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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파 Mar 07. 2022

 "잘 먹고 잘 삽시다"라는 수상소감.

2022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 다녀와서

최우수 일렉트로니카 음반상과 최우수 일렉트로니카 노래상을 수상한 '해파리'와 함께!


지난 3월 1일, 선정위원 분의 초대를 받아 노들섬에서 열린 제 19회 한국대중음악상(KMA)에 다녀왔다. 


한국대중음악상은 상업적 성취가 아니라 음악적 성취에 초점을 맞춰 시상하는 시상식이다. 대중음악평론가, 음악 전문 기자, 음악 PD 등 업계 전문가들에 의해 심사가 진행된다. '대중음악상'이지만, 대중에게 인지도가 낮은 뮤지션이 이름을 올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올해 한국대중음악상은 총 25개 부문을 통해 2021년을 결산했다. 'Next Level' 열풍의 에스파(aespa)가 '올해의 노래', '올해의 신인상', '최우수 케이팝 노래상'을 모두 차지했고, 걸그룹 역사상 이 시상식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거뒀다. 방탄소년단은 올해의 음악인상을 수상했다. 싱어송라이터 이랑은 정규 앨범 <늑대가 나타났다>으로 올해의 음반상과 최우수 포크 음반상을 받으면서 2관왕에 올랐다. <늑대가 나타났다>는 자본주의의 그늘, 여성, 소수자의 삶을 섬세하게 아우른 명작이다.정구원 선정위원은 선정의 변을 통해 '끊임없이 말을 거는, 그럼으로써 죽음에 저항하는 앨범'이라고 말했다. 


케이팝 부문 역시 신설되었다. 보통 케이팝 음악은 '댄스/일렉트로니카' 부문과 함께 케이팝 산업의 특수성, 퍼포먼스의 유무 등이 중요한 평가 요소로 고려되었다. 앨범상은 청하의 최우수 케이팝 앨범상은 청하의 < Querencia >에, 최우수 케이팝 노래상은 에스파의 'Next Level'에 돌아갔다.


공로상은 영화 <고고70>의 모델로도 유명한 1970년대 그룹사운드 '데블스'에게 돌아갔다. 선정위원회 특별상은 자신의 생일 파티 '경록절'을 홍대의 명절로 만든 크라잉넛 한경록, 그리고 팬데믹으로 인해 위기를 맞은 재즈 클럽에 대한 후원 캠페인을 진행했던 '한국 재즈 수비대'에게 돌아갔다. 코로나 19로 인해 위축된 공연 문화를 위해 기여해온 이들을 조명한 것이다. 한경록은 뮤지션들에게 "절대로 음악을 멈추지 말라. 음악은 위로이며 희망이다"라는 격려를 보내기도 했다.



아티스트 이랑은 무대에 올라 "저는 그냥 말을 할 줄 아는, 겁 많고 자주 아픈 한 사람일 뿐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5년 전의 수상 소감을 다시 빌려, "다들 잘 먹고 잘사세요. 저도 잘 먹고 잘살아보겠습니다"라며 울먹였다 5년 전, 이랑은 이 시상식에서 '신의 노래'로 최우수 포크 노래상을 받았다. 당시 그는 예술가의 생활고를 고백하면서, 트로피를 50만 원 경매에 부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던 바 있다. (나는 그 모습 역시 현장에서 직접 보았다.)


여러 뮤지션이 진솔한 수상 소감을 남겼다. 대부분은 현실에 따라오는 고민을 털어 놓았다. 최우수 포크 노래상을 받은 천용성은 "조카가 삼촌은 왜 TV에 나오지 않느냐고 묻는다. 제가 TV에 나오는 것도 좋지만, TV에 나오지 않아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있는 시절이 오면 좋겠다"고 말 했다. 최우수 모던록 음반상 수상자인 '이상의 날개'는 "음악을 하면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다. 생업은 따로 있고, 돈을 쓰면서 음악을 하고 있다"며 인디계의 현실을 털어 놓았다.


올해 최우수 일렉트로닉 노래상, 음반상을 수상한 여성 듀오 해파리의 수상소감 역시 인상적이었다. 해파리의 민희는 "낯선 것은 가난하기 쉽고, 그 가난함은 난해한 것으로 치부되기 십상인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소수자의 언어가 우리 사회에서 잘 받아들여지지 않듯, 낯선 대중음악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지난해 해파리가 발표한 앨범 < Born By Gorgeousness >는 '낯섦의 총체'다. 종묘제례악과 침잠하는 일렉트로니카, 앰비언트를 뒤섞었다. 해파리는 그 독특한 형식 위에서 여성의 시각으로 국악을 재구성한다.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그러나 그 낯섦이 우리의 삶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 것이다.


우리에겐 더 많은 낯섦이 필요하다



애초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시상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번 한국대중음악상의 선정 과정이나 결과를 두고도 여론은 분분하다. 해외에서 극찬을 받은 독립 뮤지션 파란노을이 어떤 부문에도 후보로 이름을 올리지 못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나도 잘 이해가 안 된다. 신인상 후보에도 올라갈 줄 알았는데.) 시상자로 무대에 오른 쿤디판다의 말처럼, 시상식의 결과는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난 1년 동안 우리 음악계에 일어난 다양한 현상을 톺아보고자 하는 시도 그 자체다.


세상은 'K'로 수식되는 콘텐츠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케이팝의 성취는 상업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거대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가요 시상식을 보면 '지난 한해 동안 우리 가요계에는 케이팝만 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자기 과시 대신 열등감을 용기 있게 고백한 래퍼가 있었다. 국악은 과거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장르 음악과 엮여 재구성되었으며, 신자유주의 시대 여성의 고통을 독창적인 화법으로 표현한 포크 음악도 있었다.


매스미디어는 이 역동성에 여전히 무심하다. 오히려 과거의 명곡을 커버하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이 있다. 인디 뮤지션이 출연할 수 있는 지상파 프로그램은 KBS 2TV <유희열의 스케치북>과 EBS <스페이스 공감> 정도를 제외하면 찾아보기 어렵다. 이 풍토 때문일까. 대중음악 신의 다양성을 유일하게 조명하는 시상식이지만, 한국대중음악상이 마주한 상황은 결코 녹록지 않다. '뜻이 있는 곳에 돈이 없다'는 김창남 선정위원장의 솔직한 한마디가 모든 것을 요약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대중음악상은 스무 번째 겨울을 앞두고 있다.


- 이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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