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장에서 나는 흙수저였다.

by 경자코치
나는 일을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룰을 잘못 읽은 사람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선택

나는 현재 일산동구에서 공장·창고·토지 중심의 중개업을 하고 있다.


많은 중개 대상물 부동산 중에서 이 분야를 택한 것은

아파트 보다 중개 보수가 높고,

한 번만 잘 성사되면 판이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감하게 그쪽을 택했다.


2023년 중반부터 시작했으니,
이제 2년 반 정도가 지났다.


그러나,

손님들이 마셔야 할 커피는

내가 매일 마셔대고 있고,

손님들에게 대접할 간식도…

줄곧 내 몫이 되고 있다.


지금 시장은 척박하다.


파이가 커야 후발주자도 먹을 게 생기는데,
지금의 산업 부동산 시장은 그렇지 않다.

거기에 내 업력은 짧다.

파이가 작고,
내 자리는 더 작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간다는 게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는 걸
몸으로 배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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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개업에도 금수저는 있다

중개사 공부를 할 때부터 느꼈다.

부모가 중개업을 하는 사람,
배우자나 가족 중에 이미 이 업계에 있는 사람.

자격증을 따고 난 뒤에도
그들은 크게 고민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시작이 수월해 보였다.


그러나 나는 다르다.

이 업계에서 나는 ‘흙수저’다.


누군가 매물을 던져주지 않는다.

누군가 방향과 노하우를 가르쳐 주지 않는다.


혼자 고민하고,
혼자 결정하고,
혼자 맨땅에 헤딩한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처음엔 스스로를 탓했다.

‘내가 뭔가를 잘못하고 있나.’

‘노력이 부족한가.’

‘이 옷이 나에게 안 맞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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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딩이 통하지 않는 곳

나는 나를 브랜딩하고 싶었다.


은행 출신,
기업여신과 외환을 다뤘던 이력.


본부부서에 있을 때도, 영업점에 있을 때도

기업 대출을 필두로 기업체 상대를 많이 해왔던 터라,

공장, 창고 등을 필요로 하는 기업체 상담과 영업에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명함에 그걸 자랑스럽게 넣었다.

‘이런 나를 택하세요’라고 외치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 시장에서는
그 모든 게 의미가 없었다.


여기서는
‘중개사가 어떤 사람인가’보다
‘어떤 매물을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했다.


사람은 기억되지 않았고,
매물만 기억됐다.


주먹구구식으로라도,
막무가내식으로라도

매물을 만들어 소개하고
매칭시키는 사람이 이겼다.


그때 처음 알았다.


이 시장은
나를 평가하지 않는다.

부동산 매물로만 평가한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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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깨달음

하루는 사무실에 늦게까지 남아
지도 위를 한참 바라보다가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덜 노력한 게 아니다.
아직 연결되지 않았을 뿐이다.’


중개업에도 금수저가 있다는 사실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 이쪽 세계의 구조였다.


그리고 시장이
‘굳이’ ‘나’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실패가 아니라 정보였다.


브랜딩이 틀린 게 아니라,
위치가 잘못됐다는 신호였다.


하지만
자책이 전략으로 바뀌는 데는
충분했다.



지금의 나

지금도 쉽지 않다.

매물이 없는 날은
하루가 길다.

전화 한 통에 기대를 걸었다가
아무 일도 없으면
괜히 책상만 더 정리한다.


그래도 버틴다.

버티면서
연결을 만들고,
구조를 만들고,
내가 설 자리를 조금씩 넓힌다.


가끔은
‘이 길이 맞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마다
다시 묻는다.


‘나는 지금 실패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아직 내 자리가 아닌 곳에서
나를 증명하려 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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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혹시 당신도 지금,

능력보다
기존 환경과 구조를 먼저 묻는 시장에서
혼자 애쓰고 있지는 않은가.


잘못된 건
당신이 아니라
게임의 룰일 수도 있다.


불편함은
포기의 신호가 아니라
조정의 신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희망을 크게 말하지 않는다.

현실은 여전히 95%의 무게로 남아 있고,
이 시장은 오늘도 결과로만 사람을 판단한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지금의 흔들림이
내가 잘못 살고 있다는 증거는 아니라는 것.


어쩌면 나는 실패하고 있는 게 아니라,
아직 내 자리가 아닌 곳에서
나를 증명하려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성급한 결론 대신
기록을 남긴다.


포기인지, 조정인지,
이 길이 맞는지, 다른 길이 있는지.


답을 서두르지 않는 것 또한
지금의 나에게는
하나의 선택이다.


20240223_134121.jpg 멀리 북한산이 보인다... 눈은 시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