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끝내 ‘장사하는 사람’은 되지 못하는걸까

by 경자코치


나는 지금의 일이 힘든 게 아니라,
이 일이 나의 성향과 너무 멀다는 사실이 더 힘들다.




어릴 적에 꿈꿨던 직업들

어릴 때 장래희망을 적으라면
아직도 기억난다.

아래 직업군만 늘 떠올렸었다.


과학자, 기자, 회계사, 국정원 직원, 검사


지금 생각해보면 공통점이 분명하다.
규율이 있고, 기준이 명확하고,
말과 판단에 무게가 실리는 일들이다.


반대로 ‘장사’, ‘사업가’ 같은 단어는
내 인생의 선택지 근처에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생애 첫 개인사업이 중개업이라는 사실이
요즘 들어 더 낯설게 느껴진다.


대학생 때 MBTI와 직업적성 검사를 했을 때도
내가 생각한 분야는 ‘은행원’이었고,

결과는 ‘검사’, ‘판사’ 였다.


그런데!!

사실, 해당 직업코드에 검사, 판사도 있지만, 공인중개사도 있었다는 것이다…

(맞는 길을 온건가…)


내가 생각한 직업군 / 평가 / 평가후 직업군


빨간 직업은 갈망의 대상

초록색은 준비했던 직업

파란색은 하고 있는 직업



사실 취업 전이었고,
나는 그 결과를 별생각 없이 넘겼다.

지금 와서야 문득 든다.
‘나는 천직을 잃어버린 걸까.’



병원과 법원이라는 공간

요즘 부쩍 이런 생각을 한다.

세상에서 사시사철 바쁘고 복잡한 곳이
딱 두 군데가 있다.


‘병원과 법원’


그곳은 늘 정신이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그 공간 안에서
오히려 더 집중한다.


의사, 판사, 검사의 말 한마디에
사람들은 웃고 울고,
인생의 방향을 바꾼다.


그들은 생사와 옳고 그름을 다룬다.
그래서 모두가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나는 요즘에서야
내가 그런 ‘기준을 세우는 자리’
은근히 동경해왔다는 걸 인정하게 됐다.


나는 ENTJ, 지도자형이다.
누군가를 이끌고 싶고,
그 위치에서 조금 더 친절하고
조금 더 선한 앞선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다.


그런데 어릴 적 나는
징그러운 게 싫어서 의사는 꿈도 꾸지 않았고,
사법고시는 ‘내가 감히’라는 생각에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요즘 그때의 내가
조금 한심해 보일 때가 있다. ㅎㅎ



지금의 자리, ‘을’의 감각

물론 안다.
그 직업들을 가졌다고 해서
후회가 없었을 리 없다는 걸.

만족은 끝이 없고,
어떤 선택이든 다른 후회는 남는다.


그래도 요즘 드는 생각은 이것이다.

나는
정해진 규율과 기준 위에서
융통성을 발휘하는 일을
더 잘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을 하고,
사안을 집요하게 파고들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데
에너지를 쓰는 사람이라는 것을.


지금 나는 ‘을’의 위치에서 일한다.
그래서 더 친절하려 애쓰고,
더 정확하려 노력하고,
더 바르려 애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노력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좋은 ‘갑’은 있어도
좋은 ‘을’은 잘 보이지 않는 세계.


그 안에서 나는 가끔 묻는다.
‘이게 정말 나에게 맞는 옷일까.’


KakaoTalk_20251227_200423183_04수정.jpg 인성도 나쁘진 않았다.ㅋ




아주 작은 깨달음

최근에야 깨달았다.

나는 권력을 탐한 게 아니라
정당한 무게를 가진 말을 하고 싶었던 사람이었다는 걸.


내 말이 상황을 정리하고,
내 판단이 기준이 되는 자리.

그게 내가 바라던 힘이었고,
내가 꿈꿨던 존경이었다.


이 깨달음은
지금을 부정하게 만들지 않는다.


다만,
앞으로를 더 신중하게 보게 만든다.


나는 지금의 길을
실패로 규정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이렇게 해석해본다.


‘나는 아직,
내 성향이 가장 잘 쓰이는 자리로
이동 중일지도 모른다.’




당신에게


혹시 당신도
지금의 일이 힘든 이유를
능력 부족 때문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어쩌면 문제는
노력이 아니라 방향일 수도 있다.

옷이 안 맞는다고 해서
사람이 잘못된 건 아니다.



마지막으로 남기는 기록

나는 아직 답을 정하지 않았다.

다만 하나는 분명하다.


나를 소모시키는 자리와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자리는
분명히 다르다는 것.


그래서 요즘 나는
성급한 결론 대신
질문을 조금 더 오래 붙잡아 둔다.


‘나는 어디에서
가장 나다운 무게로
서 있을 수 있는 사람일까.’


이 질문을 끝까지 가져가는 것.
그것이 지금의 나에게는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