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참 함부로 하시네요'
띄어쓰기가 없는 제목에서부터 특이한 예고편까지 영화를 보기도 전에 큰 매력을 느끼곤 했다. 비로소 보고 나니 이 영화는 기대와 생각보다 더 큰 매력을 가진 작품이다. 시간은 우리가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마음대로 조정할 수도 돌이킬 수도 없다. 그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이 왜 중요한지를
말하고 있는 영화라고 생각된다.
그 사람의 말 한마디, 사소한 제스처 등으로 우리는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 지를 대략 파악할 수 있다.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왜 지금 이런 행동을 취하는지를 완벽히는 아닐지라도 대략적인 의도를 말과 행동으로 알 수 있다. 이 영화가 재밌는 건 1부와 2부로 나눠진 두 이야기는 언뜻 같아 보이지만, 분명 다르다는 거다. 1부에서 춘수는 희정에게 '알 것 같아요, 너무 잘 알 것 같아요'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내 기억이 맞다면 2부에서 춘수는 희정에게 저 말을 하지 않았다. 단 한 번도 말이다. 단지 저 말 한마디를 안 한 것뿐인데 1,2부 속 춘수의 모습은 많이 다르게 느껴졌다.
이렇게 말이 중요하다. 어떤 말을 했는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말을 했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모습이 많이 다르게 보이곤 한다. 같은 말이라도 목소리의 톤, 얼굴의 표정, 손의 제스처 등으로 다르게 전달이 된다. 그렇기에 신중해야 하고, 말을 더 아껴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담배로 시작해 술로 끝이난 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분의 글에서 '홍상수의 영화를 보면 담배가 피고 싶어 미칠 것 같다'라는 글귀를 봤다. 비흡연자이기에 그 부분은 공감하지 못하였지만, 술은 달랐다. 특히 이 영화 속 술은 특히 소주는 굉장히 큰 부분을 차지한다. 두 사람의 진솔한 대화와 친밀감을 형성하는 과정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한잔, 두 잔 술잔을 기울이면 소주병은 비워지지만 두 사람의 마음은 채워짐을 느껴 공감이 되면서 알 수 없는 감정이 속에서 끓곤 했다.
소주라는 술이 주는 그 독보적인 존재감을 참 신기하게 생각한다. 맥주나 와인 혹은 보드카와 같은 술과는 차원이 다른 그 느낌을 참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맥주 한잔과 소주 한잔은 분명 다르다. 소주를 마시자는 건 좀 더 깊이 있는 대화를 하자는 얘기고, 당신과 가까워지고 싶다는 뜻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화 속 둘의 관계가 진척되는 것도 소주가 크게 한몫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홍상수 감독의 영화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 역시 공간적 배경이 주는 그 포근한 감성이 도드라졌다. 어린 시절, 수원에서의 그 1년이라는 시간은 내게 꽤나 행복한 기억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렇기에 수원이란 곳은 내게 항상 궁금하고 더 알고 싶은 곳인데 두 사람이 처음 만난 행궁이라던지, 차를 마셨던 곳, 소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작은 스시야 그리고 '시인과 농부'라는 정말 멋진 공간까지. 꼭 한번 가볼 생각이다.
우리 인생 속 모든 일은 결정적인 한 번의 순간으로 결정이 된다. 그 찰나의 순간이 가진 의미라는 게, 영향력이 생각 외로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매 순간순간이 맞기를 '그때가 틀렸고 지금도 틀렸어' 가 아닌 '그때도 맞고 지금도 맞았어'의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사실 지금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때가 틀리다고 생각하는 것도 관점의 차이다. 약간만 각도를 틀어서 바라본다면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이렇게 정답이 없기에 인생이 재밌는 게 아닐까 싶다.
눈 내리는 겨울밤, 내 옆에 있는 사람과 함께 단골 우동집에 들러 오뎅탕에 소주잔을 부딪히는 상상을 해본다. 그 순간이 온다면 이 영화가 떠 오르겠지, 지금이 맞고 그때가 틀렸어 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