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2030 재무소설
상담 당일 오후, 윤서는 현관 앞에서 신발을 신다 말고 멈칫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평소보다 굳어 보였다.
한숨을 한 번 내쉬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별일 아니야. 그냥… 얘기만 하면 되는 거잖아.”
혼잣말이었지만 목소리는 조금 떨렸다.
가방 안에는 노트와 충전기, 그리고 차마 다른 사람에게 보여준 적 없는 숫자들이 담겨 있었다.
약속 장소는 집 근처 카페였다.
유리창 너머로 사람들이 오가고, 커피 머신 소리가 잔잔하게 들리는 곳.
윤서는 문을 열고 들어서자, 생각보다 숨이 덜 막혔다.
‘병원도, 사무실도 아니네…’
창가 쪽 테이블에 먼저 와 있던 경자코치가 손을 들어 인사했다.
“윤서님이시죠?”
“네.”
“편한 음료 하나 먼저 시키세요. 상담은 커피 식기 전에 끝내는 게 목표입니다.”
그 말에 윤서는 피식 웃었다.
어깨에 들어가 있던 힘이 조금 풀렸다.
자리에 앉자, 경자코치는 노트북을 열지도 않았다.
대신 테이블 위에 작은 노트를 꺼내 놓고 말했다.
“오늘은 정리하는 날이에요.
잘한 얘기도, 못한 얘기도 안 하셔도 됩니다.”
윤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뭐부터 얘기하면 될까요?”
경자코치는 창밖을 한 번 보고, 다시 윤서를 보며 물었다.
“요즘 가장 고민되시는 게 뭔지만 말씀해보세요.”
윤서는 잠시 커피 잔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불안은 좀 줄었는데요. 근데 다음이 안 보여요.”
경자코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정말 잘 오셨어요.”
카페의 소음 속에서도 그 말은 또렷하게 들렸다.
윤서는 조심스럽게 휴대폰을 꺼냈다.
은행 앱을 열고, 화면을 경자코치 쪽으로 살짝 돌렸다.
“이게… 지금 제 통장이에요.”
말이 끝나자 얼굴이 확 뜨거워졌다.
하지만 경자코치는 화면을 오래 들여다보지 않았다.
“괜찮아요. 오늘 이 숫자들은 주인공이 아니에요.”
“…네?”
“오늘은 이 숫자들이 어디로 흘러왔는지만 볼 거예요.
맞고 틀리고는 아직 얘기하지 않을게요.”
그 말에 윤서의 숨이 조금 느려졌다.
카페라는 공간 덕분인지, 가슴이 덜 조여왔다.
“이 통장 보시면서 가장 먼저 드는 감정은 뭐예요?”
윤서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예전엔 부끄러움이었는데,
지금은 좀 아쉬워요.”
“아쉽다는 건?”
“조금만 더 일찍 정리했으면,
지금 이렇게까지 헤매진 않았을 것 같아서요.”
경자코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그건 실패한 사람의 감정이 아니에요.
방향을 배우는 사람의 감정이에요.”
윤서는 그 문장을 마음속에서 몇 번이나 되뇌었다.
상담은 빠르게 흘러가지 않았다.
지출표를 하나씩 짚어보고,
비상금 항목을 확인하고,
‘아직 하지 않아도 되는 것’과
‘지금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했다.
투자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지금은 관찰 단계가 맞아요.”
“비교하지 않는 루틴, 정말 잘 지키고 계세요.”
“이 정도 속도면 충분히 안정적입니다.”
윤서는 노트에 짧게 적었다.
– 조급해하지 않아도 됨
– 지금 구조는 ‘시작 전 단계’
마지막으로 경자코치가 말했다.
“오늘 상담의 목표는 딱 하나였어요.
윤서님이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확인하는 것.”
윤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마음이 안 무너지네요.”
“그럼 오늘 상담은 성공이에요.”
카페 문을 나서며 윤서는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60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무언가를 ‘해결했다’기보다는,
‘정리가 됐다’는 기분이 더 컸다.
집으로 가는 길, 윤서는 노트를 펼쳐 한 줄을 적었다.
숫자를 말했는데, 나는 평가받지 않았다.
거리의 소음 속에서도 마음은 조용했다.
윤서는 알았다.
오늘은 답을 얻은 날이 아니라,
숫자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 첫날이라는 걸.
그리고 그 변화가, 생각보다 크다는 것도.
★ 경자코치 메모 ★
카페처럼
일상이 흐르는 공간에서의 상담은
‘돈 문제는 특별한 사람이 겪는 일이 아니다’라는
중요한 메시지를 줍니다.
많은 사람들이 재무상담을
‘정답을 들으러 가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 상담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정답이 아니라 좌표 확인입니다.
윤서처럼
불안은 줄었는데
여전히 막막하고
다음 단계가 보이지 않는 상태
이건 실패도, 정체도 아닙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구간의 끝에 도달했다는 신호입니다.
이 단계에서 사람들이 흔히 하는 착각이 있습니다.
“정보가 더 부족해서 그렇다”
“전략을 더 세게 짜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게 아닙니다.
이 시점에 필요한 건
더 많은 정보도,
더 공격적인 전략도 아닙니다.
필요한 건 딱 세 가지입니다.
지금 이 속도가 나에게 맞는지
지금 이 구조가 무리 없이 지속 가능한지
지금 내가 어느 위치에 서 있는지
이 세 가지만 확인돼도
사람의 마음은 놀랄 만큼 안정됩니다.
왜냐하면 불안의 대부분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생기기 때문입니다.
재무상담은
당신을 평가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당신의 숫자에 점수를 매기는 곳도 아닙니다.
재무상담은
당신의 현재를 언어로 정리해주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오늘 윤서가 한 가장 큰 일은
숫자를 보여준 게 아닙니다.
숫자를 숨기지 않아도 된다는 경험을 한 것,
그게 가장 큰 변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