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픈 거 다 해’
제작 단계부터 그리고 상영 중인 지금도 많은 이슈를 몰고 다니는 작품 ‘82년생 김지영’ 을 감상했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는 개봉도 전에 많은 질타를 받았다. 어떤 영화인지는 중요하지 않은 채 그저 가치를 깎아내리려는 사람들이 우려한 것보다 많아 놀람과 동시에 이 사회에 대한 실망감 또한 감출 수 없었다.
이 영화는 여자를 사회적 약자로 표현하면서, 동시에 남자를 우위에 두며 어떤 ‘누군가들’ 처럼 갈등을 조장하는 작품이 결코 아니다. 애초에 정신머리가 제대로 박힌 감독이라면, 배우라면, 제작진이라면, 투자자라면, 그런 작품에 에너지를, 자본을 낭비 할리 만무하다. 여전히 세상엔 비상식이 남루하지만 상식을 짚어 삼킬 만큼 더럽혀지지 않았다고 믿는다. 정녕 그래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각설하고 작품으로 돌아와 이 영화는 제목 그대로 지극히 평범한 한 여자의 이야기다. 너무 평범하고 친근하여 오히려 진부하게 느껴질 만큼 내가 살면서 언젠가 마주쳤을 한 여자 아니 여러 사람들의 모습을 과장 없이 담담하게 풀어낸다. 단지 주체가 여성이고 여성의 입장에서 그 이야기를 하는 것뿐인데 그게 불만이라고 말한다면 사실 더 이상 하고 싶은 말이 없다. 대화를 할 생각이 없는 사람들에게 대화는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저 나의 엄마 생각이 났다, 그것도 아주 많이. 엄마는 82년생도 아니고, 성은 김 씨도 아닐뿐더러 이름 역시 지영이 아니다. 이 영화보다도 더 영화 같았던 엄마의 삶을 잠시 생각하다 이내 접어 두었다. 감히 그 시간을 헤아릴 수 있는 초능력 따위가 내게 있을 리 만무하다.
어디에도 ‘원래’ 라는건 없다. 원래라는 말로 시작해 본인이 받아야 했던 불합리하거나 비상식적인 통념을 부수지 못하고 끝내 삼켜내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법을 공부해야 한다. 진위여부를 확인하고 논리에 부합하는지를 확인하는 과정, 물론 중요하다. 그전에 누구 하나라도, 만에 하나 한 사람이라도 이 현실이 불편하다 느낀다면 우선 들어봐야 한다. 헛소리도 들어보기 전까지는 헛소리임을 알 방도가 없지 않은가.
여러 한국영화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뻔한 클리셰를 부수면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 자체가 이 영화는 어떤 영화로서의 가치를 다한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대한민국 사회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어떤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멀고 험난해 보이지만 그 끝에 후회가 남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남자와 여자가 아닌 ‘사람’ 으로서 끊임없이, 계속해서 생각해야 할 것이다.
고로 우리는 존재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