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Back. Doctor Grant.
'티라노사우루스, 브라키오사우루스, 스테고사우루스, 트리케라톱스...'
어린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라면, 필연적으로 공룡의 이름을 여러 개 외우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나의 어머니도 그랬다. 정확한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아이들은 공룡을 좋아한다. 수천만 년 전에 멸종하고 사라진 존재에 대한 신비감일까, 아니면 크고 강력한 존재에 대한 로망일까. 물론 나도 공룡에 미쳐 살았던 어린이 중 하나였다. 수백 종의 공룡 이름을 외웠고, 공룡의 몸동작을 따라 했다가 유치원 선생님에게 주의(!)를 받기도 했다.
그 팬심의 중심에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쥬라기 공원>(1993)이 있었다. 실제로 6500만 년 전의 공룡이 부활한 것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만큼, <쥬라기 공원>의 존재감은 거대했다. 이 영화가 한국 사회에 안긴 충격도 컸다. 김영삼 대통령이 "<쥬라기 공원>이 현대자동차 150만 대를 판매한 것과 맞먹는다"고 말했던 것이 당대의 분위기를 증명한다.
물론 시퀄인 <쥬라기 월드> 시리즈의 컴퓨터 그래픽이 더 화려하겠지만, <쥬라기 공원>에서 브라키오사우루스가 유유히 걷는 모습의 감동을 따라잡을 수는 없을 것이다. <쥬라기 공원>은 스톱 모션(stop motion) 시대와의 단절을 알렸고, 영화가 막연한 꿈을 현실로 구체화할 수 있는 매체라는 것 역시 증명했다.
지난 2월 10일,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의 1차 예고편이 공개되었다. 2015년부터 시작된 '쥬라기 월드', 그리고 1993년부터 시작된 '쥬라기 공원' 프랜차이즈의 완결판이다.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2018)의 결말에서 공룡이 미국 전역으로 퍼져 나간 상황.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풀려갈지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다. <쥬라기 공원>의 아버지인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을 맡았고, <쥬라기 월드>(2015)의 감독인 콜린 트레보로우가 복귀했다.
"보여주고 싶었어. 환상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창조는 순수한 의지의 행위고, 생명은 반드시 방법을 찾아내지."
'쥬라기 공원'의 창시자인 존 해먼드(고 리차드 아텐보로 분)의 목소리가 예고편의 문을 연다 (여기서부터 추억을 자극한다.) 티라노사우루스 '렉시'와 벨로시랩터 '블루'를 비롯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 이후 전세계로 퍼져 나간 공룡들의 모습이 펼쳐진다. 무대가 새로워지는만큼 액션도 새롭다. 주인공 오웬(크리스 프랫 분)이 유럽 몰타에서 벌이는 추격전은 '본 시리즈'나 007 시리즈를 연상케 할 정도다.
새로운 공룡의 비주얼도 흥미롭다. 비행기를 물어뜯는 거대 익룡 케찰코아틀루스가 처음으로 등장한다. 티라노사우루스보다 거대하기로 유명한 육식공룡 기가노토사우루스도 등장한다. 공룡이 조류에 가깝다는 고생물학계의 최신 고증을 반영해, 털이 달린 공룡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쥬라기, 어셈블
하지만 화려한 액션과 새로운 공룡보다 더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바로 1편의 주역인 그랜트 박사(샘 닐 분)와 새틀러 박사(로라 던 분)의 귀환이다. 두 캐릭터는 <쥬라기 공원 3>(2001) 이후 21년 만에 이 시리즈에 돌아왔다. 이미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에서 짧게 인사했던 '록스타 같은 수학자' 이안 말콤 박사(제프 골드브럼 분)까지, 과거의 주역과 현재의 주역들이 서 있는 모습을 보면, <어벤져스 엔드 게임>(2019)이 부럽지 않다. <쥬라기 월드> 시리즈의 주역이자 마블 영웅이기도 한 주연 배우 크리스 프랫도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을 <엔드 게임>에 비유한 것이 이해된다. '쥬라기, 어셈블'이랄까.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의 예고편을 보면서 신기한 경험을 했다. 여름 블록버스터 영화의 예고편을 보고 있는데, 눈물이 났다. 공룡에 탐닉했던 어린 시절, 그랜트 박사는 나의 첫 번째 아이돌 스타였다. 중절모를 눌러 쓰고, 공룡 화석을 발굴하던 모습, 생사의 위기 속에서도 공룡들의 모습에 함박웃음을 짓던 '덕후'의 모습이 왜 그렇게 멋져 보였을까. 초등학교 시절, '장래 희망' 작성란에 '고생물학자'를 당당히 적었던 것도 앨런 그랜트 박사 때문이었다. 아빠와 함께 '쥬라기 공원 투어'라는 전시회에 놀러 갔을 때, 샘 닐이 실제로 입었던 의상을 보는 것도 얼마나 즐거웠는지. 수십년의 흔적이 느껴졌지만, 그가 멋지게 나이 든 모습으로 돌아와주어 고마웠다.
조금 냉정하게 접근해 보자. <폴른 킹덤> 이후 서사의 진행을 위해서라면 굳이 과거의 주역을 불러 모을 필요는 없다. 우리는 이것이 노골적으로 전작이 쌓아온 레거시에 기대는 전략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존 해먼드의 목소리로 시작하는 구성부터 시작해, 오리지널 시리즈를 오마주한 장면을 여럿 발견할 수 있다.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은 이 역사 없이는 성립할 수 없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2021)을 통해 추억의 힘이 얼마나 큰 지를 확인했다. '삼스파'(토비 맥과이어, 앤드류 가필드, 톰 홀랜드 버전의 스파이더맨)가 한공간에서 조우했을 때, 우리 역시 과거의 우리를 조우했다. 관객들뿐 아니라, 영화 속 인물들에게도 같은 시간이 흐른 것이다.
최근 할리우드 영화들이 노골적으로 프랜차이즈의 옛 스타들을 다시 소환하기에 바쁘다. 멀티버스를 다룬 마블의 <닥터 스트레인지: 노 웨이 홈>도 과거의 영웅들을 불러 올 것이라는 소문이 들린다. <매트릭스 리저렉션>(2021)이나 <고스트 버스터즈 라이즈>(2021)처럼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경우도 많이 있지만, 소중한 추억 앞에서 비평은 무방비 상태가 되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은 오는 6월 전세계에 동시 개봉 예정이다. 이 영화가 설령 '로튼 토마토'에서 높은 점수를 받지 못 하더라도 괜찮다. 나는 돌아온 공룡들을 보기 위해, 존 윌리엄스의 테마곡을 듣기 위해, 그리고 나의 첫 아이돌 '닥터 그랜트'를 만나기 위해 영화관으로 갈 것이다. Welcome To Jurassic 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