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고 그름에 대하여
나는 싸우고 싶어서 감사를 한 게 아니라,
내가 내는 돈이 눈먼돈이 되는 것이 싫었을 뿐이다.
나는 동네 사람이 되기 위해 나섰다가,
내가 살고 있는 세계의 돈과 어두운 이면을 보게 되었다.
제목 그대로 감사로서, 회장에게 제대로 옳고 그름을 말하고,
의문을 던지고 확인을 하는 과정에서
나를 포함한 감사 두명에게 회장으로부터 고소가 들어왔다.
그 시작은 이렇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시작된 일
퇴사하고 나서
안 하던 일들을 하나둘씩 해보고 있다.
그중 하나가
아파트 동대표였다.
지금 사는 아파트에서
사실 동네 친구도 없고,
아는 얼굴도 거의 없었다.
‘사람을 좀 알아보자.’
그런 마음으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있던 동대표 공고문을 보고 입주자대표회의에 나섰다.
벌써 두번째다.
한 기수는 보통 2년.
첫 번째 기수에서는
솔직히 아무것도 몰랐다.
회의실에 앉아
고개만 끄덕이며
“아, 이렇게 돌아가는구나”
지켜보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이번 기수.
동대표로 다시 당선된 뒤,
나는 감사를 자처했다.
이번에는
지켜보는 사람이 아니라
들여다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보이기 시작한 것들
감사는
동 하나가 아니라
입주민 전체의 투표로 뽑힌다.
입주자등의 1/10이상 투표하고,
과반의 찬성 또는 경합이 있으면 상대보다 앞선 득표로 당선이 된다.
책임의 무게가 달랐다.
서류를 보기 시작했고,
계약서를 읽기 시작했고,
숫자를 따져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좋은 게 아니라
불편한 것들이었다.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약 53%가 아파트에 살고,
전체 주택의 65%가 아파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기가 사는 아파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거의 관심이 없다.
그리고 그 무관심 위에서
아파트 관리비라는
거대한 시장이 돌아간다.
2024년 기준,
공동주택 관리비 시장은
30조 원이 넘는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이 세상에
‘눈먼 돈’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아파트 관리비라는 걸.
감사는 관리업체와 입대의를 감사한다.
주로 관리업체가 부적절해 보이는 일들을 일으키는데, 입대의 동대표들도 만만치 않다.
그것이 보이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가 있는가?
감사가 감사 역할을 제대로 하면,
나의 문제 제기를 불편해하는 자들이나, 기존 방식이 흔들리는 걸 원치 않는 사람들에게는 이보다 더 재수없을 수가 없나보다.
그렇게 이번 기수가 들어서면서부터 보이는 잘못된 부분에 대해 문제제기를 해왔다.
그래서 명예훼손으로 고소가 들어왔다.
기가막힌다.
앞으로 이 결과에 대해서도 한 챕터로 다룰것이다.
착한 무관심의 대가
내가 사는 아파트는 2000세대가 넘는다.
관리비 예산도 연간 35억원이 넘는다.
관리비외 수익까지 하면 거의 45억이 넘는다.
관리비가 크다는 건
공사와 용역도 많다는 뜻이다.
그 말은 곧,
이권이 있다는 뜻이다.
공사 용역은 관리비 외에 장기수선충당금을 포함해 더 큰 먹잇감이 된다.
관리사무소,
외부 업체,
그리고 그 사이를 오가며, 각자의 이해를 좇는 움직임들
모두가
우리 아파트의 눈먼돈을 차지하려 먹잇감을 노리는 하이에나 처럼 달려든다.
그런데
입주민이 아무 관심을 안 가지면
어떻게 될까.
내가 낸 돈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그냥 흘러간다.
문제는 이 모든 과정에서
국가의 태도다.
“니들이 알아서 해라.”
아파트 안에서 벌어지는
법적 분쟁, 민원, 갈등에 대해
국가는 사실상
중재자 역할을 하지 않는다.
예전에 읽었던 책에서
저자는
‘아파트관리청’ 같은
정부 차원의 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지금의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대한민국 주거의
60% 이상이 아파트라면,
아파트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공의 문제다.
내가 배운 아주 작은 깨달음
동대표를 하면서
깨달은 건
아주 단순한 사실 하나였다.
관심이 없으면
내 돈은
누군가의 기회가 된다.
나는 정의로운 사람이어서
이 자리에 앉은 게 아니다.
그저
‘모르고 내는 돈’이
가장 무섭다는 걸
조금 일찍 알았을 뿐이다.
그리고
이 구조를 아는 순간,
나는 더 이상
모른 척하며 살 수 없게 됐다.
지금의 나
이 일은
명예로운 자리도 아니고,
돈이 되는 자리도 아니다.
회의는 길고,
사람들은 각자 불만이 많고,
중간에서 욕먹을 일도 잦다.
어쨌든
난 생애 첫 고소를 당했다.
그래서 변호사를 선임했다.
이는 나를 더 단련시킬 것이다.
그리고, 나는 더 나아갈 것이다.
앞으로 절차 안에서 옳고 그름이 가려질 것이다.
그래도 나는
이 경험을
내 제2의 인생 한 페이지로
기록하고 있다.
퇴사 후의 삶이란
꼭 새로운 직업만을
의미하진 않는다는 걸
지금 체감하고 있다.
나는 지금
그냥 ‘살아가는 사람’에서
적극적으로 나를 ‘만들어가는 사람’으로
조금 이동 중이다.
그리고 조금 더, 아니 생각보다 많이 단단해지고 있다.
당신에게 묻고 싶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아파트에 살고 있을 확률이
아마 절반은 넘을 것이다.
당신은
자신이 매달 내는 관리비가
어디로 가는지
한 번이라도 들여다본 적이 있는가.
동대표를 하라고
권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무관심은
가장 비싼 선택일 수 있다는 말은 해두고 싶다.
아파트에 산다는 건
그냥 거주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의 작은 사회에
속해 사는 일이다.
그 사실을 아는 순간부터
나는 이곳을
‘사는 곳’이 아니라
‘함께 책임지는 곳’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마,
그 시선은
다시 몰랐던 예전으로 되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