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없인 아무것도 기억이 나질 않아..'
재개봉 소식이 들리고, 월간 윤종신의 열렬한 팬으로써 10월호의 모티브가 이터널 선샤인이라고 하기에 꽤나 오랜만에 다시 틀어보았다. 내 기억이 맞다면 내가 이 영화를 처음 본건 17살 때였다. 본격적으로 영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소위 명작이라 말하는 영화들을 하나 둘 찾아보며 적지 않은 즐거움을 느끼곤 했던 게 기억이 난다. 솔직히 말해 그 당시 이터널 선샤인은 내게 큰 울림을 주는 영화는 아니었다. 그리고 3년 후 20살이 되고 다시 본 이터널 선샤인은 내게 적지 않은 울림을 안겼고, 또다시 3년이 흐른 후 지금 본 이터널 선샤인은 쓰나미 같은 울림으로 나를 덮쳤다.
사랑 영화는 사랑을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에 따라서 좋은 영화 혹은 아쉬움이 남는 영화로 기억이 되곤 한다. 이 영화가 말하는 사랑은 기억에 모든 초점을 두고 있다. 기억을 중심으로 영화는 흘러가고, 시간순이 아닌 기억의 재배열로 조금은 산만한 듯 이야기를 풀어낸다. 단순한 시간순이 아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경계를 두지 않고 이곳저곳을 보여주며 보는 이의 정신을 흔들어 놓는 것 같지만, 조엘과 클레멘타인 두 사람의 사랑을 주체로 생각하고 영화를 본다면 이 영화 속 시간적 배경은 복잡하다고만 말할 수 없다. 오히려 단순하다고 느끼게 된다.
일반적인 틀을 깨고, 새로운 틀을 보여주며 그걸 사람들에게 이해시킨다는 것은 말처럼 생각처럼 쉽게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가 대단한 거고, 사랑이 신기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이 가진 힘을 그대로 보여주는 이 영화는 아름답다. 하나 아프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며 미워지기도 한다. 모든 기억에는 농도가 있다고 생각을 한다. 짙게 남아있는 아픈 기억들도 점차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옅어지며 차차 무뎌지고 괜찮아지는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 이 영화를 보면 그 옅어졌던 농도가 다시금 짙어지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이렇게 기억은 아니 사랑은 지울 수가 없다. 앞서 말한 농도를 옅게 한다던지, 내 속에서 아주 작은 부분으로 만든다던지 그렇게 점점 나아지게 할 수는 있을지언정 지운 다는 건 실로 불가능한 일이다. 기억력이 다른 이들보다 좋은 편이라고 생각을 한다. 주변에서도 많이들 그렇게 얘기를 하고 내가 느끼기에도 나는 필요 이상으로 기억력이 좋은 편이다. 굳이 기억해야 하지 않아도 될 것들 까지 모두 다 기억을 하고 있어 주변 지인들도 나 자신도 때 때로 놀랄 때가 종종 있다. 어디 좋은 기억만 남겠는가, 아프고 슬프고 괴로웠던 기억들도 물론 또렷하게 기억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기억들을 지우고 싶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그 당시에 무슨 일이 있었건 추후에 내가 얼마나 힘들었건. 결국 그 모든 과거의 기억 자체가 내게는 소중하다.
기억과 사랑, 그 둘은 우리에게 너무나 소중한 존재들이다. 지우려고 한다는 건 어리석은 행위라고 생각한다. 지난 사랑을 기억하고 추억하기에 우리는 또다시 사랑을 할 수 있는 거고, 더 열렬히 사랑할 수 있는 거고, 지금 내 옆에 이 사람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사랑이 과거로부터 왔다고 생각을 하면 절대 그 과거를 지우고 싶지 않을 것이다. 기억은 과거다. 우리는 현재를 봐야 하고,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 오늘을 사랑하고, 내일을 사랑할 준비를 하기에도 우리의 인생은 짧다.
과거가 우리를 성숙하게 만든다는 걸 잊어서는 안된다. 억지로 지우려고 하면 나만 아프고 나만 힘들다. 받아들이면 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추억이 된다. 과거의 사랑에 미련을 두는 것은 현재와 미래의 사랑을 생각했을 때 분명 어리석은 행위이다. 그 어리석은 사람들이 만나 하는 게 사랑이다.
우리 모두는 사랑 앞에 어리석다. 그 어리석게 만드는 사랑은 과거에선 아름다운 기억과 돈으로 살 수 없는 추억을, 현재에선 더 할 나위 없는 행복을, 미래에선 끝이 없는 설렘을 안겨 줄 것이다. 이 말을 꼭 하고 싶다. 기억은 지워도 사랑은 지울 수 없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