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후기
지난 8월 5일부터 7일에 걸쳐, 인천 송도달빛축제공원에서 '2022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이 열렸다. 나도 3일 동안 이곳에 다녀왔다. 3년 만에 돌아온 대형 락 페스티벌에 대한 반응은 가공할 만했다. 주최 측 추산에 따르면 3일 동안 13만 명의 관객이 모였다고 한다. 팬데믹 이후 억눌려 있었던 페스티벌에 대한 수요가 폭발했다. 페스티벌을 그리워했던 마니아들, 그리고 팬데믹을 지나 락 페스티벌을 처음 겪는 젊은 세대가 총집결했다.
2013년 이후 여러 차례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 참석해왔지만, 입장 과정에서 수십 분의 지연이 발생한 것은 처음이었다. 근처 편의점에서 맥주와 얼음컵을 산 뒤, 컵에 담아 마시면서 줄을 섰다. 더워 죽는 줄 알았지만, 나는 기다리는 줄이 제법 즐겁기도 했다. 펜타포트에 입장할 때 줄을 선다는 사실 자체가 생경했다. 평소와 다른 공기는 행사장 안에서도 체감되었다. 다른 해 같았으면 한산할 금요일 낮 시간에도, 발을 디딜 곳이 없었다. 일요일 오후 2시에 체리필터의 공연이 펼쳐졌을 때는, 헤드라이너 공연만큼 많은 관객이 모였을 정도였다.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의 명물인 '김치말이국수'마저도 긴 대기 시간 때문에 먹지 못했다.
금요일에는 6년 만에 펜타포트 무대에 선 넬이 락 페스티벌에 어울리는 강렬한 선곡과 함께 좌중을 압도했다. '기억을 걷는 시간' 정도를 제외하면 '5분 뒤에 봐' 같은 넬 표 발라드는 선곡표에서 대거 빠졌다. 오히려 'Cliff Parade', 'Dream Catcher', 'Ocean Of Light' 등 웅장한 록을 정면에 내세웠다. 탁 트인 공간에서 방방 뛰며 듣는, 스타디움 록. 이런 순간이 오랫동안 그리웠는데 넬이 다시 깨워 주었다.
토요일의 헤드라이너인 미국 밴드 뱀파이어 위켄드(Vampire Weekend)는 특유의 다채로운 음악 세계를 탄탄한 연주력으로 구현했다. 기타, 베이스, 키보드, 드럼, 퍼커션 모두 선명했다. 뱀파이어 위켄드를 몰랐던 분들도 '너무 재밌다'며 열광하는 것을 보았는데 내가 왜 뿌듯하지?
이들이 왜 2007년 데뷔 이후 미국 인디의 기린아로 자리매김했는지를 입증했다. 1984년생인 리더 에즈라 코에닉은 여전히 '아이비 리그 밴드'로 불리던 청춘의 얼굴을 간직하고 있었다. 잠시 내린 소나기를 지나 울려퍼진 'Bambina', 'Unbelievers', 'A Punk'와 'Diane Young'에 맞춰 덩실덩실 춤췄다. 나와 여친이 즐겨 듣는 'This Life'의 도입부 기타가 연주될 때는 육성으로 소리질렀다.
마지막 날의 헤드라이너는 올해 데뷔 25주년을 맞은 밴드 자우림이었다. '스물다섯 스물하나', '미안해 널 미워해', '팬이야', '샤이닝', '일탈'부터 최신곡 'Stay With Me' 등에 이르기까지, 여러 명곡이 관객을 위로하고 응원했다. 프론트우먼 김윤아의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지난해 발표한 '영원한 사랑'에 몰입한 채 실성한 웃음을 지을 땐, 사방에서 관객들의 경탄이 들려왔다. 단연 우리 대중음악의 전설이다.
한국계 미국인 여성인 미셸 자우너의 밴드인 '재패니즈 브렉퍼스트(Japanese Breakfast)'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베스트셀러 < H 마트에서 울다 >의 작가이기도 한 그는, 어머니의 나라에서 첫 페스티벌 공연을 펼쳤다.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게 바치는 노래 'The Body Is A Blade'를 부를 때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머니와 이모의 나라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 일은 더 큰 의미로 다가왔을 것이다. 공연 말미에는 새소년의 황소윤이 'Be Sweet'의 한국어 버전을 함께 부르기 위해 무대 위에 깜짝 등장하기도 했다.
스코틀랜드의 포스트 록 밴드 모과이(MOGWAI), 미국의 블랙게이즈(블랙메탈과 슈게이징 음악의 합성어) 밴드 데프헤븐(Deafheaven)의 강력한 노이즈 사운드는 마니아들에게 전율을 선사했다. 데프헤븐의 공연 말미에 폭우가 내리기도 했지만, 보컬 조지 클라크는 오히려 마지막 곡 'Dream House'를 부르기에 앞서 'Enjoy The Rain(비를 즐겨라)'라며 호기롭게 말했다.
올해 펜타포트는 국내 밴드의 세대교체를 보여줬다. 새소년과 잔나비, 아도이 등은 메인 스테이지를 장악하는 밴드를 대표했다. 백예린의 밴드 '발룬티어스' 역시 첫 대면 락 페스티벌 공연에서 록스타로 우뚝 섰다. 해서웨이처럼 팬데믹 시대에 데뷔한 밴드 역시 첫 페스티벌 공연을 펼쳤다. 한편, 한동안 대중의 시야에서 멀어져 있었던 체리필터는 '낭만 고양이'와 '오리날다' 등의 명곡을 소환하며 추억의 힘을 증명했다. '낭만 고양이'가 발매되었을 때 태어나지 않았을 팬들도 열광했다.
페스티벌 마니아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농담이 있다. '진정한 헤드라이너는 관객이다'라는 말이다. 보통 이 농담은 라인업이 부실한 페스티벌을 논할 때 주로 쓰였지만, 올해 펜타포트에서 능동적인 관객의 역할은 매우 컸다. 우선 '깃발 부대'가 페스티벌의 분위기를 장악했다. 깃발부대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슬램과 모싱, 스캥킹, 기차놀이를 하고 있는 관객들이 있다. 깃발 부대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관객들의 놀이 문화를 지휘한다. 곡을 면밀히 분석하고, 어떤 타이밍에 몸짓을 폭발시켜야 하는지를 감독한다.
'나락도, 락이다! 나락도, 락이다!'
- 김윤아(자우림)
개성있는 깃발 문구의 향연도 오랜만이었다. 짧고 굵은 '퇴사'를 비롯해 '나락도 락이다.', '락페가 장난이야? 놀러 왔어?', '슬램의 방으로', '비키니시티 야생해파리 보호협회', '지속가능한 덕질', '건강하고 효도하자 내일부터' 등 재치있는 문구가 아티스트들의 눈도 휘둥그레지게 했다. 자우림의 김윤아는 '나락도 락이다'라는 깃발의 글귀를 관객들과 함께 구호처럼 외치기도 했다. 3일 동안 '어덕행덕(어차피 덕질할거 행복하게 덕질하자)' 깃발을 들고 다녔던 영호씨는 '깃발은 나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고, 나의 신념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페스티벌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고 설명했다.
관객들은 어떤 곡에든 놀 준비가 되어 있었다. 휴양지를 소리로 구현한 밴드 CHS의 대낮 공연에서도, 슬램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이승윤, 바밍 타이거의 공연에서도 관객들은 몸을 맞대며 놀았다. 김뜻돌이 '비오는 거리에서 춤을 추자'를 부를 때는, 진흙밭이 된 바닥 위에서 해방감을 만끽했다. 잘 모르는 노래에 낯설어할 틈이 없었다. 몸을 움직이는 것이 먼저였다. 생소한 해외 아티스트의 곡이더라도, '떼창'의 포인트를 빠르게 간파했다.
팬데믹 초기에 온라인 비대면 공연이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했지만, 자우림의 베이시스트 김진만의 말처럼 이것은 '가짜 공연'이었다. 그건 공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공연을 볼 수 없고, 함성과 기립을 할 수 없는, 엿같은 시간이 이어졌다. 금요일 무대에 선 크라잉넛은 '4개월 전만 해도 락 페스티벌을 한다는 것은 미친 짓이었다'며, '이것(오프라인 락 페스티벌)은 우리 모두가 얻어낸 것'이라고 힘주어 외쳤다. 그들의 외침에 관객들은 공감의 박수를 보냈다.
나는 지난 3년 가까이 '락 페스티벌 가고 싶다'는 생각을 수십 번이고 반복했다. 누군가에게는 한낱 취미생활'이겠지만, 나에게 팬데믹 시대는 곧사랑하는 대상의 상실이었다. 우리는 왜 락 페스티벌에 가는가? 락 페스티벌은 교류와 확장의 장이다. 해외 아티스트와 국내 관객들이 음악을 매개로 소통하는 것. 자신의 공연을 마치고 돌아다니고 있는 아티스트들과 '오늘 최고였어요'라며 인사를 나누는 것.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과 '누구 무대가 좋고 별로였나'를 주제로 수다를 떠는 것, 노을을 등진 무대를 보며 맥주를 마시는 것, 음악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처음 보는 사람과 어깨동무하는 것. 그것이 락 페스티벌과 바깥 세상을 구분짓는 문화다.
올해 펜타포트에는 그 모든 것이 존재했다. 그것은 팬데믹이 우리에게서 앗아간 인간적 가치이기도 했다. 나는 더 막강한 라인업, 더 많은 해외 뮤지션으로 무장한 페스티벌도 경험해보았다. 다른 해보다 많은 인파 때문에 긴 대기 시간, 푸드 부스의 부족 등 불편을 겪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올해 펜타포트만큼 즐겁게 놀았던 곳은 몇 없다. 3년 만에 돌아온 확장의 여름, '진짜 락 페스티벌'이 남긴 여운은 유독 짙었다. 우리 더 왁자지껄 살자. 비 오는 거리에서 춤을 추자.
- 이현파(유튜브 '왓더뮤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