자들의 삶을 조용히 관조하는 듯하다.


 

길 위에서도 삶은 이어진다.


영화의 많은 시간은 유랑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데에 할애된다. 펀이 만난 유랑자들의 사연은 다양하다. 베트남 전쟁 이후 PTSD에 시달리는 노인이 있다. 누군가는 자살로 세상을 떠난 자녀를 기억하며 유랑한다. 자신의 죽음을 몇 개월 앞두고, 자신의 방식대로 삶을 마무리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친구 '스왱키'도 있다. 펀은 길 위에서 만난 유랑자들과 친구가 되고, 연대감을 나눈다. 필요한 물건들을 나누며, 도움을 받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길을 떠나는 것은 혼자 감당해야 할 몫이다. 그저 '길에서 또 만납시다 (see you down the road)'라는 말로 인사를 나누며 후일을 기약한다. 작별을 예감하더라도 그들은 작별을 말하지 않는다. 삶이 계속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것이 유랑자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며, 존엄을 실현하는 방식이다.


"집이 없는 사람(homeless)'과 무주택자(houseless)는 달라."


극초반, 펀은 '혹시 홈리스인가'라는 질문에 위와 같이 대답한다. 그의 말마따나, 펀에게는 '집'이 있다. 그가 주변으로부터 안온한 삶에 대한 제의를 받아도 거절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니 관객들은 길 위의 사람들을 타자화할 수 없고, 동정할 수도 없다. 길 위에서도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


아메리칸 드림이 무너진 폐허에 남은 것은, 목적지 없이 미국을 횡단하는 캠핑카의 행렬이다. 미국 록의 '보스'로 불리는 가수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은 아메리칸 드림과 노동 계급의 붕괴를 노래하곤 했다. 그는 삶의 불확실성을 '길'이라는 단어에 빌어 노래하곤 했다. 그러나 그의 노래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되리라'라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노매드랜드> 속 유랑자들의 여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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