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콜리너마저와 김뜻돌, 팬데믹 시대의 위로
나는 공연 관람을 취미 이상의 생활이라고 여겨 왔다. 큰 규모의 뮤직 페스티벌, 내한공연, 클럽 공연이든 가리지 않고 보는 것이 삶의 원동력이었다. 그런데 코로나 팬데믹 이후 19개월 동안 공연을 보지 못했다. 큰 상실이었다. 홍대 앞 공연장에 가려고 했지만, 야속하게도 마음을 먹을 때마다 대유행이 시작되었다. 아니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ㅠㅠ
지난 7월부터 사회적 거리두기가 4단계로 격상되면서 재개될 예정이었던 공연들이 대거 취소되거나 연기되었다. 한 베테랑 기타리스트는 트로트 거장의 공연 개최를 비난하며 "후배 가수들은 몇십 명 규모의 공연도 취소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누군가는 공연을 열어야만 한다.
예매 사이트를 들락날락하다가, 밴드 브로콜리 너마저(덕원, 잔디, 류지)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운 좋게 마지막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브로콜리 너마저는 오래 전부터 익숙한 존재였다. 2000년대 후반부터 그들의 노래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위로하는 보편적인 노래였다. 모든 것이 취소되는 시국에 '안전한 공연의 사례'를 추가하고자 하는 그들의 신념에도 의미가 있었다.
아직 공연을 본 적이 없는 게스트 김뜻돌의 라이브 역시 궁금했다. 김뜻돌은 평단과 음악 팬들에게 두루 찬사를 받은 인디신의 신성이며, 2021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신인상을 받은 뮤지션이다. 나 역시 그의 첫 정규 앨범 <꿈에서 온 전화>가 2020년 최고의 앨범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포크와 록, 재즈 등 다양한 장르를 어우르는 재능, 그리고 세상 만사를 새롭게 보이도록 하는 노랫말이 빛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오프라인 공연을 볼 기회는 잘 나지 않았다. 공연이나 페스티벌을 자주 다니던 사람들이라면, 궁금했던 뮤지션을 처음 만나는 즐거움이 어떤 것인지 잘 알 것이다. 그러나 팬데믹 시대는 그 즐거움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오후, 홍대 앞 공연장 웨스트브릿지로 향했다. 힘든 상황 속에서 진행되는 공연인 만큼, 브로콜리 너마저는 '안전한 공연'의 완성에 많은 신경을 기울였다. 모든 관객들이 공연 당일까지 자가 문진표를 작성해야 했고, QR 체크와 체온 측정을 완료해야만 공연장에 입장할 수 있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규칙에 따라 좌석을 띄워 배치했고,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되었다. 함성과 떼창, 앵콜 요청 등은 모두 박수로 대신했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었지 천천히 기울어가는
하루 또 일년 쏟아지는 햇살에 말라버린 풀처럼 더디 타버린 마음."
- (브로콜리 너마저) '2020' 중에서.
무력했던 팬데믹 시대를 돌아보는 오프닝곡 '2020'부터 희망의 여운을 남기는 엔딩곡 '유자차'에 이르기까지, 이번 공연에서 브로콜리 너마저는 위로의 메시지를 줄곧 강조했다. 이런 메시지는 최근 발표된 앨범 <어떻게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2021)에서도 짙게 드러난다. 우리는 위로가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지 않는가. '어떻게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발버둥 치고 있지 않는가.
그렇다고 해서 공연이 차분하게만 흘러가지는 않았다. 브로콜리 너마저 멤버들의 조용한 유머 감각이 소소한 웃음을 자아냈다. 상대적으로 템포가 빠른 '변두리 소년 소녀', '커뮤니케이션의 이해'같은 곡이 이어질 때는 일렉 기타 사운드에 맞춰 고개를 끄덕거릴 발을 구를 수 있었다.
시대의 척력, 음악의 인력
브로콜리 너마저가 김뜻돌의 '성큼성큼'을 커버하던 도중, 게스트 김뜻돌이 유쾌한 표정으로 무대 위에 올랐다. "아무도 깨어있지 않은 밤 고장 난 시계 만이 울리네"라는 가사에 맞춰 시계를 들고 등장한 것이다. 학창 시절 밴드부에서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를 불렀던 김뜻돌이 원곡자와 함께 무대에 섰다. 1996년생인 김뜻돌은 브로콜리 너마저를 '인디 조상'이라고 불렀다. 어수룩한 청춘의 노래를 부르던 이들은 이제 역사 속에서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은 것일까.
브로콜리 너마저는 2011년 이후 '이른 열대야'라는 이름의 장기 공연을 열어 왔다. 8회째를 맞는 올해는 특별히 'The Festival'이라는 부제를 붙였다. 김뜻돌, 래퍼 최엘비, 황푸하, 시와, 김사월 등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들과 릴레이 합동 공연을 기획한 것이다. 팬데믹 상황이 계속되면서 대부분의 페스티벌이 열리지 못 하고 있는 상황이라 이 기획은 더욱 뜻깊었다. 단순한 합동 공연이 아니라 두 뮤지션이 서로의 세계를 주고받는 데에서 만들어지는 다채로움이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화사하지 않다. 일상을 되찾게 되리라는 기대는 있으나, 여전히 모든 것이 멀어지고 있는 거리두기의 시대다. 그러나 음악이 가진 인력(引力)은 변함이 없었다. 브로콜리 너마저와 김뜻돌은 한동안 잊고 살았던 감각을 다시 소환했다. 떼창과 함성은 없더라도, 음악은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게 만든다. 이런 순간이 모였을 때, 우리는 '이 미친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올해 가장 산뜻한 마음으로 19개월 만의 공연 리뷰를 마무리한다.
"어제의 슬픔도 오늘의 미련도 비누로 깨끗이 씻어 흘려보내요.
떠나간 사람도 떠나갈 사람도 이젠 이젠."
- (김뜻돌) '샤워를 해야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