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월요일이 싫었던 게 아니라, 내가 아닌 삶을 계속 연기하는 게 싫었다.
익숙했지만, 맞지 않았던 세계
첫 지점에 발령받고 2년쯤 지났을 때였다.
창구에 앉아 모니터를 켜면 손이 먼저 굳었다.
번호표 기계가 ‘삑’ 소리를 내고, 유리문이 열릴 때마다 어깨가 조금씩 올라갔다.
‘오늘은 어떤 손님이 올까.’
‘무슨 업무를 요구할까.’
누군가는 화가 나 있었고, 누군가는 초조했고, 누군가는 이유 없이 나를 깎아내리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며 표정과 말투는 익숙해졌다.
업무도 손에 익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몸은 끝내 익숙해지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긴장이었고, 그 긴장을 ‘직업정신’이라는 말로 포장해 겨우 버티는 날들이었다.
더 힘들었던 건 영업이었다.
특히 시기에 맞지 않는 펀드 같은 투자상품을, 프로모션 때문에 팔아야 할 때.
정기예금을 해지하러 온 나이 든 손님이 있었다.
그분 손에는 통장이 있었고, 눈빛에는 불안이 있었다.
나는 그 불안을 잠재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현실은 반대였다.
실적이 쌓이려면 예금 해지의 일부를 펀드로 유도해야 했다.
시장 분위기가 좋지 않은 시기에도, 고점처럼 보이는 구간에서도 설득은 이어져야 했다.
“그동안 수익률이 좋았습니다.”
그 문장을 꺼낼 때마다 마음이 묵직해졌다.
손님이 고개를 끄덕일수록, 내 마음은 이상하게 비워졌다.
‘이게 정말 그분을 위한 걸까?’
‘솔직하고 진실되게 고객을 대하면서도 수익을 낼 순 없을까.’
그 질문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내 속에서만 하루 종일 맴돌았다.
나는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보다, 내가 믿지 못하는 말을 하며 돈을 버는 사람이 되는 게 더 두려웠다.
내 일이, 내 삶이 아닌게 느껴질 때
그러다 또 한 번, 세상이 조금 비틀어져 보인 순간이 왔다.
몇 날 며칠 야근하며 쏟아부은 보고서와 과업이, 어느 회의에서 상사의 공으로 정리되어 흘러가는 걸 봤을 때다.
상사는 말했다.
“너를 위해서야.”, “결국 너도 잘되는거야.”
그 말이 거짓말 같진 않았다.
하지만 현실은 늘 비슷했다.
상사는 영전했고, 더 좋은 곳으로 이동했다.
나는 제자리에 남았다. 남아서 더 치열하게 승진을 위해 애를 써야만 했다.
물론, “고생했다”는 말은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은 내 안의 허기를 채우지 못했다.
나는 인정받고 싶었던 게 아니라, 내 삶이 내 것이길 원했던 거였다.
그 깨달음은 작았지만, 한 번 생기고 나니 사라지지 않았다.
특히 기업여신심사부에 있을 때는 고통이 더 선명했다.
매일 밤 10시, 11시, 어떤 날은 12시에 퇴근했다. 심지어 새벽에 퇴근한 적도...
그래야 보고서와 심사위원회 발표를 준비할 수 있었다.
업체를 분석하고, 현장을 방문하고, 지방 출장을 다니고, 주말에도 나왔다.
야근 자체도 힘들었지만, 더 큰 스트레스는 따로 있었다.
‘이렇게 살아서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그 질문이 밤마다 따라왔다.
승진은 또 다른 세계였다.
눈치와 술자리, 인사권자 비위 맞추기, 아부가 기술처럼 통했다.
과장 승진을 앞두던 어느 날, 집에 갔다가 전화를 받았다.
“부장이 찾는다.”
담당 팀장이었다. 나는 다시 나왔다.
회사 근처 술집으로 뛰어갔다.
지금 생각하면 어리석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것이 ‘사회생활’이라고 믿었다.
그게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고 믿었다.
일을하며 월요병이 심했다.
월요일이 오면 몸이 먼저 거부했다.
침대에서 일어나기 싫어서가 아니라, 내가 아닌 곳으로 다시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이 싫었다.
드라마가 아닌 선택, 그리고 지금
퇴사 4~5년 전부터, 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문장을 하나 키우고 있었다.
“남의 인생 말고, 내 인생을 살고 싶다.”
그 문장은 퇴사 직전에 생긴 게 아니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나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은행이라는 세계가, 나와 맞지 않는다는 걸.
그럼에도 나는 오래 망설였다.
안정은 사람을 붙잡는 힘이 강했다.
가만히 있어도 월급이 들어오고, 조직이 나를 보호해주는 느낌이 있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세상엔 돈 버는 일이 아주 많을 거야.’
‘뭔가를 팔기 위해 꼭 마음에 거리낌이 드는 일만 있는 건 아닐 거야.’
그리고 하나 더.
‘인생은 짧고, 시간은 유한하다.’
퇴사는 대단한 드라마가 아니었다.
몰락도 아니었고, 갑작스러운 성공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나를 조금 더 존중해보기로 한 선택이었다.
물론 선택했다고 모든 게 좋아지진 않았다.
지금도 흔들리고, 가끔은 불안하고, 때로는 돌아가고 싶다.
그래도 묻고 싶다.
혹시 당신도 지금, 월요일이 무거운 이유를 “피곤해서”라고만 설명하고 있지 않나.
정말 피곤한 건 몸일까.
아니면 내가 아닌 삶을 계속하는 마음일까.
나는 아직 정답을 모른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내 인생을 내가 살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숨이 아주 조금 더 깊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희망을 크게 말하진 않겠다.
현실은 여전히 95%의 무게로 남아 있으니까.
그래도 나는 오늘, 그 95%를 안고서도 내 쪽으로 하루를 조금 더 당겨 살아본다.
월요일이 두려웠던 나는, 결국 내 인생을 선택했고,
그 선택 덕분에 오늘은—
조금 더 숨을 쉬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