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Lorde)의 ‘Solar Power'
대중음악의 거장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가 세상을 떠났던 2016년, 영국 브릿 어워드(Brit Awards)에서는 그를 추모하는 공연이 열렸다. 이날 ‘Life On Mars'를 부르며 보위를 추모한 20대 여성이 있다. 뉴질랜드 출신의 로드(Lorde)다. 보위는 생전, 로드를 ‘음악의 미래’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화성인’ 보위는 그에게서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1996년생인 로드는 ‘Royals'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2013년 당시 열일곱 살이었던 그의 데뷔곡은 빌보드 핫 100 차트 9주 연속 1위를 차지했고,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노래상‘의 주인공이 되었다. 미니멀한 비트 위에서 팝스타들의 허영을 비웃는 10대 소녀의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로드는 ‘안티 팝(Anti Pop)'을 추구하면서 장르에 구애받지 않았고, 자신의 내면을 이야기로 풀어낼 줄 알았다. 이러한 그의 표현 방식은 다른 뮤지션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올해 팝계 최고의 신성으로 떠오른 올리비아 로드리고(Olivia Rodrigo)는 자신의 우상 중 한 사람으로 로드를 뽑았다.
“We don't care, we're driving Cadillacs in our dreams.”
우리는 신경 쓰지 않아. 우린 꿈속에서 캐딜락을 운전하고 있으니까
- ‘Roylas' 중
그리고 2017년, 로드는 2집 < Melodrama >에서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데뷔곡 당시의 포부와 달리, 오히려 자신조차도 매일 약에 취하고 낯선 사람의 차에서 일어난다고 토로한다. 사랑했던 연인과의 이별, 거대한 성공 뒤에 찾아온 중압감이 그를 괴롭혔다. 나의 거칠고도 선명했던 2년간의 기록'이라는 표현이 보여주듯, 그는 청춘의 번민과 모순, 관계의 그림자를 이야기했다. <Melodrama>의 상업적 성취는 데뷔 앨범에 미치지 못 했으나, 한해를 대표하는 명반으로 공인되었다. 누구도 소포모어 징크스를 논할 수 없었다.
돌아온 로드, 자연 속 긍정의 노래
로드는 지난 8년 동안 두 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분명히 다작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짧은 커리어 속에서도 전복의 재미를 선사했다. 그리고 다시 4년만에 싱글 ‘Solar Power'를 들고 돌아왔다. 오는 8월 발표될 정규 3집 앨범과 동명이다. 프로듀서 잭 안토노프와 다시 손을 잡았다. 인디신의 아이콘인 피비 브리저스(Phoebe Bridgers), 그리고 클레어오(Clairo)가 백 보컬로 참여하면서 깊이를 더했다.
30여 년 전 록과 댄스 음악을 결합했던 스코틀랜드 출신 밴드 프라이멀 스크림(Primal Scream)의 ‘Loaded'가 떠오른다. 은은하게 깔린 어쿠스틱 기타, 층을 쌓는 코러스 역시 편안함을 선사한다. 로드의 목소리에는 지금까지의 우울 대신, 전에 없던 낙관이 베여 있다. 로드가 이토록 밝은 노래를 부른 적이 있었나 싶다. 로드는 이번 앨범에 대해 '햇살 같은 사운드를 머금은 곡들로 채워진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내면의 밑바닥에 깔린 정념을 끌어내 분출하는 이야기꾼이었다. 전작에서 ’완벽한 곳은 어디에 있는걸까?(Perfect Places)'라고 물었던 그가, 이번에는 대자연 속에서 삶의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이 변화는 급진적이지만, 어색하지 않다.
“Forget all of the tears that you've cried It's over“
지금까지 네가 흘렸던 눈물은 모두 잊어버려. 다 끝난 일이니까.
- ‘Solar Power' 중
의미심장한 얼굴을 클로즈업한 채 시작되었던 ‘Green Light(2017)'의 뮤직비디오와 달리, ’Solar Power'의 뮤직비디오는 편안한 옷을 입고 해변에 누워있는 로드의 모습에서 시작된다. 로드는 여유로운 모습으로 춤을 춘다. 그 옆에는 영화 < 미드소마 >를 연상시키는 옷차림의 친구들이 포진해 있는데 흡사 종교적 공동체를 보는 듯 하다. 로드는 바다와 바람 등 대자연의 이미지를 빌려, 잃어버린 호시절을 찬미한다. (로드는 이번 앨범을 CD 형태로 발매하지 않을 예정이다. 지난겨울 남극에 다녀온 이후 자연과 환경 문제의 중요성에 대해 고심했다는 후문이다.)
로드는 최근 스페인 프리마베라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를 확정하는 등, 페스티벌 무대로 돌아올 준비를 마쳤다. 나는 2017년 여름 ‘지산 밸리 록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에서 그의 공연을 보았던 적이 있다. 로드는 ‘막춤’에 가까운 춤을 추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 날도 마찬가지였다. 케이팝 그룹의 그것에 비하면 한없이 엉성해 보이는, 그러나 누구보다 자유로운 춤사위가 기억 속에 생생하다. 운 좋게 그와 함께 사진을 찍었던 것은 덤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네 현실에는 이 노래 제목처럼 ‘태양 빛(solar power)’을 즐길 여유가 없다.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던 찰나에, 잔혹한 여름이 돌아왔다. 확진자의 수가 크게 늘었고,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도 격상되었다. 지난 1년 반 동안 감내했던 절망감 역시 다시 소환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펜데믹 이전에 대한 희망을 품는다. 그래야만 한다. 나 역시 수년전의 멋진 여름을 더듬으며 ‘Solar Power'를 듣는다. 땡볕 속 페스티벌에서 맥주를 마시고, 로드와 함께 엉성한 춤을 출 날을 상상한다. 도심 속 작은 휴양지가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