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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파 Sep 02. 2021

너는 '폐급' 병사였니, '에이스'였니?

넷플릭스 <D.P.>, 병영 문화의 야만을 응시한다.


* 주의!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 D.P.>(디피)는 최근 접한 OTT 컨텐츠 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이름조차 생소하던 D.P.(Deserter Pursuit, 헌병 탈영병 체포전담조)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키워드 중 하나다. 과장을 조금 섞자면, 모든 사람들이  < D.P. >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원작 만화 < D.P. 개의 날 >을 그린 김보통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살려, 누구도 듣지 못한 이야기를 전한다. < D.P. >는 단순히 '탈영병을 잡는 활극'이 아니라 우리네 문화 자체에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로 확장된다. 구교환과 손석구, 김성균 등 배우들의 개성 있는 연기와 세련된 영상미도 인상적이다.


이야기의 배경은 2014년이다. 극 초반, 주인공 안준호(정해인 분)와 한호열(구교환 분)의 생활관에는 씨스타의 'Touch My Body(2014)'가 울려 퍼진다. 익숙한 선율이다. 나 역시 2014년에 입대해 막내 생활을 했다. 육군 28사단에서 발생한 '윤 일병 사망 사건', 22사단에서 발생한 '임 병장 총기 난사 사건'이 이어지면서 병영 문화 혁신이 화두에 올랐던 시기이기도 했다.


가해자가 된 피해자



자연스럽게 나의 지난 군생활 역시 톺아보았다.  '추억 보정'인지 모르겠지만 군대에 관한 좋은 추억도 꽤 있다. 야전 훈련에서 흙 묻은 손으로 먹은 주먹밥, 추운 날 근무를 마치고 동기들과 함께 먹었던 컵라면은 정말 맛났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생활관에서 콜드플레이의 앨범을 들으며 책을 읽던 병장 시절도 행복했다. '처음엔 고생하다가 뒤로 갈수록 편해진다'는 선임들의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 D.P. >를 보면서 다시 한번 내가 피해자였던 시절을 떠올렸다. 막내 시절, 선임들과 집합해 있을 때 우리는 함부로 웃을 수 없었다. 웃으면 '신병이 (군기가) 빠졌다'며 욕을 먹게 되기 때문이다. 순발력과 손재주가 떨어지는 편이라 혼날 때도 많았다. 삽을 든 선임에게 욕설과 위협을 들었을 때, 위협했던 이와 텐트에서 단 둘이 남겨졌을 때의 공포감은 지금도 생생하다. 가장 괴로운 것은, 이 과정에서 "내 가치가 밑바닥까지 절하당하고 있다"하는 생각이었다.


누군가는 나에게 편하게 군생활을 하지 않았느냐고 말한다. 나는 군생활 내내  물리적인 폭력을 당한 적이 없다. 맞선임 세대가 당한 가혹 행위가 세상에 밝혀진 후, 부대가 한바탕 뒤집어졌기 때문이었다. < D.P. > 의 빌런 황장수 병장(신승호 분)처럼 엽기적인 가혹 행위를 가하는 선임을 본 적 역시 없다. 그러나 내가 당한 피해의 경험 역시 병영 문화의 후진성 한가운데에 있다. 위계 구조의 공포 때문에 막내가 두 발을 뻗고 잘 수 없다는 것이  본질이다.


그러나 나도 피해 사실만 늘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소위 '폐급'이라 불리던 후임에게 고함을 지른 적이 있다. '왜 내가 너 때문에 다른 선임에게 욕을 먹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날 바로 그 후임에게 사과했다. 정말 미안해서였는지, '마음의 편지(병영 부조리를 방지하기 위해 실시하는 비밀 편지 제도)'에 이름이 적히고 싶지 않아서였는지는 모르겠다. 나도 남들과 똑같아졌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착잡했지만, '그래도 나는 다른 애들처럼 욕을 하지는 않았으니까'라며 스스로 합리화했다. 병영 문화가 스물두 살에게 남긴 상흔은 꽤 컸다.


대한민국 사회는 이 불편한 현실을 좀처럼 이야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병영 문화의 전근대성을 은폐하는 데에 조직적으로 가담했다.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MBC <진짜 사나이>는 상징적인 순간이다. 이 프로그램은 비합리적인 수준의 월급을 '나라에서 주는 금일봉'이라 부르며 현실을 왜곡했다. 지난해 유튜브를 강타했던 '가짜 사나이'는 그 반대편에 서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 역시 마초이즘과 결합하면서, 군대 문화의 낭만화에 공헌했다.


현실은 오히려 윤종빈의 <용서받지 못한 자>, 그리고 김보통의 < D.P. >와 가깝다. 여기에는 장병을 소모품으로 여기며 보신주의로 일관하는 천용덕(현봉식 분) 같은 지휘관이 있다. 조직의 성격과 맞지 않는 이를 무용지물로 취급하는 폭력 문화, 주먹구구 식 체계의 자리도 있다. 그게 내가 아는 군대다.


방관하지 않고, 대답할 수 있을까?



각자의 빛깔을 지닌 청년들이 '폐급' 혹은 '에이스'라는 기준 사이에서 재단된다. 그 기준은 과연 누가 정하는가? 조직 내에서의 효용 가치에 따라 인간의 존엄이 달라질 수 있 말인가. <D.P.>의 최후반부를 견인하는 조석봉(조현철 분)에게도 '폐급'이라는 낙인이 붙었다. 사회에서 성실하게 만화를 그리고 아이들을 가르쳤던 '봉디쌤' 석봉은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느냐'며 울부짖는다. 피칠갑이 된 그의 욕설은 그 어떤 울음보다 처연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붕괴에 온전히 감정을 이입할 수 있다.)


마지막 에피소드 제목이 '방관자들'이라는 사실은 김보통 작가의 지향점을 명확히 한다. 군필 남성들은 <D.P.>를 보고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올 것 같다'라고 일제히 반응했다. 나도 숨이 턱 막히는 순간이 몇 가지 있었다. 그러나 < D.P. >의 의의는 과거를 소환하는 데에만 있지 않다. 한국 남성의 생애 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병영 문화를 가져온 후, '과업은 끝나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문제의 핵심은 '가해자가 되기 쉬운 구조'다. 병영 문화가 개인을 억압하는 과정은 개인이 개인을 억압하는 과정으로 전이된다. 모두가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후임을 관리하지 않으면 내가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악의 평범성은 "뺑이 쳐라"라는 전역 소감과 함께 잊히기 마련이다.


"저희 부대에 있는 수통 있지 않습니까. 거기 뭐라고 적혀 있는지 아십니까? 1953. 6.25 때 쓰던 거라고. 수통도 안 바뀌는데 무슨..."


석봉은 군대가 바뀔 수 있다는 호열의 이상을 믿지 않았. 그러나 몇년 전, 바뀌지 않을 것 같았던 구식 수통이 신식 수통으로 바뀌었다. 전군에 스마트폰이 도입된 이후 병사의 자살과 탈영도 크게 감소하고 있다. 역사가 조금씩 진전하는 가운데, 여전히 묻혀 있는 목소리 역시 조명받을 수 있어야 하겠다.


<D.P.> 열풍을 다룬 신문 기사에서 군 관계자가 '2014년 일선 군대에서 일어난 부조리라고 보기는 어렵다.'라고 말한 것을 보았다. 아직도 누군가는 이 이야기를 '옛날 이야기' 정도로 일축하고 싶어 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지금도 전국 육해공군에서는 수많은 군내 가혹 행위와 인권 침해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2014년 윤일병 사건과 임 병장 사건을 거치면서 그들이 배운 것은 없다.


우리는 석봉의 처연한 울음에 대한 대답을 준비해야 한다.  책임 있는 자들이 외면한다면, 우리가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뺑이 쳐라'라고 뒷짐질 것이 아니라, '요즘은 괜찮으냐'라고 물어야 한다. < D.P. >의 서글픈 이야기는 물음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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