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치환의 '마이클 잭슨을 닮은 여인'을 듣고.
지난 2월 11일, 가수 안치환이 신곡 '마이클 잭슨을 닮은 여인'을 발표했다. 실명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안치환이 저격하고 있는 대상은 분명하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의 배우자인 김건희씨다. '거니'로 맞춘 운율이 그것을 증명한다. 싱글 앨범 재킷에도 김씨가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서 착용한 모습과 유사한 그림이 새겨져 있다.
"왜 그러는 거니? 뭘 탐하는 거니?
자신을 알아야지 대체! 어쩌자는 거니?"
"마이클 잭슨을 닮은 여인 마이클 잭슨을 닮은 여인
얼굴을 여러 번 바꾼 여인 이름도 여러 번 바꾼 여인"
김건희씨가 정치인은 아니지만, 유력 대선 후보의 아내도 공인에 준하는 위치에 있고, 수많은 의혹에 휩싸인만큼 풍자의 대상이 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문제는 어떻게 다루는가다.
'마이클 잭슨을 닮은 여인'은 성공한 풍자와 거리가 멀다. 원관념을 공격하는 방식도 선거 슬로건처럼 1차원적이지만, 보조 관념을 끌어오는 방식이 더욱 심각하다. 안치환은 이 노래에서 김씨를 마이클 잭슨에 비유한다. 살아 있는 동안 타블로이드 잡지의 억측으로 공격받았던 마이클 잭슨은 이 곡에서 비하의 수단으로 추락한다. 진영 논리를 떠나, 무례한 태도는 진한 불쾌감을 남긴다.
특정 인물을 직접적으로 저격한 노래들은 대중음악 역사에 많이 있다. 영국의 인디록 밴드 스미스(The Smiths) 출신의 모리시(Morrissey)는 마거릿 대처의 집권기였던 1988년, 대처를 단두대로 보내고 싶다며 'Margaret On The Guillotine'을 불렀다. 미국의 핑크(Pink)는 'Dear Mr. President'를 통해 조지 W 부시의 보수성을 지적했다. 국내에서는 이승환이 이명박을 노골적으로 겨냥한 '돈의 신'을 불렀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날 선 비판 의식을 기반으로 만든 곡이다. 이 두 노래 모두 사안과 상관없는 이의 이름을 빌려와 소모하지 않았다.
나는 안치환의 과오 때문에 그의 음악 여정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안치환은 시대를 대변하는 노래꾼이고 민중 가수였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멤버로 음악계에 등장한 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내가 만일' 등 수많은 명곡을 남겼다. 나는 '개새끼들'이라는 곡의 야성을 좋아했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는 6월 항쟁 이후 90년대에 걸쳐 수많은 시위 현장에서 불려 왔다고 한다.
그는 최근에도 꾸준히 음악 활동을 이어왔고, 세상에 유의미한 질문을 던져 왔다. 지난해 11월 발표한 '빨갱이'라는 곡에서는 매카시즘으로 상징되는 혐오를 논했다. 그러나 '마이클 잭슨을 닮은 여인'은 또 다른 차원의 혐오를 재생산하는 음악에 지나지 않는다. 그 어떤 가치도 창출할 수 없다. 마이클 잭슨은 외모 비하를 위한 공공재가 아니다.
직접 쓴 곡 소개에서 그는 '저항가요에 있어 풍자와 해학의 가치는 언제나 최고의 예술적 덕목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맥락 없는 조롱은 풍자와 해학의 필요조건이 아니다. 안치환은 이에 덧붙여, '니편내편으로 갈라져 온갖 혐오와 조롱의 요설이 판치는 세상'이라고 말했다. 노래 또한 이 천박한 시대의 흐름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이런 시대, 노래의 갈 길은 어디인가? 라고 자문했다. 그러나 양비론을 내세운 그의 고민이 정말 공허하게 들린다.
그는 노래가 가야 할 길을 물었다. 이 시대의 노래가 가야 할 길은 적어도 '마이클 잭슨을 닮은 여인'이 가는 길은 아니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을 이야기해야 할 때, 여성 혐오와 조롱으로 점철된 음악을 선해해야 할 이유는 없다. 타인의 외모를 비하하지 않고도 풍자할 수 있는 방법은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안치환은 그 방법을 찾지 않았다. '마이클 잭슨을 닮은 여인'은 업그레이드에 실패한 기성 세대의 미적 파산을 상징한다. 동시에 진심으로 시대를 노래했던 그의 과거에도 누를 끼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