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짓들로 누리는 풍요
여전히 어설픈, 30s
우연히 본 다큐멘터리에 쓰인 자막이 오랜 시간 내 머릿속에 남아 있다. 좁은 나라에 인적 자원은 풍부하니 실패할 자유조차 허락되지 않는다는 비관적인 다큐였다.
인생의 순리를 벗어나지 않고 규정된 박스 안에서 나를 맞추어 넣으려고 애쓰며 살던 시절을 부인할 수 없다. 요령도 없고 방법도 모르면서 여기에 금광이 있다는 이야기가 들리면 더 빨리 더 깊이 금을 찾으려 삽을 들었던 것 같다.
비단 금뿐만이 아니다. 남들이 먹어 본 TV에서 맛잘알로 소문난 연예인이 추천한 집을 1시간이고 기다려서 먹고 난 뒤 이런 말 한적 없나? '음... 맛있는데 기다릴 정도는 아니라'라고. 그렇게 여행의 추억을 희미하게 만들었던 경험이 있지 않나? 그럼에도 여전히 여행을 준비하며, 별점을 보고, 블로그와 유튜브 리뷰를 몇 번이고 찾아본다. 여길 언제 또 와보냐?라는 생각에 실패하고 싶지 않아서다.
우습게도 내 생에 최고의 여행은 준비 없이 떠난 신혼여행이었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 우선순위에 밀려 우리는 신혼여행 계획을 맨 나중으로 미루었다. 비행기, 숙소만 정하고 떠났다. 이런 상황을 알게 된 지인이 본인 여행 계획표를 보내주었고, 비행기 안에서 읽어보려 하였으나, 결혼식 이후의 노곤함으로 비행기에서 꿈만 꾸었다.
그냥 들어가 본 카페가, 서점이 관광명소였음을 알았을 때.
무작정 멈추어서 바라본 노을이 알고 보니 최고의 뷰포인트였을 때.
우리가 이렇게 운이 좋구나 하며 행복해했다. 너무 짠 포르투갈 음식도 메뉴 실패가 아니고 문화 체험이라고 생각하니 이 또한 배움이었고.
실패는 못난 모습으로 기억될 것 같지만, 아니라는 것 말하고 싶었다.
어쩌면 말이다. 내 운명의 절대자가 나의 길을 고속도로 말고 오솔길로 준비한 것 같다. 누가 끼어들까 염려하며 앞만 보고 질주하지 말고, 들꽃도 보고 하늘도 보고 길도 헤매면서 그런 딴짓들로 풍요를 누리길 축복한 것 같다.
서른 중반에서 후반으로 넘어가는 지금, 이제는 조금씩 그 축복이 감사하다.