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함이 때로는 나를 늦추는 방식에 대하여
나는 게을러서 힘든 게 아니라,
늘 틀리지 않으려고 애쓰느라 힘들었다.
‘맞게’ 살아온 사람의 몸
은행에 다니던 시절,
아침마다 정장을 입고 사무실에 들어서면
몸이 먼저 반응했다.
서류는 이 순서대로,
보고는 이 양식대로,
말은 이 표현까지는 괜찮고
이 선을 넘으면 안 된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정답 같은 움직임’이 몸에 배어 있었다.
고객에게 설명할 때도,
상사에게 보고할 때도
내가 가장 먼저 확인하던 건 이거였다.
‘이게 맞나.’
‘절차상 문제는 없나.’
‘혹시라도 나중에 문제가 되진 않을까.’
틀리지 않는 게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잘하는 일이었다.
정석대로 하면, 다 될 줄 알았다
중개업을 시작하고도
나는 같은 방식으로 움직였다.
계약 하나를 써도
관련 법령을 다시 찾아보고,
특약 한 줄을 넣어도
‘이 표현이 맞는지’를 몇 번씩 검토했다.
상대가 대충 넘어가자고 해도
나는 끝까지 설명했다.
“이건 이렇게 처리하는 게 맞습니다.”
“이 부분은 나중에 분쟁이 생길 수 있어서요.”
정석대로,
정확하게,
바르게.
그러면 언젠가는
이 성실함이 나를 앞으로 데려갈 거라고
막연히 믿었다.
그런데 현실은 달랐다.
왜 나는 늘 제자리에 있는 걸까
이상했다.
나는 늘 준비돼 있었고,
늘 문제를 미리 막으려 했고,
늘 한 발 앞서 생각한다고 믿었는데
결과는 늘 비슷했다.
속도가 빠른 사람은
이미 다음 계약을 하고 있었고,
대충 넘어간 사람은
다음 소개를 받고 있었다.
나는 뒤늦게 정리된 서류를 들고
조용히 남아 있었다.
그때부터
내 안에 자책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너무 느린가.’
‘내가 너무 고지식한가.’
‘요즘 세상에 이런 방식이 맞나.’
내가 열심히 살아온 방식이
지금의 나를 늦추고 있는 건 아닐까,
처음으로 그런 의심을 했다.
작은 깨달음 하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성실한 게 아니라
두려웠던 건 아닐까.
실패가 무서워서,
문제가 생길까 봐,
책임을 뒤집어쓸까 봐
항상 ‘정답 쪽’으로만 움직여온 건 아닐까.
그러고 보니
내가 자주 했던 질문들은
이런 종류였다.
‘이게 맞나요?’
‘법적으로 문제는 없죠?’
나는 선택을 묻기보다
허락을 구하고 있었다.
틀리지 않기 위해
결정을 미뤄온 사람.
그 사실을 인정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의 나, 여전히 성실하지만
지금도 나는 성실한 편이다.
이 성향이 하루아침에 바뀌진 않는다.
다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요즘은 가끔 이렇게 자문한다.
‘이건 정말 틀린 걸까,
아니면 내가 불안해서 피하는 걸까.’
모든 정답이
나를 앞으로 데려가진 않는다는 걸
이제는 안다.
때로는
완벽한 준비보다
불완전한 실행이
나를 한 칸 움직이게 한다는 것도.
여전히 흔들리고,
여전히 서툴고,
여전히 고민이 많다.
그래도 예전처럼
‘틀리지 않기 위해 멈춰 서 있지는’ 않으려 한다.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것
혹시 당신도
지금 제자리인 이유를
노력 부족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어쩌면 문제는
노력이 아니라
방식일지도 모른다.
당신은 지금,
틀리지 않기 위해 서 있는가,
아니면 앞으로 가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가.
나는 아직도
‘제대로’ 하려는 사람이다.
다만 이제는 안다.
제대로 산다는 건
항상 맞는 선택을 하는 게 아니라,
때로는 틀릴 수도 있는 선택을
내 책임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라는 걸.
그래서 오늘도
완벽한 정답 대신
조금은 불완전한 결정을
내 이름으로 남겨본다.
그게 지금의 내가
조심스럽게 배우는
다음 단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